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나』는 소통과 존중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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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admin
> 작성일: 2026-09-25T18:19:56.98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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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최근에 『유명(幽冥の岸)』에 대한 장문의 글을 게시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 글에는 의도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 있습니다. 별도의 글을 쓰려고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쓰고 싶은 내용은 굳이 제목처럼 말입니다. 이미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은 제목이 다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이렇게 솔직하고 그럴듯한 제목을 떠올렸는지, 나 스스로도 놀랍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유음의 얕음을 맞이하면서, 기존 작품들을 몇 권 재독했더니, 그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그것은 ‘12국기’가 입지, 환경, 의견이 다른 타인과의 교류와 소통, 그리고 입지나 의견이 다른 상대에 대한 존중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幽冥)의 얕』은 한 사람의 시야의 한계와 사물을 신중하고 다각적으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건도, 타인도, 어떤 일이 벌어진 경위와 사상, 그 배경도 한 사람에게는 모두 꿰뚫어 볼 수 없습니다. 물건이나 타인에게 다양한 면이 있으며, 자신에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고, 무언가가 옳다면 그 반대가 무언가가 틀리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어떤 한 면이 진실이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뒤에 숨겨진 사상이나 배경은 얼마칠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은 시야가 좁고, 보이는 것은 매우 단편적이며, 경험할 수 있는 것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여기에도 절대적인 정답은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훈국기’가 중시하고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잘 보고, 잘 생각하는 것”, 즉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태도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전 글에서는 ‘12국기’가 그리고 있는 또 다른 메시지 이야기를 간략하게 다루었습니다.

그것은 타인과의 소통과 타인의 존중입니다.

직접적인 표현이 다소 뻔한 소리일 수 있지만, 혼자서는 채울 수 없는 부분은 여러 사람이 함께 보면 훨씬 좋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각자의 경험과 배경이 있으며, 자신의 입장에서는 보일 수 있는 것들도 다른 정보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생각 방식, 감정, 모든 것이 다르고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한 사람에게 보이는 것, 가지고 있는 정보는 조각나고, 그 결과 아무리 정확하더라도 틀릴 수 있는 경우가 있는 만큼, 의도치 않게 과장되는 것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대화, 소통,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 성격을 받아들이고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열두 나라 이야기』는 늘 입체적인 시각으로, 서로 다른 입장, 세계관, 시선, 의견을 가진 타인과의 교류와 공감을 소중히 여기며 그려왔다고 생각합니다.

양子は, 다른 세계에서 흘러 내려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였을 때, 그 세계에서 태어나 자란 쥐의 모습をした 반獣의 악준과 만나 도움을 받았고, 결국 상대방을 믿는다는 답을 찾게 되었다. “왕이니까” 믿을 수 없었던 왕이라는 지위의 인간에 대한 불신에 갇혀 있던 료타가, 쇼로라는 한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된 것. 부유한 집에서 자란 아이 지열과, 집도 서류도 없이 살아왔던 성인 관丘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발했지만, 입장과 성장 환경,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된 일들.

다수의 작품에서, 서로 다른 입장과 배경을 가진 타인과 교류하며, 입장이나 특성보다는 그 사람 자신을 볼 수 있었던 순간, 입장이나 환경을 초월하여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는 과정이 많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 
> 
>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하고, 그렇게 결정하지 못했을 때도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이는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재국채왕황고의 말이지만, 정말 이 말이 정사의 것이 이야기 속에서 여러 번 그려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든가, 해외 손님이라든가, 왕이라든가, 부유한 집안의 양녀라든가, 노숙자라든가…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그런 인간일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했더라도, 대화하고 상대방 자신을 보는 것.

