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예상 작가 아사이 리요가 쓰고 있는 소설 『인・ザ・メガチャー치』는 현대의 ‘풀려는 활동(推し活)’과 거대한 종교 조직을 대조시켜, 이야기가 사람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아이돌 운영 측의 남성들과 열광적인 팬인 여성 등 3인의 시점을 통해 소비자가 어떻게 이야기에 의존하고 조작되어 가는지를 드러냈습니다. 이 작품은 특정 커뮤니티 내에서만 통용되는 ‘소셜카렌시’의 구조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신앙심에 가까운 열정을 냉철하게 분석합니다. 2026년 본야 대상에서 수상하며 50만 부를 넘는 베스트셀러가 된 이 작품은 독자에게 현대 사회의 ‘믿는 것’의 본질을 질문합니다. SNS 시대의 집단 심리나 팬덤 경제의 득과 실을 다각적인 시선으로 조명한 작가 활동 15주년 기념의 기념비적인 장편 작품입니다.
아이돌이 등장한다. 팬들도 등장한다. 콘서트도 있다. SNS도 있다. 큐레이터도 있다. 팬덤도 있다.
하지만 팬 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이 무엇을 믿고 살아가는가라는 매우 오래되고도 현대적인 문제라는 점을 끊임없이 묵상하는 것이다.
제목: 메가 교회
하지만 소설 속에는 교회가 그 자체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메가처치가 무엇인지요. 아마도 팬덤일 겁니다.
예전 같았으면 종교가 담당했던 부분이 있었다.
인생의 의미, 공동체, 구원, 소속감, 기도, 희망
그런 것.
하지만 현대 사회는 종교의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들고 있다.
가정도 약하고, 지역 공동체도 약하다.
회사도 이제 한 평생 속할 곳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졌어.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에 감정을 쏟는가.
그러다 ‘덕질’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내 아이돌이 있다. 아이돌의 새 앨범이 나온다. 콘서트에 간다. 굿즈를 산다. SNS에서 같은 팬들과 소통한다. 아이돌이 잘 팔린다는 게 기쁘다. 아이돌이 인정받는다면, 나 자신도 인정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건 냉정하게 생각하면 상당히 신기한 일이야.
그건 제 인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의 성공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안 하려고요.
그래도, 정말 기쁘다.
반대로,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저까지 상처받는 것 같아요.
인간은 원래 이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한다. 무언가에 감정을 투영한다. 무언가를 믿는다.
문제는 그 “무엇”이 현대에는 거대한 사업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
작중에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이야기”와 관련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가해자. 깊이 빠져드는 자. 믿고 싶지만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자.
세 가지 관점이 서로 겹칠 때마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과 “이야기를 믿는 사람” 사이의 거대한 구조가 드러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걱정되는 점은 이야기 자체에 선과 악이 없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지만, 사람을 조종할 수도 있다.
당신은 특별합니다. 당신에게는 동료가 있습니다. 당신이 응원함으로써 이 사람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어찌 보면 거짓말이 아니야. 그래서 오히려 더 강하다.
사람은 완벽한 거짓보다 조금 진실된 것에 더 취약한 경향이 있다.
이 소설을 읽고 있는데, “사실”과 “해석”이 점점 분리되어 가는 모습에 가장 소름 끼쳤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팬의 시각에서는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을 지켜야 할 사건으로 여겨진다.
운영 측 입장에서 보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문제들이다.
외부 시선으로 보기에, 단순한 여론 악화일 뿐이었습니다.
전부 다릅니다.
하지만 각 사람에게는 그 해석이 “현실”입니다.
SNS는 정보를 엄청난 속도로 전달한다.
사실들이 흘러간다. 누군가 그것을 해석한다. 그 해석이 확산된다. 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해석한다.
깨어나 보니, 처음 일어난 일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팬덤은 처음에는 정말이지 따뜻하고 좋은 곳이거든요.
알아! 저도 그래요! 저 też lubię!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팬덤) 활동 자체를 위험하다고 여기는 것은 조금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위험해지는 걸까.
아마도 ‘자신의 인생’이 ‘애청작의 이야기’에 완전히 흡수될 때.
돈을 사용한다. 시간을 사용한다. 삶을 변화시킨다.
이 부분까지는 취미 영역에도 해당합니다.
하지만 가족보다 내 안의 픽, 일보다 내 안의 픽, 건강보다 내 안의 픽, 인생보다 내 안의 픽.
이렇게 되면, 조금 내용이 달라지게 된다.
제가 제 팬을 응원하고 있는 걸까요.
