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 사람. 써 본 적 있는 사람. 소설 따위는 쓸 수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쓰는 것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 당신이 그중 누구이든, 이 영화를 보면 쓰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오래전부터 손을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예요. 최고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최고의 영화, 『さとこはいつも』는 현재 상영 중입니다! ※이미지는 영화 공식 note에서 빌려왔습니다.
목차
- 최고라는 말로는 부족한 영화.
-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의 사토코.
- 인생을 두 번, 세 번.
- 사토코와 선생님.
- 자신의 인생을 타인의 눈으로.
- 끝나는 것보다, 이어지는 것을.
『사토코는 언제나』 줄거리
중학생, 직장인, 주부. 같은 '사토코'라는 이름을 지닌 세 여성이 우연한 계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자신이고, 소재는 자신의 경험이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써 나가면서, 세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과 살아온 역사를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최고라는 말로는 부족한 영화.
아무리 애써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 있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맛본 맛있음이 그렇다. 비슷한 맛들을 조합해서 "식감은 두부와 비슷하고, 맛은 사탕처럼 단맛이 강하지만, 커피와 비슷한 쓴맛이 안쪽에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듣는 사람은 제대로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서로 다른 퍼즐에서 가져온 조각들을 무리하게 맞춰 보는 것과 같다. 다만, "이 사람에게는 처음 맛보는 맛이었구나"라는 것은 제대로 전해진다.
영화 『사토코는 언제나』는 낯선 맛이 아니다. 그려지는 것은 모두 익숙한 감정과 풍경이라, 자신의 경험과는 다른 맥락에 놓여 있어도 ‘알겠다’는 마음이 든다.
기쁨, 부끄러움, 착각, 상심, 분노, 더없는 행복, 그 밖에 살아가면서 찾아오는 모든 것. 알아, 알고 있어. 저것도, 이것도, 그것도.
하지만 그것들을 이런 식으로 나열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이 영화, 최고.
그렇게 단언해 버리면, 그걸로 괜찮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키타 슈이치 감독의 신작이고 오리지널 각본이며, 과거 작품만큼 좋고 전혀 새로운 매력도 있다고 말하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얼마나 최고인지를 전하려면, “최고”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글을 쓰기 전의 사토코.
줄거리에 적힌 대로, 이야기는 세 명의 '사토코'의 일상으로 구성된다.
중학생 나카이 사토코는 ‘사랑’에 대한 동경조차 별로 없는 듯한 인물인데, 사랑이라고 할 만한 감정에 닿으면서 같은 시기에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일’에 매달리게 된다.
영화 배급 회사에 다니는 니시다 사토코는 오래 이어진 불륜 관계에 큰 변화가 찾아오자, 어떤 사람의 권유로 불륜의 나날을 글로 써 내려간다.
육아가 끝나가는 이지마 사토코는 소설가를 꿈꾸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세 명의 '사토코'는 저마다의 이유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이를 계기로 생활이 조금씩 변화해 간다. 그렇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것도 많다. 그녀들이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생각도 없이, 그저 몇 번의 우연 끝에 글을 써보기로 했다.
그것은 살아가는ための 보조 바퀴 같은 것으로, 나아가는 방향은 같을지 몰라도 속도가 조금 느려지고, 보이는 풍경과 불어오는 바람이 달라진다. 서두르지 않고, 당황하지 않으며, 눈앞의 시간에 허둥거린다.
경험을 말로 바꾸려면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생을 두 번, 세 번.
중학생 사토코는 실제 경험이 적은 만큼 망상을 글에 녹여낸다. 비현실을 배치해 봄으로써 자신의 현실을 응시할 수 있다.
직장인 사토코는 불륜이라는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경험을 약간의 미화를 섞어 써 나가면서, 글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해왔는지를 이해한다.
주부 사토코는 자신의 과거를 새의 시점이라는 판타지로 치환함으로써 자신의 본심에 다가간다.
영화이니까 이 사람들의 일상이 이토록 드라마틱하게 비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문장의 매력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느낌이다.