그것은 ‘타나토 히무라’와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도라쿠 나라기』가 되풀이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일을 다시금 느낀 건, ‘백금의 墟 현의 월’을 재독하던 때였어요. 리채는, 驍宗을 찾기 위해 함양산에 갔다가, 그곳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쿵샨을 만나죠. 쿵샨과 그의 동료들은 폭력으로 부를 얻어온 무법자, ‘토비’라고 불리는 존재였고, 리채에게는 많은 것을 잃어버린 원인의 한 단면일 뿐만 아니라, 仇의 면이기도 했어요. 쿵샨에게도 리채는 왕의 휘하에서, 자신들의 무법을 용서하지 않을 존재였죠. 그래서 처음에는 서로 혐오감을 숨기지 않는 관계였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맺으면서, 리채는 토비가 토비가 된 배경에 대해 이해를 표했고, 물론 그들의 무법을 완전히 용납할 수는 없었지만, 점차 그들을 ‘토비’라는 카테고리나 선입관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우정을 쌓아갔어요. 그렇게 협력 관계가 되면서, 쿵샨과 토비들이 왕사의 공격을 받아 도망치려 할 때, 리채를 이끌던 군세가 도움을 주기 위해 온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쿵샨은 왕사의 휘하에 있으니, 왕에게 반하는 자신들의 존재를 돕는다고는 생각 못했을 테니, 리채가 도와왔다는 것을 느꼈을 때도 저 또한 눈물이 솟아올랐어요. 예전에는 仇라고 생각하고, 악이라고 단정 지었던 존재였지만, 이렇게 사람을 알게 되고, 이렇게까지 마음을 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죠. 리채의 그 자세, 그 있던 것에, 저는 정말 마음이 뜨겁게 달아올랐어요.

그러다 보니, 리사이는 묵색의 기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이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묵색의 기는, 같은 뜻을 지니면서도 배경, 입지, 성격 등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조직입니다. 驍宗의 부하 병사들,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던 류운관 등의 도관 사람들, 은밀히 재물을 축적하고 무기를 만들어 기회를 엿보던 가문관 사람들, 스스로 무기를 들고 전투에 능숙한 단법사의 승려들, 떠돌이로 살아온 토비레들, 왕에게 빚진 충성심으로 왕을 믿고 기다리며 리사의 귀환을 염원하고 순례를 다니던 백색의 사람들… 이렇게 각자의 입지와 배경, 전투 경험, 전문 분야 등이 모두 다른 사람들이, 단지 아선이라는 가짜 왕을 몰아내고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미래를 되찾으려는 의지 하나로 하나의 집단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배경과 입지, 무기와 전투 경험, 전문 분야 등이 모두 다른 사람들을 묶어, 통솔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하나의 만남을 통해, 처음에는 서로 의심하고 부딪히기도 했지만, 대화를 거듭하며 서로를 보고, 각자와 관계를 굳건히 다져온 리사이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일 것입니다. 묵색의 기를 같은 뜻을 가진 집단이 커져서 대국의 미래를 바꾸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입장을 넘어선다든가, 선입견을 넘어 서로 관계를 맺고 손을 잡고 협력하는 것이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또한 저는 『12국기』가 의견이 다른 타인과의 대화나 의견 교환이 그 사람 자신을 변화시키고, 그 사람의 행동이나 선택을 변화시키며, 궁극적으로 현실과 미래를 변화시키는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그 점을 매우 강하게 느끼게 하는 작품은 『황혼의 갯마루, 새벽의 하늘』입니다.

