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학으로 읽는 잡학·특별편
진료실 문이 열리고 환자가 들어온다. 의자에 앉기까지의 몇 초 사이에 '아, 이건 심상치 않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얼굴빛인지, 걸음걸이인지, 숨소리인지. 말로 표현하기 전에 몸이 먼저 긴장한다.
반대로, 검사 수치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도 왠지 귀가시켜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도 있다.
의사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이렇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막연한 판단과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믿음직한 동반자이자,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로 배신하는 상대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이 막연한 판단을 AI 측에서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시리즈 특별편으로, 이 이야기를 진단학의 관점에서 조금 길게 읽어 보고 싶다.
글을 쓰지 않는 AI
2026년 9월, Jev(제브)라는 AI가 공개되었다. 개발사는 TypeSafe AI라는 미국 스타트업으로, 창업자는 ChatGPT를 뒷받침하는 기술 개발에 참여한 전 OpenAI 연구자라고 한다.
지금 널리 쓰이고 있는 AI는 질문하면 문장으로 답해 준다. Jev는 그러지 않는다. 상황과 질문을 주면 미리 정해 둔 선택지 중에서 판단 하나를 고르고, 그것이 맞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숫자로 덧붙여 내놓는다. 일기예보가 “내일은 비, 강수 확률 70%”라고 전하는 것과 조금 비슷하다. 긴 해설은 없고, 결론과 그 결론이 얼마나 확실한지만 밝힌다. 답이 나오는 데에는 0.1초에서 0.5초 정도 걸린다고 한다.
개발사는 이 AI를 '시스템1 모델'이라고 부른다.
이 말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시스템1은 우리 종합진료의사가 진단을 배울 때 접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머릿속에 있는 두 개의 회로
인간의 판단에는 두 가지 회로가 있다고 여겨진다. 빠르고 자동적이며 거의 노력을 들이지 않는 직관적인 회로가 있는데, 이것이 시스템1이다. 다른 하나는 천천히 단계적으로 논리적으로 의식하며 생각하는 회로로, 이것이 시스템2이다. 본래 인지심리학에서 발전한 개념으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패스트 앤 슬로』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진단의 세계에서는 이 틀이 임상 추론을 설명하는 중심축 중 하나가 되어 있다. 일본에서도 도쿠다 야스하루 선생님, 시미즈 다로 선생님, 마쓰모토 겐타로 선생님 등이 직관적 진단과 체크리스트를 활용한 분석적 진단을 비교하는 연구를 통해 그 의의를 소개해 왔다. 나 역시 그분들께 임상 추론을 배운 사람 중 한 명이다. 젊은 시절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몬은 직관적 진단력이 뛰어나니, 시스템 2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만큼 경험을 쌓으면 진단 의사로서 정말 훌륭해질 수 있을 거야.” 격려의 말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직관에 의지하기 쉬웠던 나에게 주신 숙제였던 것 같다.
진료실에서의 시스템1은 패턴 인식이다. 대상포진의 전형적인 발진은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다.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없다. 빠르고 부담이 적으며 불필요한 검사도 필요 없다. 환자에게도, 의료비 측면에서도 고마운 회로이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점이 하나 있다. 숙련된 의사의 직감은 타고난 감이 아니다. 수백 번이나 시스템 2로 생각하고, 그때마다 정답을 확인하며 쌓아 온 경험이 어느새 빠른 회로에 새겨진 것이다. 직감이란, 깊은 숙고를 거듭한 끝에 나온 ‘압축본’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한편, 시스템 1에도 약점이 있다. 본 적 없는 병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골치 아픈 것은, 틀렸을 때조차 맞았을 때와 똑같은 속도와 감촉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지도 의사가 되고 나서 이런 장면이 있었다. 젊은 여성의 우하복부 통증을 진료한 수련의가 "충수염인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해 왔다. 우하복부 통증이라고 하면 우선 충수염이 떠오른다. 전형적인 시스템1의 답이었고, 말투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진찰해 보니 복막 자극 증상은 약한 데 비해 통증이 지나치게 심했다. 소견과 호소가 서로 맞지 않았다. 그 미묘한 불일치 때문에 복부 초음파 검사를 해 보니 난소경염전이었다. 망설임 없는 수련의의 모습은 직관에 기대기 쉬웠던 예전의 나와 겹쳐 보였다. 경험이 부족한 시절의 시스템1에는 언제나 이러한 위태로움이 따라다닌다.
