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축소판과 같았던 두 사람은 어느덧 승자와 패자의 모습으로 갈라졌고, 다시는 동등하게 대화할 수 없게 되었다. 윙과 아카루토 역시 필사적으로 어린 시절을 살아갔고, 어딘가에서 맺어진 레일대로 인해 각자의 위치에 놓였다. 혹은 젊은 두 사람이 언젠가 그 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은, 그 결말에 대한 무의미한 희망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관객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도록 교묘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30대 초반에서 후반의 세대에게는 흔해진 과거의 아이콘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리뷰를 보면서 윙과 쇼타로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의견을 쓴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나 역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꼴등으로 여겨질까 봐 두려워, 특히 교활한 행동을 하거나,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노력을 하는 등 멸시당하는 시선에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려는 마음이 들었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듯 차 안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던 기억도 있다. 당시 붙었던 레이블로 인정받고, 그에 맞춰 행동해야만 했다. 끔찍하게도, 그것이 인간이라는 동물의 사회적인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날 귀중한 물건처럼 간직했던 코하루의 편지가 윙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쇼타로의 마음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끔찍하게 괴로운 공감이 있었다. 순수한 청춘을 보내던 두 사람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것은 왜일까. 수십 년에 걸쳐 쌓인 애틋한 기억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주장일 것 같고, 그 죄의 무게를 잊어버리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제나 우주인과 같은 존재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클라이맥스는 서로의 과거를 떠나는 “じゃあね”를 나누는 장면에서 끝맺고, 그저 즐거웠던 두 사람의 우정 한 장면과 제목이 제시되며 막을 내린다. 나는 기억을 기억 속에 가두며 작별을 고하고, 죄와 후회로 가득 찬 어른의 삶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어려울 때가 있으며, 악의를 품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무의미한 것이다. 영화는 낭만적이고, 때로는 짜릿한 묘사까지 더해져 진정으로 경험해야 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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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3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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