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아 가는 열도에서, ‘판’은 들끓는다――. 어느 아이돌 그룹의 운영에 참여하게 된, 가족과 떨어져 사는 남자. 내향적이고 섬세한 기질 탓에 쌓여 가는 마음의 피로를 달래고 싶은 대학생. 동료들과 즐겁게 무대 배우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한 보도를 계기로 상황이 급변하는 여자. 팬덤 경제를 기획하는 쪽, 빠져드는 쪽, 한때 빠져들었던 쪽―― 세대도 입장도 다른 3개의 시점에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의 공과를 낱낱이 드러낸다. “신이 없는 이 나라에서 사람을 조종하려면, ‘이야기’를 쓰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이른바 덕질에 관한 책이지만, 음모론이나 특정 정당 등 "아, 혹시 그 사건 얘기인가?" 하고 짚이는 시사 소재도 있다. 지금도 현역으로 덕질 중인 몸이기도 하고, 가족은 있지만 고독을 느끼는 40대이기도 하고, 한창 나이의 딸도 있다 보니, 읽는 내내 가슴이 마구 찔리는 책이었다. 특히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그룹, 그러니까 오디션의 모델이 바로 내가 몸담고 있는 바닥이라(아는 사람이 보면 바로 알 정도다), "아악, 이거 나잖아…" 하며 공감성 수치심에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몇 번이고 멈추면서 읽어 나갔다.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쏟아내게 해주고 있다”고 묘사된 것처럼, 팬덤끼리 연대하게 하거나 대립하게 하면서 알아서 춤추게 만들어 CD를 쌓게 하는 수법이… 뭐, 그렇긴 하지 싶으면서도, 팬덤 경제에 휘둘리는 입장으로서는 가슴 아픈 묘사도 많았습니다.
사람은 온 힘을 다하고 있을 때 도파민이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덕질은 비교적 가볍게 온 힘을 쏟을 수 있죠. 매일 공식·비공식을 가리지 않고 공급이 콸콸 쏟아져 나옵니다. 잇달아 발매되는 잡지와 굿즈. 풀컴하려면 도대체 얼마를 사야 할지 모르는 트레카. 굿즈를 데코하기 위한 도구. CD를 수십 장씩 사서 참가하는 토크회. X를 열면 팔로워들과 공급 짤로 한밤중까지 신나게 떠들 수 있습니다. 비판 post가 있으면 옹호 post를 올립니다. 팬덤 오차회. 라이브 때마다 참전룩을 사거나 네일을 하거나 미용실에 가면 자존감도 올라갑니다. 돈과 시간이 무한히 녹아 없어집니다. 손쉽게 접할 수 있고 클린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만큼 호스트보다 더 악질이죠. 하지만 주어진 것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제대로 춤추는 것에서 삶의 보람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건 확실합니다. 힘든 일이 끝나고 스마트폰을 열었을 때 공식에서 최신 영상이 올라와 있거나 TikTok에 영상이 올라와 있는 걸 보면, 바짝 마른 목에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들이붓는 듯한 쾌감을 느낍니다…. 거기서 X의 맞팔 친구들과 함께 들뜨는 것까지가 한 세트입니다. 일 끝나고 가는 술자리 같은 감각. 거의 복지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착취 구조를 깨달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정신을 차리는데, 그 사람은 음모론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중반 이후 등장인물 전원이 미끄러지듯 비탈길을 내려가는 모습이 마치 호러 소설 같았습니다.
이야기 구성 면에서는 3개의 축이 중반 이후부터 서로 얽히며 전개됩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작가가 쓰고 싶은 내용은 다 쓴 것 같지만, 얽힌 축들의 끝이 뚝 끊기듯 끝나 버려서 펼쳐 놓은 이야기는 제대로 마무리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꼭 해피엔딩이거나 흑백을 가려 주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독자의 상상에 맡기지 말고 결말까지 써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결말의 소설이 조금 어렵더라고요…)
여기부터는 자계를 잔뜩 담아 하는 말인데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시간과 돈은 좀 더 생산적인 일에 쓰는 편이 좋고(다만, 그게 힘드니까 편한 덕질 쪽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지만), 정말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시간과 돈 안에서 나오는 콘텐츠를 즐기며 삶의 양념이자 활력으로 삼거나, 세상이 넓어져 행복해지는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근 저는 덕질 이외의 취미 일정을 빼곡히 채워 넣어서 의도적으로 덕질에 시간과 돈을 쏟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습니다. 물론 최애는 정말 좋아하지만요. 용법·용량을 지켜 올바르게 즐깁시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7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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