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의 내용 유출을 포함합니다. 영화관을 나선 후, 이상한 느낌이었다. 화려한 액션도, 숨 막히는 능력 발현도, 패니셔와 대립하는 장면도 최고였다. 그런데 가장 마음 속에 남았던 것은 단 한 명의 인물이었다. 메이 할머니. 이제 이 세상에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 파커 안에는 분명히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그려낸 것은 “스파이더맨이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상실을 안고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브랜드 뉴 데이’라는 제목은 그 점을 조용히 말하는 영화였다. ⸻‘노 웨이 홈’의, 그 다음 ‘홈커밍’에서는 “히어로가 되고 싶다”라고 바랐던 소년이었지. ‘퍼 폼 홈’에서는 아이언맨이라는 위대한 존재의 후계자로서 기대받는 무거운 책임에 시달렸다. 그리고 ‘노 웨이 홈’에서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너무나 큰 대가를 치렀다. 많은 히어로 영화는 그 결정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하지만 인생은, 거기서 시작된다. ‘브랜드 뉴 데이’는 그 “다음 날”을 그린 영화였다. 적을 물리친 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잃은 것을 안고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지.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마음속의 메이 할머니” 이번에 가장 감동받았던 것은 메이 할머니의 존재였다. 그녀는 이제 없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가 길을 잃거나, 분노에 휩싸이려 할 때, 누군가를 구하거나 포기하는 문제로 갈등할 때, 그녀의 가르침은 그에게 깃들어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메이 할머니가 “정답”을
“가르쳐주는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이다. 살던 시절에는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물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피터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래도 그는 마음속으로 되물어본다. “메이 할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순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메이 할머니의 가르침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가치관 그 자체를, 자신 안에 이어받아 버린 것이다. 이는 히어로로서의 성장일 뿐만이 아니다. 한 사람으로서,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자립한 순간이기도 했다.
진을 구한 것은 거미줄이 아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피터의 친절함이 진에게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싸울 수 있고, 물리칠 수도 있다. 하지만 피터는 그보다 먼저 이해하려고 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을 볼 때, “적인가, 아니면 동료인가”가 아니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였기에 메이 할머니가 피터에게 남긴 것이었다.
진을 구한 것은 거미줄이나 주먹이 아니었다. 마음속의 메이 할머니였다. 힘을 얻은 것이 아니라, 힘을 받아들였다. 이번 능력 각성도 정말 훌륭했다. 보통은 “새로운 능력을 얻었어! 더 강해졌어!”로 끝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힘을 두려워하고, 억누르려고 한다. 억누르려다 폭주하고, 결국에는 자신의 의지로 통제한다. 이는 적과의 싸움이 아니다.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액션은 단순한 짜릿함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 드디어 스파이더맨이 된 거군.” 그런 감동이 있었다.
파니셔는 최고의 훌륭한 조력자, 개인 MVP였다. 원래는 “쏘면 끝난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성. 그런 그가 피터와 팀을 이루면서, 가치관이 완전히 맞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 틈새가 시리어스한 분위기를 깨지 않고, 그것 또한 웃게 해 준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에는 의미가 있었다. 패니셔가 있기 때문에 “아무도 죽이지 않고, 그래도 구하려 한다”는 스파이더맨의 신념이 빛을 발한다. 최고의 대비였다. ⸻SNS에 남아있는 “나 혼자만 없는 세상” 이번에는 SNS 묘사가 가장 현대적으로 느껴졌다. 피터가 보고 있던 것은 주로 네드의 게시물이었다. 그곳에는 나도 있었던 일상이 흘러나간다. 웃으며 나눈 시간, 青春 그 자체였던 풍경. 하지만 그 세상 속에는 지금의 피터는 없다. 옛날 영화라면 앨범을 펼치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SNS를 열어보건대, 잃어버린 세계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어서 계속된다.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도구가 “나 홀로 단절된 세계”를 반영해 버린다. 톰 홀랜드 버전의 피터가 어쩔 수 없이 바라보게 된다. 그 미숙함이,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MJ와의 이별은 “졸업”이었다. ‘노 웨이 홈’에서 그는 지키기 위해 떠났다. 이번에는 자신의 의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좋아해서는 집착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인생을 존중한다. 그것은 히어로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한 명의 청년으로서 성장한 것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번 이별은 헤어진 사랑이 아니다. 피터 파커라는 소년이 끝맺고,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걷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네드는 기억을 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드의 그 한순간의 표정. “저게…?” 그런 어색함에도 보였다. 공식적인 설명은 아직 없다. 하지만 네드는 마법사 집단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 있다. 그래서 “마법의 영향을 완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은, 이유는 마법이 아닌 우정이 아닐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마법으로도 완전히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결말은 정말 아름다웠을 것이다. – 진과의 미래, 진과의 관계가 어떻게 묘사될지 기대된다. 로맨스가 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로맨스보다 “이해”였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 고통을 알게 된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로맨스보다 먼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만약 그 뒤에 새로운 로맨스가 있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른다. – ‘Brand New Day’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Brand New Day”는 직역하면 “새로운 하루”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과거를 잊고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잃은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상처도 아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실을 안고서 계속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말하는 “Brand New Day”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끝난 후 마음속에 남는 것은 악당과의 결전이든, 능력의 각성인지가 아닌 “마음속의 메이 할머니”라는 존재였다. 인생에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날이 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도, 그 사람은 더 이상 옆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사람이 남겨준 말이나 가치관은 자신 안에서 살아남는다. 피터 파커는 이제 메이 할머니에게 답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일어서는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그가 진정한 의미에서 스파이더맨이 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길을 잃을 때.
그때, 멈출 때, 문득 마음속으로 “그 사람이 한다면 뭐라고 말할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부모일 수도 있고, 스승일 수도 있고, 친구일 수도 있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여전히 마음속으로 우리를 지지해 주고 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는 히어로 영화의 형식을 빌려 “사람은 어떻게 상실을 감당하며 살아가는가”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스파이더맨이지만, 끝까지 항상 “마음속의 메이 할머니”였던 것이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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