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후의 밤에 본 청춘. ‘지방에서의 일본 대표팀 경기 개최’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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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admin
> 작성일: 2026-09-27T18:42:50.828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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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出し画像](https://assets.st-note.com/production/uploads/images/318004736/rectangle_large_type_2_9cbb525c3c0db3e501c6257b663a6053.png?width=1280)

2013년, 마키노 스타디움의 경기장에서 2골을 기록했던 디에고 포를란이, 이번에는 감독으로서 귀환했다.

타임슬립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때의 나에게 그가 후에 J리그에서 뛰는구나, 라고 말해주어도 아마 믿지 않을 거야. 2010년 월드컵에서 MVP를 수상하고 유럽에서 활약하는 스타 선수였으니까. 그런 믿을 수 없는 현실을 겪은 후에, 그는 미야기 스타디움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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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에고 포를란 전술가 겸 감독이 감독으로서 미야기 스타디움에 복귀했습니다✨ 사진을 뒤적거리던 중 2013년 사진이 발견되었습니다. 포를란과 수아레스의 조합은 정말 강렬했었죠. #대한민국축구 #디아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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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깊은 감회로 시작된 13년만의 우루과이전이었다. 결과는 3-1로 일본 대표팀이 완벽하게 승리했다. 일본 대표팀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재치 있고, 강해진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승리였다.

일본 대표 경기 또한 극적이고 재미있었지만, 전좌 경기 또한 좋았다. 오노 신지로 씨의 퇴색되지 않는 판타지스타 본능에 매료되었고, 미야기 스타디움의 피치에 서는 미야모토 히로애상 회장의 모습을 보면서, 비 오는 터키와의 경기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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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대표팀 경기 전에 레전드 매치! 화려하네요! #일본대표 #대한민국축구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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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표님은 그 시절에 태어나 기억조차 나지 않으실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오래된 일이라서, 생각하면 조금은 안타깝네요.

하지만 경기 종료 후, 제 마음속에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점수나 레전드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골목 끝에서 “열정”을 발산하며 젊은이들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여전히 접근이 최악인 미야기 스타디움에서 그들이 보여준 열정은, 그 자체가 전국 각지에서 일본 대표팀 경기를 개최하는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 센터 역할을 하더라도, 그곳은 선수들을 격려하는 “골리裏”였다.

그 날 저의 티켓은 골대 밖 자유석이었습니다. 다만, 탬버린 소리나 응원대장이 포진하는, 일명 ‘응원 중심부’에서는 상당한 거리를 확보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평범한 상황이라면 온 힘을 다해 응원하라고 말하기보다는 주변 상황에 맞춰 박수 치거나, 상황을 지켜보거나 하는 조금 더 차분한 분위기의 자리일 텐데. 하지만 제 바로 앞에 있던 젊은 남자 그룹은 달랐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자마자, 그들은 큰 소리로 응원가를 불렀다.

누군가에게 상의를 당한 것은 아니에요.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어도 상관없어요. “우리들이 이 장소에서 대표를 지지하는 것뿐이야”라고 말하는 듯, 진심으로 응원을 즐기는 모습이 정말 따뜻했어요.

그런 즐거운 분위기는 감염될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주변에 있던 다른 남자들까지 함께 응원하기 시작하셨다.

다른 그룹은 서로 이웃도 아니었다. 아마도 미야기 스타디움의 골월 밖에서 만났거나 본 적이 없는 낯선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일본 대표팀을 응원한다’는 목적을 함께 하는 동료로서 마음이 통했기 그 같았다.

경기 종료의 호흡이 울리고 3-1의 승리가 결정된 순간, 그들은 박진찬란한 미소를 지으며 하이파스를 교환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함께 되어 모두가 웃는 모임 사진을 찍었다.

에어드롭으로 보내드릴까요?

에어드롭으로 사진을 주고받는다. 역시 라인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것 같다. 정말 청춘인가 싶었다.

### 미래의 “12번째”를 위해. 지방에서 일본 대표팀을 생생하게 관람하는 것의 의미.

어쩌면 그들은 일본 대표팀 경기를 처음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수도권에 거주한다면 사이작 스타디움이나 국립경기장에서 매년 수차례 대표전을 관람할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이곳은 미야기현이다. 미야기 스타디움의 개최는 7년 만이었다고 한다. 이전 미야기 스타디움에서 데뷔전을 치른 쿠보 겐이야 선수는 이제 일본 대표팀을 지탱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것만큼 오랜 시간 미야기현에서는 일본 대표팀 경기가 개최되지 않았다. 멀리 나가지 않으면 일본 대표팀 경기를 ‘직접’ 관람할 기회는 흔치 않다.

지역 대표전을 개최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다.

만약 대표 경기가 항상 도쿄 근교에서만 열린다면, 미야지마현의 젊은 선수들이 “첫 번째 대표 경기”에서 이렇게 목을 쉬게 하고 응원가를 부르는 날이 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낯선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응원하고, 경기 후 AirDrop으로 사진을 주고받으며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밤을 보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과 “경기장 현장”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지명리의 듯한 환성, 골이 결정된 순간 스타디움의 흔들림, 그리고 알지 못하는 사람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을 10대, 20대의 젊은 시절에 자신의 현지 경기장에서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처음 생전으로 펼쳐진 대표전이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축구를 사랑하고, 일본 대표팀을 그리고 언젠가는 지역 J리그 클럽을 응원하는 미래의 “12번째 선수”로 성장해 나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전국 각지를 일본 대표팀이 순방할 때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미래의 축구 팬의 씨앗이 일본 전역에 뿌려지는 것이다.

### 역시 끈질긴 “리후의 세례”와, 그것을 압도하는 편안한 여운.

뭔가 뭉클한 감정이 들었지만, 경기 끝나면 곧바로 현실이 닥쳐온다. 그래, 미야기 스타디움의 늘어진 접근성은 여전하다. 익숙한 사람 모두에게 오는 리후의 고된 경험이다.

정보에 어두웠던 탓에 셔틀버스 티켓을 사지 못했다. 걸을 수밖에 없었다. 스타디움을 나온 지 한 시간 남짓. 차를 조금 멀리 세워 둔 사람들도 있어서 엄청난 인파였다. 밤바람은 상쾌해야 할 텐데 사람이 많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드디어 도착한 리후 역에서도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 역 앞에서 빙 돌아다니게 하는 루트로 안내받아, 결국 역 통로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드디어 도착했지만, 분명 전차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기쁜 일이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전차는 텅 비어 있었다. 4명밖에 없어서 우베츠키세키를 차지할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술을 살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농담을 할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시간에 쫓겨 조금 불안했던 야행성 버스에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떠올리는 건 그 근처에서 끊임없이 응원해주고 마지막으로 기념 촬영을 해줬던 젊은이들의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접근은 최악이었고, 귀가길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그래도 일본 대표팀이 미야기현에 와 준 덕분에 그 최고의 ‘아오하르’가 탄생했고, 나는 그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역시 전국 각지에서 대표전을 치르는 의미는 분명히 있다. 미야기 스타디움에 올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역시 앞으로 이 스타디움에 자주 오지 않도록 하자. 너무 힘들다.)

**출처:** [note 원문](https://note.com/fj_mariko31/n/nb81ab259dd8d)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21청크*

[원문 보기](https://note.com/fj_mariko31/n/nb81ab259dd8d)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