혹시,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 즉 ‘팬덤’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맡기고 있는 걸까요.
그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었다.
또한, 이 작품에서 중요한 점은 “이야기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돈을 직접 빼앗을 필요도 없고, 명령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당신이 이것을 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스스로 움직이고, 스스로 돈을 지불하며, 스스로 시간을 사용하고, 스스로 홍보를 하며, 스스로 동료를 늘리고, 스스로 관계를 형성한다.
어떤 식으로든 착취당하고 있다는 느낌 없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쪽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위대함과 공포인 것이다.
강제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본인은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유로운 선택” 자체가 이야기의 방향성을 결정하도록 이끌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다만.
그러니 이야기를 믿지 마라”라고 말한다면 이 소설의 재미를 절반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실, 이야기가 없었다면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가족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일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꿈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
나는 이렇게 인간하다는 자기 모습 자체가 어느 면에서는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야기다.
사람은 완전한 사실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의미가 필요했으므로.
그러므로 문제의 원인은 “이야기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을 그 이야기 속에 얼마나 맡길 것인가.
그러게 말이야.
그리고 또 하나 무서운 점은 “모두가 믿는” 것, 즉 ‘함께 믿는’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이든 “잠시만요, 이거 잘못됐어요?”라고 알아차릴 수 있는 일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아니요, 이건 정상이에요”라고 말한다면,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팬덤의 연대는 사람을 구원하지만, 동시에 반론을 묵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끼리라는 말이 “우리끼리는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바뀌는 순간, 연대도 배척으로 변한다.
이건 아이돌계 안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야.
회사이기도 하고, 학교이기도 하고, 지역이기도 하다. SNS는 매일 이런 것들을 보게 된다.
이 사람을 때려라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누군가가 한 명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사람을 흔드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취향 존중은 괜찮다
더욱이 “나 자신도 뭔가, 이렇게 움직여지지 않았어?”라는 기묘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어.
팬이 기다리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직장에서도 괜찮고, SNS에서도 괜찮고, 연애에서도 괜찮고, 정치에서도 괜찮고, 가족에서도 괜찮고, 종교에서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일수록 인간은 의심을 줄인다.
그리고 의심이 사라진 물건일수록 자신을 움직이는 힘을 갖는다.
아사이 료는 이런 점이 무섭다.
사람 자신을 ‘선한 사람’, ‘악한 사람’처럼 쉽게 나누어 보지 않는다.
더욱이, 평범한 인간이 어떤 구조 안에 놓여 있을 때, 이러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관찰한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도망갈 수 없어.
잘못한 것은 그 사람이다. 이상한 것은 그 팬이다. 미친 것은 그 운영진이다.
그렇게 안심하고 싶었는데, “아니, 넌 대체 어떻게 한 건데?”라며 오히려 나에게 덤벼드는 거야.
제목이 붙은 “메가 교회”가 끝까지 작용할 것이다.
교회에 가더라도 사람들은 믿는다. 하나님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기도한다. 종교가 없더라도 사람들은 공동체를 만든다. 성경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 대신, 아이돌이 있고, SNS가 있으며, 라이브가 있고, 굿즈가 있으며, 팬들 간의 소통이 있다.
그러다 보면 “덕질”이라는 말 속에 종교, 상업, 공동체, 자기 표현, 인정 욕구, 고독 등 다양한 요소가 담겨 있는 셈이네요.
다양한 것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무언가에 굳게 믿어야만 하는 존재인 것.
그 “믿고 싶다”는 감정이 현대 사회에서 거대한 경제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는 것.
그 그림을 그린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인 더 메가처치’는 읽고 나서 뭔가 불쾌한 것을 보았다는 느낌이 남는 작품이다.
스마트폰을 놓는다. SNS를 닫는다. 잠시나마 조용해진다.
그때, 내가 믿고 있는 것이 과연 내가 진정으로 선택한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았다.
확실히, 이렇게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점이 이 소설의 훌륭함에 있다.
이야기는 사람을 구원하며 동시에 사람을 자극한다.
그리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반드시 누군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필요한 것은 이야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금 어떤 이야기를 살고 있는가를 자문하는 것이다.
가끔은 그곳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다른 시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팬을 좋아해도 괜찮고, 몰두해도 괜찮아요. 인생을 바꿀 만큼, 무언가에 푹 빠져도 괜찮아요.
하지만 “나의 삶의 주도권”은 제 손안에 두겠습니다.
사실, 이야기를 통해 구원받는 삶과 이야기를 통해 삶을 갉아먹는 것 사이의 차이는 아마도 얇은 종이 한 장일 것이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73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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