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로 본 감상을 말씀드리는 것이라 글이 다소 어수선할 수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빗방울이 내리는 차 안. 앞 유리에 맺히는 물때를 보며 이 영화의 참맛을 확신한다. 처음 장면일 거라 생각했을 때, 적어도 어느 정도 의욕이 있는 가능성은 있었지만, 이후 햇살 아래 꼼꼼함 없는 부분 없이 완벽함을 보여주었다. 코라쇼의 알람 시계 소리에 노스탤지아에 빠져든다. 동시에 윙즈 가문의 생활 수준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플라워즈 딜라망’의 시작 부분에서 앤 해서웨이의 생활 수준을 보여준 장면과 같은 효과를 주었다. 피아노가 있는 집이 나타나는 것 자체가 중상층을 의미하며, 아버지가 출장으로 해외에 가야 한다는 설정 역시 이러한 묘사를 뒷받침한다. 아버지가 “여권 먹었어?”라는 대사에서 아버지는 다소 순진하고, 어머니는 엄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카리 타로는 반에서 인기가 많고 공부도 잘하며 재미있다는 점에서 초등학교 반 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아이였다. 그는 왜 츠키에게 끌렸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단순히 동료를 찾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의 등장 장면의 기묘함이 첫 번째 포인트다. 그곳에서 “아, 얘는 이상한 녀석이구나”, “외계인 같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근거를 제시하고 있었다. “잘 가자”라는 캐치볼, 그 장면을 츠키의 시선과 아카리 타로의 시선으로 각각 두 번 진행함으로써 마지막 장면의 감동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 영화는 우리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하나씩 맞춰나가도록 하는 구조이며, 작품 측에서 짙은 층위를 짜내어 압축해 온다. 마치 둥근 주사위처럼 말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눈치 때문에 길을 정해지면 불행해진다. 이 작품의 첫 번째 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타로가 우산을 깨고, 츠키가 그것을 부모에게 숨기는 서로의 죄가 그들의 우정을 꺾어버린 부분이다. 우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츠키의 망상으로 UFO가 나타나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이야기의 낭비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지금 작품에서 필요한 묘사였다고 할 수 있다. 아카타로가 정말로 우주인일 것이라고 관객에게 믿게 하려면, 주사 바늘의 장면에서 이질감이 전달되어야 한다. 츠키가 받은 충격, 아카타로가 우주인임을 증명하는 근거의 현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렇게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라면 그곳의 장난기 혹은 영상에 대한 도전은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이다. 빈티지 텔레비전의 열기로 아이가 게임 시간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는 장면은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그곳은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다.
얘기가 엉뚱하게 흘러갔다. 겉옷이 우산을 찾았지만, 게임을 몰수당하고 말았다. 윙. 그 장면에서 부모에게 쌓여있던 불만이 윙이 나중에 반항하는 이유 중 하나로 충분히 작용했다. (동시에 코로코로 콤비의 드래곤에 향수를 느꼈다.) 부모의 논리와 자녀의 논리 충돌이 아카리타로 향한 복수라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쌓인 불만은 어디선가 해소되어야 했다. 그것이 윙의 수조 파괴이자 아카리타의 자전거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해소 과정에서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익보는 죄책감을 느꼈다. 모든 인간에게 선한 본성이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따돌림에 연루되어 참여하고 있는 것, 그리고 수박 깨는 경주를 지나가는 오카다 아타로에게도 다가가지 못했다. 그 때의 그에게는 용기가 없었다.
접시접기(오리비)로 그려진 사과의 말은 그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었다. 그의 선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 편지가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어른의 날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준 외계인은, 그때와 같이 비닐봉투를 들고 있었다.
아카타로상은 할머니 댁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면서 시골처럼 자유롭게 자란 것일 것이다. 이는 윙과의 대조를 나타내는 부분일 수 있다. 그의 조금 특이한 점은 개성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손도장을 줍기 위해 바지를 젖게 하면서 강에 들어가는 행동도, 이해할 수 없는 막대를 휘두르는 행동도, 굳이 엉뚱한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는 점도 전통적인 집에서 살고 있다는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발의 빠르기와 학업은 그의 가정 환경에서 설명된다. 이 즈음의 묘사의 세밀함이 이 작품이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게다가 개성적인 아이는 학교라는 사회에서 튀어 나온다. 그의 방황은 급식을 엎고, 우산을 부수고, 학교에 부모를 사과하게 하는 악영향으로 이어진다. 이는 깃털의 젖은 옷이 성립되는 요소가 된다.
그곳에서부터 아카야토의 삶은 결국 누구의 탓일까. 차갑게 말하자면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탓이다. 불운한 것은 그에게 ‘손리켄의 편지’와 같은 계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바타가라라는 구원이 있었지만,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사람은 변할 수 없다. 내면적인 동기가 없다면, 사람은 변할 수 없다.
또한, SNS에서 자신의 청춘을 빼앗은 윙을 찾았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손오천과 같았다. 윙과 찰리 챈이 만나는 장면의 긴장감. 사람 죽음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을 암시할 정도의 긴장감. 입에 우주인 주사기를 꽂아 넣은 장면은 그대로 윙을 부숴도 된다고 관객 쪽에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윙의 죄는 매우 심각하다고 느껴졌다.
이 장면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감시 카메라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꼬깔콘을 차던 아이들은 그 일에 대해 인식을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어른이 된 윙 역시 그러한 인식을 갖지 않았다. DQN은 이러한 점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윙의 죄책감은 “저렇게 해버렸다”는 아키라의 죄책감은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이라는 방향성을 보여준다.
제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아카타로가 공룡 이름을 잊는 장면입니다. 그곳에서 정면으로 본 공룡은 우주인 그레이처럼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나온 “なんだっけ”라는 한마디가 아카타로를 우주인이 아닌 존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를 맞으며 기억해내려 애쓰는 것은 학교 시절의 과거가 아니라 공룡의 이름입니다. 그 장면이 이 영화 전체를 장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날개가 휴지 종이로 코피를 닦는 장면도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죄는 여러 번 감아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씻어내려 애쓰다 막혀버립니다. 죄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 그 과정에서 과거를 잊는 존재입니다.
이 작품은 이세다 작품의 괴물과 유사하지만, 주제는 완전히 다르다. 훌륭한 애니메이션과 패류 소설처럼 보는 사람이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짜 맞춰가는 묵직함은 앞으로 이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애니메이션 회사에게 주어진 과제와 같은 걸작이었다.
잘 가세요.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9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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