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는 외계인’을 보았다.
초등학교 동창인 료와 아카타로 히로시는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버튼을 헷갈리는 실수나 서로의 성장, 작은 사건들이 쌓이면서 두 사람은 가까운 곳에서 생활하면서도 점점 멀어지게 된다. 이야기는 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어른이 되기까지 그려진다.
처음 시작하자마자 생각한 건 “화면에 깊이가 없는 것 같아”였다.
가로와 세로 방향에 비해, 전면에서 후면 공간은 분명히 압축되어 그려지고 있다. 교실을 바깥에서 본 때, 창문 바로 너머에 벽이 있고 아이들이 그 안에 갇힌 것처럼 보이는 인상을 받았다. 료와 아키타로 옆에 동료들이 모일 때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 좁이에 어색함을 느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 초등학생 때쯤에는 친구들과 이렇게 가까웠지”라고 되돌아보았다.
화면의 깊이 좁다는 것은 곧 아이들의 사회가 좁다는 것을 보여준다. 열명 정도의 반 친구들 중에서 특히 친한 친구들이 몇 명, 그리고 가족. 일상적인 활동 범위도 도보로 몇 분 이내에 있는 영역 내에 있다. 그렇게 좁은 사회에서 아이들은 놀면서 상처받고, 상처를 주면서도 즐겁게 노는 것이다.
심연 같은 깊이와 대조적으로 위아래의 관계는 강조되어 묘사된다. 계단의 위와 아래, 창밖에서 바라본 위와 아래……. 세상이 좁을수록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자신의 지위에 민감해진다. 깃털과 아카타로가 타는 그 철봉은 이미 짧은 아이들의 시간마저 더욱 짧은 한순간이었을 뿐이었다.
혁과 아키요 타로는 자신의 벽을 넘으려 할 때, 화면의 오음으로 달려나간다. 그것이 세계의 확장이나 그들의 성장을 의미한다면, 깊이의 좁음은 의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에서 묘사되는 남성들 간의 갈등과 언어 사용의 깊이는 매우 높고,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가슴이 아파하는 순간도 있다.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서로의 깊숙한 부분까지 알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버린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친구들과 놀고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상대방의 세계 안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는 없다. 그 의미에서 ‘우리는 우주인’이라는 제목이 아이러니이자 정확하다.
료토와 아키라 사이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 그 중 하나하나를 보기에 우리는 어른들 역시 흔히 일어나는 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아키라는 끔찍한 경험을 잊지 못하고, 그의 인생은 어둡게 가라앉아갔다.
서로 멀어졌던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 재회한다. 아카야 토로가 타키에게 던진 “고발”은 헛소리에 그쳐 버린다. 타키가 그 사건을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 장면은 너무나 잔인하기 그지없다.
가해자는 잊혀지지만 피해자는 잊지 않으며 흔히들 그렇게 말한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평생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야토 하루카와 츠키의 관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비대칭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曉太郎와 츠바사는 그만큼 정반대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 계기가 된 曉太郎가 츠바사의 우산을 부순 사건조차 츠바사는 잊고 있다. 게다가 중학 입시를 강요당한 것은 츠바사의 인생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츠바사와 어머니의 관계는 파탄나지 않았다.
즉, 이 영화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인간은 한 것은 즉시 잊지만, 당한 것은 잊지 않는다’는 단순한 통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무엇에 상처받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느 장면에서, 전차 내 선반 광고에 “잊는 것도 중요하다”라는 문구가 나타나 있었다. 잠재의식적으로 삽입된 이 문구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은 잊으려 할수록 잊을 수 없는 법이다. 잊고 싶어지면서 잊혀질 수 있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학대, 이별, 실패와 같은 경험을 끌어안는 성인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일도 있었지”라며 당시의 가슴 아픔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 이미 많은 것을 잊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고통을 잊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잊어버린 것처럼, 이 고통도 언젠가는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하나의 위안이 될 수 있다.
익토와 아키요 료타로는 두 삶이 겹쳐지듯 펼쳐지는 마지막 장면은 이전까지의 밋밋한 세계와는 달리, 맑고 깨끗한 개방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마지막 부분에서 신경 쓰이는 것은, 이 작품에서는 묘사되지 않는 아카타리에게 가장 소중했을 시간이라는 점이다. 첫사랑의 상대였던 코무기로부터의 편지가 위조였다는 것을 알게 된 아카타리는 마치 자신도 모르게 택시 운전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인생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듯한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갔을까.
뜻밖에도 “이제 나이도 어느 정도 되었으니, 정규직은 취하지 말아야…”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눈에 들어온 구인 광고를 통해 택시 회사에 취직하여 2종免許를 취득하고 운전사가 되었다…라는 평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평범함 자체가, 어느 면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진솔하고, 게다가 작품으로 묘사하는 데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카타로의 삶의 방식은, 가해 행위에 대한 보복을 하거나 잊지 않고, “묵상”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는 듯이 느껴졌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10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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