이 작품은 ‘백금의 황무지, 흑신 달’에 이르기까지 대이국의 정변의 경위와, 페이허가 흘러가 버린 곳을 여러 나라가 협력하여 수색하고 귀환을 실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국가와 인물들이 모여 협력하여 일에 매진하는 전개는 매우 화려하고 웅장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과 세계의 이치에 대한 의문이나 등장인물들의 갈등은 시리즈를 관통하는 큰 이야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의견이 다른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소통의 중요성을 전달해 주는 작품으로서도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 작품이 전례 없는 상황에 대해 손을 걷어붙여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전에 유사한 사례가 없고, 정해진 정답도 없는 상황에서, 선택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를 때, 바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며 고민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양자와 그를 돕는다면 경이 침몰할 것이라는 이유로 쇼롱과 그의 관리들이 제지했다. 이념적 충돌이 여기서 끝나지 않도록 “눈앞의 죄”라는 근거를 들어 경 관리들은 과거의 사례를 조사했다. 대를 군대를 향해 나서는 것은 안 되며, 태왕을 찾거나 팽뢰로 흘러간 태기를 찾는 것도 위험하지만, 팽뢰로 흘러간 태기를 찾는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했다. 대를 돕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그에 따른 위험을 인지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두 사람이 서로 융합되지 않고 단절되지 않도록, 위험성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간다. 그 결과, 양측의 의견 모두 조화된 새로운 방안이 나타나 간다. 그것이야말로 의견이 다른 다른 사람의 존재와 단절 없이 대화해 나가는 것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의견의 대립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해결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대국을 돕는 것보다 자국의 민 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상로와, 대국을 돕는 것은 자국을 위해서도 된다고 반박하는 양자. 이들의 질문을 통해 다른 나라를 돕는 것과 자국의 미래를 닦는 것이 양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열렸고, 상로는 양자의 발상에 동의하여 여러 나라에 협조를 요청하여 태기를 찾기 위한 길을 열었습니다. 이는 의견이 대립하면 거기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대의 뜻을 짚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논의와 제안을 이어갔기 때문에 새로운 길이 열린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국가를 넘어 협력하고 태기를 찾기 위한, 이전에는 없던 웅대한 사업이 탄생했습니다. 양자가 혼자 생각했더라도, 상로가 혼자 생각했더라도 이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고, 혹시 떠오르지 않았더라도 쉽게 실현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과 생각을 가진 인간들끼리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대화를 나눈 덕분에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점이, 제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또한, 이 작품은 의견이 다른 사람들 사이의 존재가 자신을 변화시키고, 또한 사람과 국가의 미래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합니다.

저는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에 등장하는 대극국에서 추관장 대사구를 지낸 카에이라는 인물을 정말 좋아합니다.

꽃 그림자는 이재와 친구가 되면서, 아선 반란이 드러난 후 각각 추방당하며 함께 도망 생활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국 여왕은 열여섯 해 된 태후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재가 경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고려하면서, 꽃 그림자는 “눈가의 죄”를 지적하고, 두 사람의 의견은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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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얼굴을 들었다. “그래……경왕은 태아의 결실이다. 혹시 순제(順帝)의 이야기를 모를 수도 있다.” “얼마나 얕보고, 끔찍한 일을…” 화영은 창백하고 굳어진 얼굴을 경악과 혐오로 일그러뜨렸다. “대(戴)를 위해 경(慶)을 억누른다는 뜻인가? 지금, 네가 그렇게 말한 것과 도저히 같다.” “그것은……” “절대 안 돼. 이재, 그것 하나만은 절대 안 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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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경작되는 농지가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이번 가을 수확을 하지 못하면 백성들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빨리 수확을 하지 않으면 또 겨울이 찾아온다. 겨울이 닥칠 때마다 3루는 2루로, 2루는 1루로 줄어들었다. 이번 겨울이 지나고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생존할 수 있을까? 또 얼마나 더 겨울을 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하지만 그렇다고 기쁜 것을 탓하며 잘못을 저지르도록 해서는 안 된다. 백성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꽃 그림자는 거부하는 듯 얼굴을 피했다.
> 

> 
> 
> 이 외에는 길이 없다. 그렇다, 여기서 작별입니다, 이사이. 꽃 그림자의 손가락이 가슴 앞에서 얽힌 채 떨리고 있었다. 눈물을 글썽거릴 듯한 꽃 그림자의 얼굴을 응시하며 이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仕方ない”
> 

이렇게 두 사람 간의 대립은 결국 이별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재는 짝사랑만을 따뜻하게 여기며 慶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저는 정말 이 장면의 하야미 씨를 너무나 사랑해서 감당할 수 없어요. 하야미 자신도 역시 이치 사이와 마찬가지로 절실히 구원을 받고 싶어 했던 마음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국이 구원을 위해 다른 나라를 희생하는 것을 “그건 절대 안 돼”라고 단호하게 거부했던 하야미라는 인물의 청렴함과 강인함이 제가 너무나 좋아합니다.

