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쓰기를 통해 인생은 다시 한 번 자신의 것이 된다: 오키타 슈이치 감독 『사토코는 언제나』 작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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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6-09-23T05:47:27.773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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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내용과 결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 ■ 15세, 35세, 55세. 같은 이름을 가진 세 명의 여성

나카이 사토코, 15세. 비염이 있는 중학생으로 소프트볼부 소속이며, 이비인후과에서 마주치는 동급생을 짝사랑하고 있다. 니시다 사토코, 35세. 영화 배급 회사 홍보부에서 일하며 한국 문화와 조카를 사랑하면서도 6년간 이어진 불륜 관계를 끝내지 못하고 있다. 이지마 사토코, 55세. 세 아들을 키워내고, 오래 이어져 온 도시락 싸기도 끝나려 하고 있다. 가족을 위해 써온 시간 너머로, 마침내 자기 자신의 시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장편영화 데뷔 2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시점에 오키타 슈이치 감독이 완전 오리지널 각본으로 선보인 이번 작품은 나이도 환경도 다른 세 명의 '사토코'를 그린다. 성도 다르다. '사토코'의 한자마저 다르다. 그런데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기묘한 감각이 생겨난다. 이 세 사람은 실은 한 명의 여성이 아닐까. 물론 이야기상으로는 별개의 인물이다. 게다가 오키타 감독 자신도 세 사람을 잇는 데라오 선생의 존재에 대해 엄밀히 따지면 시계열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이 한 명의 여성으로 보이게 되는 듯한 착각"을 노렸다고 말한다. 바로 이 의도가 이번 작품을 단순한 옴니버스 영화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15세의 '앞으로'. 35세의 '지금'. 55세의 '지금까지'. 세 사람은 세 개의 인생인 동시에, 한 사람이 평생 언젠가 경험하게 되는 세 개의 시간인 것이다.

## ■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첫 충동에서 시작된다

영화의 출발점이 된 것은 나카이 사토코였다. 오키타는 당초 "무코다 쿠니코를 동경하는 여자 중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구상했고, 거기에서 글을 쓰는 데 몰두해 가는 소녀로 발상을 넓혀 갔다고 한다. 세 명의 "사토코" 가운데 오키타가 사토코에게 부여한 테마는 명확히 "초기 충동"이었다. 이 제1장이 매우 좋다. 사토코는 처음부터 문학소녀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 안에 있는 망상과 첫사랑과 부끄러운 감정을 국어 교사 데라오에게 이끌리는 대로 쓰기 시작한다. 그러자 멈출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오키타가 그리는 것은 "재능의 발견"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말이 저절로 흘러나와 버리는 순간이다. 잘 쓰는지는 나중 문제다. 남에게 읽힐 수 있는지 여부도 아직은 상관없다. 우선 자신 안에 있던 무언가가 글이 되었다. 그 사실 자체가 기쁘다.

사토코를 연기한 히메노 카하루는 약 300명의 오디션에서 뽑힌 신인으로, 오키타는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배우를 굳이 찾았다고 한다. 그것은 사토코 자신이 ‘초기 충동’을 짊어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 캐스팅이 영화와 아름답게 겹친다. 영화를 처음 연기하는 소녀가, 이야기를 처음 쓰는 소녀를 연기한다. 연기와 배역 사이에는 같은 ‘처음’이 있다. 그래서 사토코의 장에는 기술로 다듬을 수 없는 묘한 기세가 있다.

## ■ 타인의 영화는 홍보하면서 정작 자신의 인생만은 쓰지 못하는 35세

35세 사토코의 장에 이르면, '쓰는 것'의 의미가 바뀐다. 사토코는 영화 배급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즉 그녀는 매일같이 타인이 만든 이야기를 언어로 표현해 세상에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작품을 어떻게 소개할 것인가. 어떤 카피여야 사람들이 돌아보는가. 무엇을 앞세워야 팔리는가. 언어를 다루는 프로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쓰지 못한다. 6년간 이어지고 있는 불륜. 끝났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래도 끝내지 못한다. 이 지점이 이 작품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대목이다. 타인의 이야기에는 제목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는 제목을 붙이지 못한다.

