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아무리 경력을 쌓고 카메라 앞에서 몇 번이고 연기해도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지 않고, 완성된 작품을 보고도 “아닌데……”라며 불만을 느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다음에야말로 완벽한 연기를 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작품에 착수하지만, 역시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고민하는 호아킨. 하지만 언젠가는 이상적인 배역을 완벽히 소화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은 사라지지 않아,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했다가 실망하고, 끝없는 재도전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표현에 실망하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어 하는 그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세계적인 인기 배우와 비교하는 것은 주제넘지만, 나 자신도 “사실은 더 잘 쓸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라이터로 일하고 있다. 도무지 마음에 드는 원고를 쓸 수가 없다. 완성되는 것은 요점을 잡지 못하고, 시원하게 읽히지 않는 문장뿐이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대단한 글이 완성되지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기대를 품은 채 컴퓨터 앞에서 발버둥 치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사토코는 언제나』는 세 명의 ‘사토코’, 聡子(히메노 카하루), 沙都子(아리무라 카스미), 里子(이시다 히카리)를 그린 작품이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쓰는 것’이다. 聡子는 중학교 국어 교사(요시다 요)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沙都子는 불륜 문제로 관계가 꼬인 것을 계기로 체험기를 소설로 쓰기로 마음먹는다. 里子는 아들이 집을 떠나 여유가 생긴 것을 계기로 자신의 시간을 집필에 할애하려 한다. 이렇게 세 사람이 글쓰기를 시작한다는 줄거리다.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써 보고 싶다’는 욕구. 그리고 동시에 밀려오는 ‘누가 이런 걸 원하겠어’, ‘꼴사나워’라는 부끄러움. ‘쓰는 것’의 끝에는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이 있지만, 그녀들은 애써 쓴 글을 버리거나 숨겨 둔다. 극 중에서 聡子는 떠오른 줄거리가 너무나 자기에게만 유리한 전개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沙都子는 자신이 쓴 글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징그러워”라고 중얼거리며 파일을 삭제한다. 이렇듯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추함을 직시하는 순간들의 연속이며, 온전한 정신으로는 그것을 견뎌 낼 수 없다. 표현이란 그처럼 낯간지러운 것이다.
沙都子가 지적하듯이, 글을 쓰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 랩을 하는 것,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 그 밖의 모든 표현은 전부 촌스럽고 오글거린다. 표현자는 스스로 그런 행위에 발을 들이고,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망신을 당하거나 바보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질리지도 않고 표현을 계속하고 만다. 왜냐하면 “혹시 다음에야말로”라는 희미한 기대를 도저히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은 사람의 마음을 북돋우는 요소로 가득하다. 창작은 영혼에 좋다. 더 말하자면, 촌스럽지 않은 것, 오글거리지 않는 것에는 그다지 가치 같은 것이 없으니, 그녀들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대단한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3人のさとこ는 생각한다. 그리고 발버둥을 계속하는 것이다. 새 노트의 1ページめ, 새것 그대로의 원고지를 앞에 두고, 그녀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 다음에야말로 분명, 무언가를 쓸 수 있다.
【제가 쓴 책입니다】
【팟캐스트도 하고 있습니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3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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