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엿볼 우주인들의 기억과 약자들의 지옥――나는 오히려 “경계하라”고 선언한다.
본 기사는 이야기의 핵심에 닿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미시청자는 주의해 주십시오.
이 찬사는 누구의 것인가
우리는 외계인들은 영상과 음에 대한 헌신이 모든 면에 이르도록 완벽하게 구현된 걸작이다. 그것은 틀림없다. 압도적인 가치를 지닌 영화이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 작품을 무작정 포기하고 “봐야만 해”라고 추천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명확히 말씀드린다면, 이 영화는 ‘청춘 영화’라는 상쾌한 범주 안에 묻히지 않으며, 분명한 ‘청춘 호러 영화’다.
현재 SNS와 미디어에서는 애니메이션 영화 ‘우리는 외계인’에 대한 폭발적인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감동적이다”, “전 인류가 봐야 할 영화다”, “올해의 베스트”….
그처럼 칭찬을 해맑게 뱉어내며 “절대 보러 가야 해”라며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분위기를 보면서, 저는 그들이 오히려 가장 ‘우주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말 뒤에는 이 영화가 내포하는 ‘독’에 대한 치명적인 무지무례가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우리의 어딘가에 깊이 와닿는다.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감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절대로 보러 가야 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억압이나 대처할 곳 없는 절망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한 번이라도 어린 시절에 어둠 속을 헤매어 봤던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나는 누군가를 밀어냈을지도 몰라”라는 후회와 공포를 느꼈던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서 가장 먼저 내뱉는 말은 “감동”이 아닐 것이다. “조심해”라는 절실한 경고일 것이다.
저는 그 고통을 안고 살아온 인간의 시점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2. 줄거리: 그때 우리와 지금의 “무엇”
영화 ‘우리는 외계인’ 공식 홈페이지에서 줄거리를 소개한다.
삐뽀리 릴로 릴로 릴로. 지구에서의 극비 임무 완료. 우주로 귀환합니다! 平成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데 고민하는 소년 翼은, 초등학교 3학년 봄, 반의 인기자이자 “특별한” 존재인 暁太郎와 만나 친우가 되고, 두 사람만의 놀이, 의미 없는 대화, 저녁 노을 지는 길—세상은 분명히 그들의 것이었지만, 어느 날을 계기로 暁太郎는 급우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존재가 되어, 험담과 시선이 그를 둘러싼 채 벌어지는, 되돌릴 수 없는 사건 “만약 내가 우주인だったら 어떻게 할까?” 이것은 두 사람의 청춘 이야기인가, 아니면 지우고 싶은 기억의 이야기인가 30년에 이르는 우정을 그린, 끝없이 푸른 출발의 이야기------
이야기의 배경은 습기를 머금은 듯한 平成의 공기가 감도는 지방 도시였다. 주인공들은 어디에나 있는 초등학생이었다. 방과 후 교장, 바랜 놀이기구, 平成 시대의 게임 소프트. 소년들이 주고받는 “잘 가”라는 평범한 인사의 교환은 마치 영원히 이어질 듯한 일상 의식과 같았다.
그러나 그 평온한 이면에는 끊임없이 ‘누군가가 배제된다’는 암묵적인 역학이 작용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그들은, 지역에 뿌리를 내린 “마일드 얀키”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과거의 동료들과의 재회.
그 날,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재회로 인해 드러나는 것은, 미화된 기억의 뒤편에 숨겨진 억울함과, 일순의 기쁨, 그리고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던 걸까?”라는 근본적인 공포이다.
3. 질감의 정체: 헤이세이 시대의 온도감과 ‘즐거움’을 연출한 소품
이 작품의 묘미는 그 초등학생 남학생의 일상으로서의 깊이 있는 현실감에 있다.
교실 한 켠, 낡은 복도와 비 내음. 방과 후 텅 빈 교실과 저녁 노을. 형광등에서 늘어진 전선에 숨을 불어넣는 모습. 수영장의 반짝임. 그 아이에게 말을 걸렸을 때의 시원한 척.
특히, 어린 시절 아야타로를 연기한 아이 타로의 목소리 질감은 훌륭하다. 초등학생 특유의 순수함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높은 톤. 방과 후 교실이나 공원에서 오가는 의미는 있지만 아무 의미 없는 “잘 가”라는 대답. 그 뉘앙스 하나만으로도 관객은 억지로 그 ‘초등학생 시절의 온도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그들이 어른이 된 모습은 섬세하면서도 풋풋한 갱스터 느낌을 풍겼다. 지방 도시의 편의점 앞이나 이자카야에서 들려오는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과거를 미화하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그들의 모습. 하지만 들려오는 기억은 어딘가 왜곡되어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찬란한 청춘의 한 페이지였고, 또 다른 이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가 그 안에 존재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깊이 음미하기에는 부족한 현실감이 이 작품에 있다. 현실의 물건들을 소품으로 능숙하게 배치하는 방식이다.