여기서는 제가 ‘화영’을 매우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아닌, 이 장면에서 이치 사이와 ‘화영’, 그리고 그 이후 이야기 전개에서 읽을 수 있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장면에서 이자와와 하야카와의 의견은 정면으로 대립하고, 두 사람은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의견 충돌은 이후 이야기 전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는 요마와 공행사로부터 도망치면서 목숨을 건 채 경국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재는 수없이 화영을 떠올린다.

> 
> 
> 꽃 그림자
> 

> 
> 
> 꽃 그림자, 결국…
> 

> 
> 
> 꽃 그림자, 당신이 옳습니다.
> 

이재가 수없이 되풀이하며 마음속의 꽃 그림자에 대한 생각을 보내는 묘사가, 저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만큼 정말 좋습니다.

대국 지원 문제로 인해 케이국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이후 케이국의 총리 하한이 자신이 지원에 반대하지 않았던 이유를 밝히는 장면이 있습니다.

> 
> 
> 그것은 이재의 말
> 

이 방대한 언어로, 저는 다시 한번 이시가가 마음속으로 되뇌던 꽃 그림자에게 던지는 외침을 떠올립니다.

각국은 리자이가 그 사람의 정체를 신뢰했기 때문에 지원의 손을 뻗어냈고, 리자이가 다른 나라의 인간에게 신뢰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화영의 존재와 그 말이 컸다고 생각한다.

이재와 하야카게는 의견이 맞지 않아도 서로 의견을 솔직하게 나누고, 대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서로 의견이 완전히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의 길을 선택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또한 의견이나 선택이 달라도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친구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기에 하야카게의 말은 이재의 마음에 계속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재의 마음속에 하야카게의 말이 남아있었기에, 그 말이 울려 퍼지고, 이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신뢰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안 돼”라고 하야카게가 말하는 것을 되새기며, “당신이 옳다”라고 생각하는 이재를 나는 좋아한다.

저는 그가 다른 나라로부터 지원을 얻는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이재와 화영이 있었기에만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재는 필사적인 의지로 행동을 개시했기 때문에, 대가로부터 다른 나라로 탈출하여 지원을 요청할 수 있었다. 화영의 말이 있었기 때문에, 이재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어느 쪽이 부족했든, 대의 미래는 달라졌을 테지 않을까요.

두 사람이 있었고, 의견의 충돌과 대화, 작별과 존중이 있었다고 해서, 그 결과 다른 나라로부터의 지원을 통해 미래를 움켜쥘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이야기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타인의 존재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유명(幽冥)의  கர록』에 적은 내용으로 돌아가지만, 한 사람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시야, 한 사람에게 보이는 것, 알 수 있는 정보, 생각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 안에서, 예상치 못한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는, 의견이나 시각, 생각 방식이 다른 다른 사람의 존재, 그리고 그런 다른 사람과의 대화, 소통,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생각하면서, 『전성남』에 등장한 히코에이와 『황혼의 갯마루, 새벽의 하늘』에 등장한 이재가 사실상 동일한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습니다.

이재는 ‘적면의 죄’를 몰랐다. 언위는 신왕 아선의 공보를 믿어버렸다. 이재에게는 경국이 가라앉는 일이 있더라도 대가가 구원받기를 바라는 순간이 있었다. 언위는 자신들을 버린 나그네와 왕보다 남장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강했다. 이재는 경국으로 날아올랐다. 언위는 관저로 뛰어들었다.

단지, 한 가지 다른 점은 이씨가 경국으로 떠나기 전에 화영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비공위는 정섭과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서 마을을 나섰다는 점이었다. 그 차이가 컸다고 생각한다.

