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읽을까 싶어 마음을 졸였지만, 마지막 부분은 최대한 천천히 읽었다. 등장인물들이 너무 애틋해서, 이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조가 대중에게 판매되고 있다.私も 처음에는 신조의 번역본을 읽고 있었는데, 느긋하고 느릿하게 흘러가는 문체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의 사이에 벌어져서なかなかうまく 읽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타키구치 바로타로의 옛 번역본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대략적인 일치였다. 화자의 자아와 같은 것이 희미해지고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듯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를 좋아하지만, 나에게는 읽을 타이밍을 선택하는 작가와 같은 경험이라는 것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이야기는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홀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홀리가 너무나 매력적인 것이다. 홀리는 자유롭고 억압받지 않지만, 상대방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홀리의 이 대사는 그녀의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를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자체가 가능해. 좋아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처럼 대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처럼.”
호리에는 어떤 것에 홀린다는 것, 관계에 이름이 붙는다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듯한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고 싶고, 자신과의 관계를 확실한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안에 가두어 버린다면, 그 사람이 자신과는 다른 인간임을 잊게 됩니다. 호리에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과 “타인을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를 고정하지 않는 것은 일견 건조해 보일 수 있지만, 그렇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따뜻함을 남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관계를 맺는 태도입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해간다. 직전에까지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상대방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의 관계성을 한데 묶어 고정시켜 버리는 것보다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저게 뭐야, 홀리 같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홀리가 취할 때, 나는 홀리의 이미지를 굳게 짓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녀 역시 굳게 정해진 틀에 갇히지 않은 존재일 텐데.
한편, 작품 속에서 홀리를 여성으로서 바라보는 표현이 지나치게 부자연스럽게 나타나지 않는다. 화자는 홀리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홀리에 대한 동경이나 숭배와 같은 감정을 느끼며 그녀를 신성하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다. 독자는 화자의 시선만을 통해 홀리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홀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잡을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잡을 수 없는 신비로운 존재”라는 표현 역시 화자의 시선을 통해 홀리를 고정하고 있는 듯하여, 그것이 매우 안타깝다.
앞으로의 미래에, 변해가는 내가 홀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이 책은 앞으로도 숱하게 다시 읽을 것이다. 홀리와 다시 만나고 싶을 때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만남을 갖게 될 것이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4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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