자신의 일상을 말로 표현해 보지만 어딘가 와닿지 않아, 알맞은 말을 찾아가는 사이 자신의 진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체면이나 상식 같은 틀 안에서만 생각해 왔던 나의 일상이 점점 그 속박에서 벗어나 간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과장해서 말하자면, 단 한 번뿐인 인생을 두 번, 세 번 음미하는 행위다.
사토코와 선생님.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나카이 사토코를 연기한 히메노 카하루의 연기로, 관람하고 나면 이 아이에게 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거라고 느껴질 정도다.
겉으로 보이는 유머러스한 면도 매력적이지만, 마음속에 품은 열정을 그려내는 방식도 훌륭한데, 그것이 쉽게 겉으로 드러나는 일은 없고, 뭐랄까 눈은 떠 있는데 침대에서 좀처럼 나오지 못하는, 저혈압 특유의 의욕 같은 인상이 있었다.
이 균형!
감독의 각본과 연출 덕분이라는 걸 알면서도, 배우의 자태부터 몸짓 하나하나까지 '이런 아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聡子에게 글을 쓰게 하는 역할을 맡은 吉田羊도 정말 좋았다. 처음에는 줄곧 진지한 얼굴로 무엇이 진심이고 무엇이 농담인지 알 수 없게 만들다가, 점차 그녀의 말은 모두 진심이라는 것을 관객이 납득하게 만든다. 聡子의 글을 재미있어하는 관점 역시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의 그것임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이 선생님이 쓴 글도 읽어보고 싶다, 이 선생님의 인생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누구나 매력적이고, 익살스러움과 진지함의 조화가 사랑스러워서, 이 사람이라면 어떤 글을 쓸까, 저 사람이라면 이런 글이 될까 하는 상상이 쉽사리 펼쳐져 나간다.
자신의 인생을 타인의 눈으로.
영화의 홍보 문구 중에 "사람은 누구나 한 권쯤은 자신의 책을 쓸 수 있대."라는 문장이 있다. 이는 정말 그 말대로이며, 오히려 한 권에 그치지 않고 글로 써 내려가는 매력만 깨닫는다면 언제까지고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글쓰기 강좌를 맡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제 일상에는 글로 쓸 만한 일이 없어요”라고 한 번쯤은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쓸 만한 일”이라는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다. 사람은 누구나 매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그 대부분은 반복되는 일이나 익숙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새로움이나 자극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타인의 눈으로 보면 누구의 인생도 낯선 인생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리고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끝나는 것보다, 이어지는 것을.
여기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써 보았지만, 이 영화의 재미를 전달하는 것은 역시 어렵다.
이런 사람이 있다는 현실감과, 이런 일이 있다는 유머와, 이렇게 되고 싶다는 바람. 그것들이 여러 겹으로 포개진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된 말로는 빠져나가는 느낌도 있다.
요시다 요가 연기하는 데라오 치호, 오다기리 조가 연기하는 무라모토 겐고, 쓰쓰이 미치타카가 연기하는 이지마 시게아키. 사토코의 상대가 되는 이 세 사람 또한 살아 있다. 이 사람들에게도 이들 나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 부풀어 오른 채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그 괴로움과 슬픔을 이 영화는 살며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가 사토코 일행이 느끼는 빛을 더욱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런 것도 나는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사람의 비애보다 인생에 창문이 있음을 그린 작품이다. 그때가 되면 빛이 비쳐들고, 창을 열면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이 문장에 이끌려가는 과정을 그리는 방식도 최고이고, 일상에 깃든 유머를 포착하는 방식도 최고이며, 히메노 카하루라는 배우를 알게 되는 것도 최고다. 그런 최고를 최고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사람들의 “말로 표현되지 않는 번민”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은 행복한 장면이다.
글쓰기에는 끝이 없다. 그 안에 있는 것은 언제나 변화의 조짐이며, 말로 풀어내는 것, 이야기로 다시 엮어내는 것, 그 행위는 자신과의 대화다.
말로 할 수 없기에 오히려 말로 하려고 몸부림친다.
끝나는 것보다 이어지는 것을 이 영화는 선택한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41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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