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토코는 언제나』를 보고 나니, 나의 ‘앞으로’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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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26-09-26T12:13:56.847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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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出し画像](https://assets.st-note.com/production/uploads/images/317711199/rectangle_large_type_2_40664012bf52899f17f8e034e6a5b35b.png?width=1280)

1987년, 사토코와 같은 중학생이었다. 일본 서쪽 끝자락에 사는 중학생이었다. 그 무렵 가방 속에는 항상 코발트 문고와 만화책이 들어 있었다. 장래 꿈은 만화 원작자가 되는 것이었다. 매일매일 교환일기가 아닌 '교환 만화 일기'를 단짝 친구와 함께 만들고 있었다. 언젠가 『리본』에 투고하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날들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시라는 현실이 우리를 꽁꽁 묶어 버렸다. 어느새 '교환 만화 일기'는 참고서 밑에 깔려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2008년, 사토코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무렵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초등학생 딸과 소아 천식을 앓는 어린 아들을 키우느라 필사적이었다. 만화 원작자가 되겠다는 꿈도,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꿈도 깊고 깊은 가슴속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빛을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2022년, 소아 천식을 앓던 아들은 수도의 대학에 진학했다. 때를 같이해 나도 대학원생이 되었다. 입학하면 50세가 될 참이었다.
그보다 조금 앞선 2021년, 옛 약속이 아직 유효한지 남편에게 물었다. 그것은 아들이 아직 아기라고 불리던 시절의 일이었다. “만약 이 아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대학원에 가고 싶은 꿈을 잊지 못한다면, 진학해도 돼?” “그때가 되어도 가고 싶다면 얼마든지.” 다행히 약속은 유효했다.
시간강사 수입으로 조금씩 학비를 모아 두고 있었다. 세 번 시험을 봐서 안 되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하늘이 내 편을 들어주었다.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었다. “난 대학생, 엄마는 대학원생. 서로 열심히 하자”고 아들이 말했다. “지금까지 엄마의 모든 열정과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라고 딸이 말했다. 두 아이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2025년, 3년간의 장기 이수 과정이 끝났다. 논문 작성과 구술시험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상’이 극적으로 바뀌는 일은 없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남편이 만족해하는 ‘아내’로서, ‘시간강사’로서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재학 중에는 “10년만 더 일찍 진학했더라면” 하며 눈물짓는 일도 많았다.
2026년 9월, 이번에는 일본어 교사 자격을 따기 위해 대학의 과목 이수생이 되었다.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앞으로도 미소 짓게 할 수 있다면 분명 그것만으로 충분해. 마침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나를 ‘사토코는 언제나’가 다정하게肯定해 주었다. 지금의 나는 사토코가 꽃다발을 안고 있었을 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관을 나서자 가을 하늘과 희망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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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ote 원문](https://note.com/dandy_pipit5036/n/nb6dce785056c)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2청크*

[원문 보기](https://note.com/dandy_pipit5036/n/nb6dce785056c)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