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다양성의 시대다. 자신에게 솔직하게 살아가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자신을 드러낸 사람들만이 있기 때문이다.
아사이 리요의 『정욕』을 읽을 기회가 있어서 감상 덧글로 작성해 본다.
키리시마, 학원 활동을 그만두기로 했대. 오모리 리요의 소설을 오랫동안 읽지 못했어.
실제로 영화화도 하고 있습니다.
이해라는 자존심에 대하여.
최근 논의되는 성별 문제에 대해 “좋아하는 것”이 분산되고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상황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무생물에게 성적 감정을 느끼는 인물에게 “내가 좋아하는 동성이 있어도 나는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잔인하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는 물에게만 낭만적인 감정을 느끼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자신이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나마 얼마나 제한적이며, 일상적인 발언으로 인해 사람을 상처 입히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고 느꼈다.
또한, “이해한다”는 개념 자체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는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심코 “이해하는 사람”, “이해받는 사람”의 구분이 생겨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다양성”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는 현재 사회에서는 더욱 새롭게 등장하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제에는 뱅뱅의 “숨 쉬듯”이라는 노래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MV에는 많은 포옹과 대조적으로 시체 같은 눈으로 걷는 남성(역: 고조우타로 씨)이 그려져 있다. 여기 등장하는 포옹들이 재회의 기쁨이나 소망, 긍정적인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 헤어짐을 전하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전달하기 위한 포옹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과의 만남에는 기쁨, 안심,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을 구원해주는 멋진 뮤직비디오와 노래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말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내도록 만들어야 할 말이다. 때로는 구토감을 느끼게 하고 눈을 감고 싶어지도록, 자신에게 불리한 것이 바로 눈앞에서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말이어야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함께 숨 쉬자”라는 말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가자, 사라지지 않도록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숭고하고, “사람을 이해한다”는 말이 아무리 가볍게 느껴지더라도, “저곳에 하나의 인생과 목숨이 존재한다”는 것을 마주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적이고 평범하며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다. 자신은 그쪽 쪽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왜 상대방 쪽에 있다는 판단 하에 살아가는 사람의 길을 좁히려 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쪽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가장 크고 유일한 정체성인 걸까.
모두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자신은 정상적이고 옳다고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지지대가 다수 집단이라는 점의 모순에 대해. 3분의 2를 두 번 연속으로 선택할 확률이 9분의 4인 것처럼, 다수 집단에 계속 머무는 것은 명백한 소수 집단이라는 사실을.
다양성
그 단어에 묶여 있던 “이해한 듯한 기분을 유지한다는 자아”가 사실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세상 사람들의 평범함에서 벗어나면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귀찮아서 ‘평범함’에 倣어 살아가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는 내면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흔한 일이다.
바로 이것이,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없어지지 않는’ 것, 즉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어주는 것이 정말 행복하고, 그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흘러갈수록 “다양성”, “지속 가능한 사회”, “ADHD”와 같이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던 개념들이 정의된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편리한 측면이 있지만, 우리는 무심코 “정상”이나 편견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완전한 이해는 결코 성취할 수 없으리라. 그 겸손한 마음으로 사람을 알고 인생을 알 것이다. “그런 사람도 있겠지”라는 뉘앙스를 넘어 “그곳에 하나의 인생과 목숨이 존재한다”라고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 진정한 이해에 다가서는 열쇠라는 것이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11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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