그래서 임상 추론 교육에서는 시스템1로 빠르게 포착하고, 시스템2로 확인하는 식으로 구분해 사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문제는 언제 전환하느냐이다.
자신감은 전환의 신호
Jev의 설계에서 흥미로운 점은 판단과 함께 '얼마나 확실한지'를 반환한다는 것이다. 개발사는 이 숫자가 실제 적중률과 일치하도록 특별한 방법으로 훈련했다고 설명한다. 80%라고 하면 정말 열 번 중 여덟 번 맞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가능해진다면, 용도는 분명하다. 확실성이 높을 때는 빠른 판단을 그대로 쓰고, 낮을 때만 천천히 깊이 생각하는 대형 AI에 넘기는 것이다. 빠른 회로와 느린 회로 사이에 전환 스위치가 달리게 되는 셈이다.
의사의 머릿속에서 이 스위치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자신감'과 '위화감'이다. 자신감이 흔들리고, 왠지 마음이 불편하고, 뭔가 맞지 않는다는 위화감이 생긴다. 그 감각이 시스템 2를 호출한다.
그렇다면, 의사의 자신감은 들어맞는 것일까.
2013년에 미국에서 발표된 연구에서는 118명의 내과 의사에게 쉬운 증례와 어려운 증례를 각각 두 개씩 풀도록 했다. 정답률은 쉬운 증례에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고, 어려운 증례에서는 겨우 6%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도 자신의 진단에 대한 자신감은 10점 만점에 7.2점에서 6.4점으로 떨어지는 데 그쳤다.
정답률이 10%를 밑돌아도 자신감은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자신감이 전환 스위치라면, 이는 스위치가 켜져야 할 때 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연구에서는 자신감이 높은 의사일수록 추가 검사를 의뢰하지 않는 경향도 나타났다.
무엇과 답을 맞춰볼까
여기서 Jev 이야기로 돌아가고 싶다. 한 가지 신경 쓰인 것은 답을 맞춰 보는 상대이다.
Jev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재는 '정답'에는 기존 대형 AI 두 개의 답변 평균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즉, 확실성을 나타내는 수치가 '실제 결과'가 아니라 '기존 AI의 의견'에 맞춰 조정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공개된 성능은 모두 개발사 자체 평가이다.
이 글을 읽고 예전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수련의 시절, 나는 내 판단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상급 의사의 진단과 일치했는지 여부로 가늠하고 있었다. 일치하면 안심하며 자신감을 조금씩 쌓아 올렸다. 하지만 진짜 답은 상급 의사의 머릿속이 아니라, 그 환자분의 일주일 뒤에 있었다.
의료에는 이 ‘진짜 답’이 돌아오기 어려운 구조가 있다. 의뢰한 병원에서 진단이 바뀌어도 원래 의사에게는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래에 더 이상 오지 않는 환자가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정답 확인이 없는 직감은 자신감만 키워간다.
AI도 의사도, 직관을 단련하는 데 필요한 것은 의외로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속도를 추구하기에 앞서, 정확한 답을 확인해 줄 상대를 갖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Jev가 진정으로 맞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외부의 검증이 나오기를 나도 기대하며 기다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단 하나의 질문을 남겨 두고 싶다. 당신의 ‘아마 괜찮을 거야’는 지금까지 무엇과 답을 맞춰 왔을까.
참고
- Kahneman D. Thinking, Fast and Slow. 2011(일본어 번역 『패스트&슬로』)
- Croskerry P. 진단 추론의 보편적 모델. Acad Med. 2009
- Meyer AND, Payne VL, Meeks DW, Rao R, Singh H. 의사의 진단 정확도, 확신도 및 자원 요청: 가상 사례 연구. JAMA Intern Med. 2013;173(21):1952-1958
- TechCrunch, heise online의 Jev 관련 보도(2026년 9월)
- 시미즈 타로, 마쓰모토 겐타로, 도쿠다 야스하루. 직관적 진단의 가능성——DEM International Conference에 참가하여. 주간 의학계신문. 2012년 2월 13일(기고)
- Shimizu T, Matsumoto K, Tokuda Y. 직관적 진단과 비교한 감별진단 체크리스트와 일반 탈편향 체크리스트 사용이 진단 수행에 미치는 효과. Med Teach. 2013;35(6):e1218-29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28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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