그 『전성남』에 묘사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했느냐는 가볍게 말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말한다고 해도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고, 남성에게는 더욱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섭의 정지를 거부하고 비에이는 부에 도착했을 수도 있고, 정섭이 비에이를 막아 그 결과 남성이 경무에 습격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섭과 비에이의 말싸움을 듣고 남성 사람들이 비에이를 곤봉으로 때렸을 수도 있고, 비에이에게 동조하여 리의 의지로 부에 통보했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정섭이 설득하고 가문관에 정보 제공을 함으로써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대립하는 의견을 충돌시키면서, 둘만으로는 태어나지 않았을 새로운 선택지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상상의 이야기일 뿐이며,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며, 말하는 것은 텅 빈 뚜껑 없는 솥과 같습니다. 히코에이와 남창 사람들을 비난할 의도 또한 없으며, 저는 그러한 위치에 설 수 없습니다.

단지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의견이 다른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새로운 것을 낳는 힘,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할 수 있을 만큼 억지스러운 일이었지만, 결국 같은 방식으로 다른 희생을 감수하면서 구원받고 싶었던 이자와 彦衛는, 한쪽은 구원의 손을 잡을 수 있었지만, 다른 한쪽은 지키려 했던 것조차 지키지 못한 그 사이의 차이는 형평이나 차이가 없었고, 마치 한 줄의 차이처럼 미묘했던 것 같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재는 결국, 화영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으로 떠나버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의 마음에는 화영의 말이 남아 있었고, 그로 인해 경국을 비롯하여 각국 사람들이 이재에게 손을 내밀고 대의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며, 대화하는 것 자체가 이재를 변화시키고 이재와 대국(대도)의 미래를 바꾸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부터 저는 의견이 다른 다른 사람의 존재, 그리고 그런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 자리에서 논의가 결렬되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상대방의 말이 자신의 마음에게 영향을 주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열두 개의 나라 이야기』는 늘 타인을 특성에 갇혀 단정짓지 않고, 단정하지 않은 채 상대와 마주하고, 상대 자신을 보는 것, 의견이 다른 타자와 쉽게 단절하지 않고, 대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태도에 의해, 사람과 사람은 입장을 초월하여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입장이나 의견이 다른 타자는 자신에게 다른 시각이나 관점을 제공해주며, 그로 인해 자신이 변화하게 되고, 혼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고, 혼자서는 닿을 수 없었던 새로운 선택지가 만들어져 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미래가 변화하고 개척되어 가는 가능성을 알려줍니다. 『유명한 얕은 물』에도, 입장의 다른 타자와의 소통의 중요성이 나타납니다. 琅燦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사냥에 데려가지 않았던 용맹한 행동이, 황해 바깥에서 군인을 경험하고 있는 巌趙와 驍宗의 말로 생각에 변화를 일으킨 것과 같습니다. 백옥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그녀를 두고 가려고 했던 洽平에게, 백옥 본인이 “저를 데려가 주세요”라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다른 시각을 가진 타인으로부터의 말, 다른 입장의 상대의 말로부터, 사람이 변화하고 미래가 변화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묘사가 흩어져 있습니다. 『유명한 얕은 물』에서는, 한 사람의 인간의 시야의 한계, 알 수 있는 정보의 한계가 그려지고, 그러한 경고에 대해, 물건을 다각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잘 생각하고, 선대의 지혜나 체계화된 지식, 배우는 것의 중요성이 제시됩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열두 개의 나라 이야기』는 시리즈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과 대화의 중요성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입장이나 특성에 섣불리 단정짓지 않고, 상대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의견이 다른 상대와도, 즉시 단절하는 것 서로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 것. 서로 다른 입장과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 이러한 태도와 노력이 자신 안에 다양한 시각과 감성을 키워내고, 그것이 선택과 미래를 바꾸는 계기가 되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열두 개의 나라 이야기』 시리즈가 이야기 형식을 통해 반복적으로 제시해 줍니다. 지금, 다양한 정보가 쏟아지고, 갈등과 단절, 편견과

**출처:** [note 원문](https://note.com/rio_s_happylife/n/nf721fcf93c10)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37청크*

[원문 보기](https://note.com/rio_s_happylife/n/nf721fcf93c10)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