브라운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교육 방송, 부모님 몰래 즐겁게 했던 게임 소프트, 스티커를 붙인 닌텐도 DS, 그리고 너무나 좋아했던 포켓몬 스티커.
그것들은 패러디가 아닌, 관객의 기억이나 추억을 이용한 ‘버프’로서 기능하고 있다. 감정을 쉽게 해킹하는 수법은 조금 ‘쉬운’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쉬움’이 만들어내는 현실감이,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독성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 있다.
비교한다면, 이 작품을 칭찬한다고 여겨지는 후지모토 타츠키 선생님의 『루크백』을 예로 들 수 있다. 『루크백』 역시 삶의 상실과 재생을 주제로 한 작품이지만, 관객의 기억을 직접적으로 활용한 “버프”의 정도는 이 작품만큼은 아니다. 『루크백』은 현실을 능숙하게 통제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지나치게 개인의 현실에 개입되어 있다. 그것이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 없으며, 그 현실성의 추구가 오히려 이 작품을 걸작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한다.
4. 가해자의 그라데이션과 소비되는 “고통”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관보면서 제가 확신한 것은 이것이 ‘가해자’와 ‘방관자’들의 무심한 논리로 구축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극중에서 드러나는 억울하고 답답한 감정의 틈새에 스며드는 일순간의 기쁨은 분명 아름다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사람을 짓밟는 입장에 동조했을지도 모르는 인간”의 시선이나 “봐주면서 지나치고 버젓이 시간을 흘려보낸 쪽”의 시간축에 의해 보장되고 있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을 공정하게 묘사하려 노력하면서도 압도적으로 윙(Wing) 편의 요구하는 결론이 그려져 있음을 지울 수 없다. 과거에 누군가를 상처 준 것을 잊은 채 “청춘의 고통”이라는 편리한 패키지에 묶어 승화시켜 버리는 사람들. 그 기괴함은 이 영화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마음대로, 억지로 ‘봐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키타로 측의 행동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학생 시절 깃의 우산을 부수는 등 (나중에 사과하려 했더라도) 타인을 놀라게 해 급식의 냄비가 넘치는 행동, 기괴하게까지 묘한 집착심과 타자를 비난하는 사고방식 등은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도, 그런 것을 언제까지 끌고 다녀서야 되겠는가, 라는 생각조차 들지만, 학생 시절 깃의 질투와 분노에서 비롯된 공격적인 호기심을 타인에게 표출한 것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한 감정은 어느 정도나마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깃은 그것을 실천에 옮겨 버렸다.
발을 밟힌 쪽의 집착을 “그것은 과거잖아”라는 한마디로 처리하려 하고, 작별 인사를 “잘 가”라고 하며 끝맺는다. 그것을 “구원”이거나 “용서”라고 말하며, 발을 밟힌 쪽이 지고한 고통을 계속하도록 만든 것을 무시한 채, 마지막 장면의 “잘 가”에 스며든 듯,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강인함을 당연하게 여기는 듯한 소리가 느껴진다. 그것은 등장인물의 말로서의 것이 아니라, 각본 측의 바람이며, 씻어내는 것과 같다기에 더욱 마음을 찌른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는 “나의 기억은 어디까지가 정말 있었던 것인가?”라는 지식의 끝없는 공포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괴롭힘 당한 측에겐 지옥은, 괴롭히는 측이나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별로 다를 바 없는 친구들과의 추억”으로 왜곡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령 그런 기억조차 온전하게 지워버린 채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식의 결정적인 괴리こそ가 이 영화를 ‘호러’로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이 작품은 단지 인생의 잔혹함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훌륭한 작품이다. 꼭 봐야 한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 찌릿함을 느끼는 인간이 보기에, 그 마음은 쉽게 흔들리지 않으리오. 한때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려 했던 세계의 재구축이며, 폭력적인 침식으로 이 영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는 되풀이한다. 쉽게 보지 말고 경계해야 한다.
5. 맺음: 거칠게 그려진 인생을 그리는 걸작
우주인(We)은 틀림없이 엄청난 영화다. 관객의 영혼을 흔들리게 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웅장함 때문에 이 영화를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수 없다.
이 영화가 그려낸 것은 미화된 青春이 아닌, 모래를 씹는 듯 거칠고 끈적한 인생 그 자체다. 그것을 “사스くれ”라고 웃으며 되돌아보고, 쉽게 긍정할 수 있는 “우주인”들처럼, 나는 아직도 그들과 어울리기 어려울 것 같다.
잘 가세요.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27청크
원문 보기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