# 아사이 료 지음 『인 더 메가처치』 열광의 그늘 속 고독에 다가가며, 같은 아버지로서 딸을 이끌지 못하는 나의 은밀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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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6-09-23T10:39:57.67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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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이 료 저 『인 더 메가처치』를 최애 활동에 빠진 딸을 둔 아버지라는 시점에서 읽어 보면, 작품이 비추는 구조의 냉철함과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업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작품의 장점은 치밀한 취재로 파헤쳐낸 ‘시스템’의 해부도에 있다. 신앙과 열광, 그리고 그것을 추동하는 거대한 비즈니스 구조. 그것은 아이돌 씬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 사회 곳곳에 촘촘히 펼쳐진 자금 모금과 인정의 메커니즘 그 자체이다.

그러나 시스템을 이해했다고 해서, 한창 소용돌이 속에 있는 딸에게 “그것은 만들어진 구조에 불과하다”고 설득해 그만두게 하는 데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덕질의 '목표'란 무엇인가. 당사자에게 그런 야박한 질문을 들이댈 필요는 없다. 끝이라는 것은 찾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저쪽에서 알아서 찾아오는 것이다. 그때가 오면 발밑에 남겨진 열광의 잔해를 돌아보며 자신과 대화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열광 속에 있는 사람에게 차가운 객관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 대비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더 나은 선택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현실의 성과로 이어지는 분야에 시간과 열정을 쏟아주길 바라며 은근히 다른 길로 이끌어 보려 하지만, 그것이 헛수고로 끝난다는 것도 충분히 잘 알고 있다. 아이의 열광 앞에서는 부모의 합리적인 유도 따위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이끌어 주고 싶다는 부모 마음의 무력함 앞에서 조용히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

朝井リョウ氏が 방대한 조사를 거쳐 그려 낸 결말은 결코 무조건적인 ‘덕질’ 긍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 구조가 지닌 기괴함을 가차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작품 속 아버지가 품은 “가능하면 딸이 이런 것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불편함은 현실의 부모가 느끼는 경계심과 정확히 일치한다.

시스템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아이돌 업계에 국한되지 않고, 현대의 모든 콘텐츠 비즈니스가 인간의 심리를 해킹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시스템임을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빠져든다”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약함이다. 이 비즈니스가 과도하게 치달은 끝에는, 소비하는 자도 공급하는 자도 모두 마모되어 불행으로 향하리라는 예감마저 맴돈다.

그러나 이 아버지의 시선 역시 어딘가 은은한 향기와 쓸쓸한 그림자를 띠고 있다. 딸의 발밑에 퍼진 무방비한 열기와, 그 그늘에 숨겨진 고독과 아픔을 이해해 버릴 수 있기에 아버지의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구조의 함정을 간파하면서도, 정론으로 딸을 데려오지 못하는 답답함. 왜냐하면 자신(나) 역시 가족 몰래 세간의 체면이라는 미세 조정 다이얼을 맞추면서, 그 시스템이 가져다주는 은밀한 자극에 기대어 일상을 버텨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어두운 면에 공감하며, 구원과 독이 동전의 양면임을 알고 있기에 더욱 딸을 올바르게 이끌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몸부림치며 상처받는다.

결국 인간은 메가처치의 구조를 올려다보며 그 모든 장치를 간파한 듯하면서도, 오늘도 어김없이 그 예배당의 어둠 속에서 조용히 무릎을 꿇는다. 체면이라는 미세조정 다이얼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다시 맞추면서.

**출처:** [note 원문](https://note.com/dannari/n/nd806be8d986f)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9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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