오키타는 사토코의 테마를 “성불”이라고 표현한다. 글을 씀으로써 자신 안에 쌓인 것들을 정리하고, 불륜 그 자체를 끝내간다. 즉 그녀에게 글은 꿈이 아니다. 치료도 아니다. 고백조차 아니다. 자신의 과거를 과거로 만들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인생에는 실제로 끝난 일과 자신 안에서 끝난 일 사이에 시차가 있다. 연인과 헤어져도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둬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 죽어도 그 사람과의 관계는 끝나지 않는다. 사토코는 글을 씀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경험한 시간을 밖으로 내놓는다. 그로 인해 ‘현재진행형’이었던 6년이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된 순간, 인간은 비로소 그곳으로부터 조금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 ■ 55세에 꿈을 이어가도 괜찮다

里子의 장은 한층 다르다.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쓸 시간 자체가 없었다. 三人의 아들을 키우고, 도시락을 싸고, 가족의 일상을 지탱한다. 그것이 二十年 가까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도시락을 싸는 날이 찾아온다. 본인에게는 인생의 큰 매듭인데도, 가족에게는 여느 아침의 연장에 불과하다. 이 어긋남이 애잔하다. 집안일이란, 잘 해낼수록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매일 아침 도시락이 놓여 있고, 빨래는 개켜져 있고, 식사는 차려져 나온다. 누군가 그것을 계속해 왔기에 일상이 성립하는데도, 막상 성립되고 나면 그 수고는 배경 속으로 사라진다. 그런 가운데 里子는 자신이 젊은 시절 책 읽기를 좋아했고 소설 쓰기를 동경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떠올려 간다.

오키타가 사토코에게 준 테마는 ‘꿈의 이어짐’이다. 55세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도중에 끊겨 있던 인생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기서 영화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해낸다. “꿈을 포기하지 마”라고 외치지 않는다. 사토코가 작가로서 성공할지 여부를 가장 큰 문제로 삼지도 않는다. 완성해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축복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해 보여도, 자신의 인생에서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다. 오키타 슈이치의 영화는 예전부터 이 잣대를 한결같이 지켜왔다.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조금 움직이는 순간을 크게 담아낸다. ‘남극 요리인’의 요리도, ‘요코미치 요노스케’의 사진도, ‘사카나노코’의 물고기도 그랬다. 좋아하는 것 때문에 인생이 극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음으로써, 그 인생을 살아갈 이유가 조금 늘어나는 것이다. ‘사토코는 언제나’에서는 그 대상이 ‘쓰는 것’이 되었다.

물론 세 개의 장이 균등하게 강한 것은 아니다. 아리무라 카스미의 사토코와 이시다 히카리의 사토코는 각각의 배우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과 대중적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대체로 예상 가능한 범위의 인물 형상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도 있다. 연기 경험이 거의 없는 히메노 카하루가 구현해 낸 사토코의 장이 지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종잡을 수 없는 독특한 추진력과 비교하면 놀라움이라는 점에서는 한 걸음 뒤처진다. 다만 그것은 약점이라기보다는 세 사람의 나이에 따라 이야기의 온도와 속도를 의도적으로 달리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토코의 장에는 또 하나의 조용한 장치가 있다. 사토코의 남편 역을 맡은 것은 쓰쓰이 미치타카다. 1993년 후지테레비 월9 시간대에서 평균 시청률 27.0%를 기록한 전설적인 청춘 드라마 『아스나로 백서』에서 이시다 히카리는 주인공 소노다 나루미를, 쓰쓰이 미치타카는 고학생 연인 가케이 타모쓰를 연기하며 연인 역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대학 입시 때 가케이가 나루미에게 샤프펜슬을 빌려준 그날로부터 약 33년, 두 사람은 이번에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로서 화면에 나란히 선다. 당시의 드라마를 기억하는 관객에게 이것은 단순한 캐스팅의 묘미를 넘어, 사토코라는 인물의 ‘지금까지’의 무게 그 자체에 현실의 시간의 축적을 겹쳐 보게 되는 순간이다. 가케이 타모쓰와 나루미가 아스나로회에서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그 시간의 훨씬 이후를, 두 사람은 지금 스크린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 세 사람은 왜 ‘사토코’인가

이 작품의 재미는 세 개의 장을 완전히 분리하지 않는 데 있다. 인물이나 책, 기억, 데라오 선생 등이 미묘하게 다른 장으로 스며들어 온다. “저 사람은 아까 그 인물 아닐까” “이 책은 전에도 나오지 않았나”. 그런 작은 연결들이 서서히 늘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복선 회수를 즐기는 유형의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인생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데라오 선생이 누군가에게 말을 전한다. 그 사람이 글을 쓴다. 그것을 또 다른 누군가가 읽는다. 읽은 사람이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 직접 만난 적조차 없는 사람의 행위가 다른 인생을 조금 움직인다. 오키타 자신도, 세 사람에게는 “지금의 나는 누구 덕분에, 혹은 누구 탓에 이렇게 되었다”고 여길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창작 그 자체와도 매우 닮았다. 작품을 만든 본인은 누구에게 닿을지 알 수 없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 한 곡의 음악이, 모르는 곳에 있는 사람의 인생 속으로 불쑥 들어간다.

