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대학교생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어떤 실패를 해야 사회인 시절에 별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이렇게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 앙심과 원한의 원인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사형’으로 지내면서 친해졌지만, 어느 시점부터 거리를 두게 된 깃털에 얹는 심리 묘사와 그 묘사는 보는 내내 참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택시 운전사로 정착하고 있는 점, 그리고 깃털과 불화했던 중학교 5,6학년쯤부터 새로운 사형으로 가까워진, 이름은 영화 내에서 소개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흑발처럼 숱이 많은 체격 좋은 소년과 학생 시절을 거쳐 사회인으로도 여전히 교류를 이어가고 있는 점을 보니까 영화 마지막에 제시된 그의 일생은 그렇게 끔찍한 것 같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하늘을 헤엄쳐 다닌 끝에 마침내 발을 디딘 것 같았다.
코라쇼의 알람이 좋았다. 내가 어렸을 때도 코라쇼를 사용했던 기억이 떠올라 왠지 모르게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내 기억 속 코라쇼의 목소리와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코라쇼의 목소리는 대체로 일치했지만, 알람을 멈춘 후의 정형구가 달랐다. 내 코라쇼는 확실히 “오늘도 하루, 힘내자!”라는 격려의 말을 마지막으로 덧붙여 주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것과는 버전을 다르게 하는구나. 초등학교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티프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데옥시스의 스티커는, 그것은 포켓몬판의 덤플에 들어있는 포켓몬 스티커 아닌가. 정말 반가웠다. 이름 부분과 포켓몬 본체의 스티커가 각각 따로 있었고, 레전드 포켓몬 스티커 옆에는 “포켓몬”처럼 평범하고 친근한 이름의 스티커를 붙이고 친구들과 깔깔 웃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을 떠 올려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다. 체육관 2층, 창가에 걸려 있는 묵직한 벨벳 소재의 커튼에 둘러싸이는 짜릿함, 수도꼭지를 거꾸로 틀어 물을 마시는 행동, 두 손가락을 감시대차의 겉면을 따라 움직이는 손놀림, 초등학교 체육관에 보이는 특유의 책상과 의자 그리고 그것들의 배치 등 “초등학교”의 향수를 상징하는 행동이나 모티프가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먼저 언급했지만, 다시 보거나 다른 사람의 감상을 읽어보면 “아, 이런 것도 있었다”라고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인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의 매너에 대해 잔소리를 좀 하고 싶다. 관 안의 조명이 내려가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된 지 2분쯤 지났을 무렵, 입구 통로에서 서서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 내 시야의 구석에 자리하고 있어서, 통로 비상등 불빛이 그 사람의 얼굴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자극을 보내오는 바람에 신경이 분산되어 영화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영화관 아르바이트는 담당 스크린의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다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서, 그 녀석, 뭐 이제 그냥 그 녀석이라 부르겠지만 그 녀석은 직원인가 보다 하고 단정 짓고, 마음속으로 30초 정도, 영화 체험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처지로서 관람을 방해하는 노이즈가 되지 않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해내는 것의 중요함과 어려움을 그 녀석에게 설교해 두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30분쯤 지나서 남녀 커플이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허리를 꼿꼿이 편 채 통로를 걸어 들어왔다. 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다른 관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허리를 숙이고 걷는 배려조차 없다. 전혀 배려라고는 할 줄 모르는 분들이구나 하고 그 시점에서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신경을 빼앗기기에는 아까우니 의식을 화면으로 돌렸다. 운 나쁘게도 그 커플은 내 바로 앞줄에 있는 2인석에 앉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가 여자를 먼저 자리로 안내하려고 손으로 제스처를 보낸다. 도대체 어디에 배려하고 있는 거야. 배려하는 곳이 틀렸다고요. 이렇게 길게 쓰고 있으니 이 필자가 상당히 화가 난 건가 싶겠지만, 뭐 별로 상관없다. 공공장소에서 영화를 볼 때의 매너는 확실히 있지 하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와 같은 마음을 공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영화 감상이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이 단락에 다다른 의미가 생긴다. 그 커플은 영화 중반, 시점이 별로 전환되는 대목쯤에서 짧게 키스를 나누었다. 입맞춤의 희미한 소리가 관 안의 정적 속에 떨어졌다. 도대체 어디에 흥분하고 있는 거야.
이런 찝찝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기분이야. 작가는 다른 사람의 해석에 큰 관심을 갖지 않지만, 이번 영화는 이 찝찝함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인터넷상의 영화 감상 기사를 몇몇 읽어보려고 했어.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이야기 나누는 경험도 있는 것처럼, 그 안에서 기쁨을 찾을 수도 있지. 내가 스스로 말하는 건 어색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과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의견을 공유하면서, 처음 보았을 때 얻을 수 있었던 정보량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해석의 깊이가 확인되는, 마치 우월감을 느끼는 듯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면도 분명히 부정할 수 없어. 물론, 모든 경우에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해석이 더 깊다는 건 아니야. 그 것에 대해 매번 뻔한 우월감을 느끼는 건 아니야.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이야기 나누는 것과 나 사이에 이런 무의식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싶어. 결국, 아래 몇몇 기사에서 인상 깊었던 감상들을 인용해 볼까 해. 정말이야.
오늘 저녁, 츠타야에서 ‘나쓰메 소세키’ 전시를 보며 츠타야 북클럽에서 ‘호 있던’을 읽기로 했다. 츠타야 북클럽에서 ‘호 있던’을 읽는 것은 처음이라 설렘을 느낀다.
전시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일상적인 모습부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초상화,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나쓰메 소세키가 자주 사용했던 붓과 먹물통, 손편지 등은 그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게 했다.
‘호 있던’은 츠타야 북클럽에서 읽는 동안 마치 나쓰메 소세키 자신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섬세한 문체와 따뜻한 시선은 나를 깊은 감동에 빠뜨렸다.
츠타야 북클럽에서 ‘호 있던’을 읽으며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세계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통해 많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마츠이 케무리 씨는 성우로 활동하셨나요?
• 히카리는 우주인으로서의 태도를 의식하고 있었나요?
• 단일 사건을 구성하는 복봉의 등장인물의 시점 전환 기법은 영화 ‘몬스터’에서도 동일한 형식이 발견됩니다.
• 그림의 터치와 주제의 연관성.
•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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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4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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