그러니 이번 작품의 음악을 시바타 사토코가 맡았다는 것도 우연을 넘어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공식 측에서도 그녀를 “네 번째 사토코”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제가 “시미레(feat. 시바타 사토코)”는 오리사카 유타가 이번 작품을 위해 새로 썼고, 시바타도 노래와 극중 음악으로 참여했다. 화면 밖에서도 또 한 명의 ‘사토코’가 세 사람을 이어주고 있는 것이다.

## ■ 오키타 슈이치는 '평범한 인생'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오키타 슈이치의 영화에는 역사적 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인류의 운명도 바뀌지 않는다. 많은 인물들은 영화가 끝난 다음 날부터 다시 평범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오키타는 그 ‘평범함’을 결코 지루한 것으로 다루지 않는다. 15세의 첫사랑. 35세의 불륜. 55세에 떠올린 옛 꿈. 어느 것도 세상에서 보면 사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오키타가 보고 있는 것은 특별한 인간의 특별한 인생이 아니다. 평범한 인간 안에만 존재하는 특별함이다. 그래서 세 사람이 마지막에 같은 화면에 나란히 서는 순간은, 이야기상의 큰 장치라기보다 하나의 선언처럼 보인다. 15세도 35세도 55세도 완성형이 아니다. 사토코는 앞으로도 여러 번 실패할 것이다. 사토코도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사토코의 꿈도 작품을 완성했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인간은 몇 살이 되든 여전히 도중에 있다. 그래서 세 사람을 가로 한 줄로 나란히 세울 수 있다.

## ■ 마치며 '쓰기'란, 자신의 인생을 되찾는 것

이 작품을 찍으면서 오키타는 각본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세 명의 '사토코'의 존재를 깨닫고, 스스로 첫 본격 집필 소설 『사토코는 언제나』까지 써냈다. 단순한 노벨라이즈가 아니라 처음부터 소설로 써 올린 것이라고 한다. 즉 영화 속 등장인물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결국에는 감독 자신마저 소설을 쓰게 된 것이다. 창작의 충동이 사토코에서 사토코에게, 사토코에서 또 다른 사토코에게, 그리고 영화 밖에 있는 오키타 슈이치에게, 나아가 관객에게까지 전염되어 간다.

이쯤 되면 『사토코는 언제나』는 “작가가 되자”라는 영화가 아니다. 잘 쓰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발표하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당신에게도 글로 쓸 가치가 있는 인생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부끄러운 첫사랑이라도 좋다.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실패라도 좋다. 20년 전에 포기한 꿈이라도 좋다. 별일 없는 하루라도 좋다. 그것을 자신의 말로 한 번 써 본다. 그러면, 그동안 자신을 휘둘러온 사건이 자신이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사건으로 바뀐다. 인생 그 자체를 다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을 어떻게 이야기할지는 바꿀 수 있다. 15세에게는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35세에게는 과거를 매듭지을 자유가 있다. 55세에게는 도중에 놓고 온 뒷이야기를 다시 시작할 자유가 있다. 『사토코는 언제나』가 그리고 있는 것은, 글을 쓰는 일의 훌륭함 이상으로,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화자를 다시 자기 자신으로 되찾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격에 나이도 재능도 필요 없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에게도 이야기는 있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감독·각본: 오키타 슈이치
촬영: 아시자와 아키코
음악: 시바타 사토코
주제가: 오리사카 유타 「시미레(feat. 시바타 사토코)」
출연: 아리무라 카스미(니시다 사토코), 이시다 히카리(이지마 사토코), 히메노 카하루(나카이 사토코), 요시다 요, 오다기리 조, 쓰쓰이 미치타카 외
2026년·일본·138분·전체관람가
2026년 9월 18일 전국 개봉
배급: 해피넷 팬텀 스튜디오

**출처:** [note 원문](https://note.com/compactdisco/n/na9323a31a8fa)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16청크*

[원문 보기](https://note.com/compactdisco/n/na9323a31a8fa)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