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곧 외계인 리뷰: 에세이와 분리될 수 없는 (스포일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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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판: 뉴스
> 작성자: admin
> 작성일: 2026-10-11T03:20:22.893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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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목표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현재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일본 남성이라고 생각한다. 상상 속 풍경에 묘하게 와닿는 건 바로 이 부분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 계층에 해당되는 사람이지만, 비판적인 충격의 힘은 엄청나다. 감동이라기보다는 충격이라기보다는, 무언가에 압도되어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극장을 나선 후, 모든 인간이 ‘외계인’인 줄 깨닫게 된다. 아무도 후지오 츠키요(後藤翼)이고, 호시아키 타로(星暁太郎)인 것처럼. 당신은 누군가의 후지오 츠키요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호시아키 타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뭔가 다르지. 당신은, 당신 자신이 있지만, 누군가만이 될 ‘당신’이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외계인’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타인에 대한 미지의 것일까? 마지막 한 컷이 그 답을 제시하는 걸까? 무언가가 가슴에 꽉 껴안기고, 그리고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고통, 향수, 여운만이 남은 것이다. 결국에는 매일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는 연속일 뿐이고, 그저 그것뿐이다. 과거에 손을 대는 것은, 단지 과거에 손을 대는 것만을 의미해도 충분하다.

초등학교의 기억이 떠오른다. 제 초등학교는 작았고 학년당 한 학급밖에 없었다. 친구 집에 ‘스머블’을 함께 즐겼던 일, 집에 돌아와서 아파트 공원에서 ‘유령 썰매’를 했던 일, 학교 수영장에서 고무 별을 줍던 일, 운동회에서 친구들과 ‘바바헤라’를 먹었던 일, 탐사선 ‘하야부사’의 퍼즐을 만들었던 일, 친구가 노트를 들고 그린 만화 중 하나를 받았던 일, 친구 오빠에게 놀아주던 일, 공원 벤치에서 ‘듀얼 마스터즈’를 하기도 했다. 운동은 몸 안쪽에서부터 했지만 공부는 잘했었다. 모든 것은 내 몫이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결국 내 편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고, 그 믿음대로 사실이 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다른 커뮤니티를 만나게 되었다. 초등학교에서는 만나보지 못했던 다양한 인종들을 처음 만났고, 세상이 넓어지는 신선함과 즐거움이 있었다. 반면 초등학교는 주변 사람과 나 자신 모두 마음이 복잡해져서 삐쳐지기도 늘어났다. 친구에게는 뺨을 맞았고, 나도 친구에게 뺨을 맞았다. 점점 모두가 생각만 하고, 예전부터 친했던 친구들도 조금씩 변해갔다. 좋고 나쁨 외의 판단 기준이 생겨서 단순한 것들이 복잡해졌다. 재미있는 일도 많이 있었고, 나쁜 일도 너무나 많았다. 중학교에서 학군을 벗어나면서 초등학교 친구들과는 그곳에서 끝이 났다.

누군가와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야기만으로는 서로의 감정을 나누어 낼 수 없는 영화다. 모두 각자의 “あのとき”와 照らし合わせて 보았던 것일 것이다. 겉으로는 대화는 맞추어갈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각자의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그들은 지금은 연락처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부모님을 통해 억지로 알게 된 진로도 어색했고, 6년 동안 가장 친했던 그 친구조차 성인식 때 만난 적이 없었다. 그들과 함께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인간의 근간에 기여한다. 초등학교 친구는 그 기억이 역시 뭔가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순수함보다는 생(生)의 마음으로 부딪히며 겪었던 듯한. 무엇에도 지울 수 없는 기억. 그래서 다른 인생 단계의 친구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느껴진다. 가까워지거나, 그런 차원에 이르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 심지어 ‘친구’라는 단어조차 부적절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곳에는 ‘외계인’이라는 말을 모리와키 감독이 붙인 것일지도 모른다. 소중함과 혐오감 모두를 느끼게 하지만, 정도는 다르더라도 어느 쪽이든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때는 순수하고 어리숙했기에, 그래서 모든 것이 강렬했어야 했는데. 강렬했으면 좋겠다. 과거는 단지 그리움의 대상이어도 좋고, 그리움에 젖어 있을 필요도 별로 없다. 결국 인생은 순간의 연속일 뿐이고, 과거는 희미해져 수정되어 가는 것이다. 불확실한 과거의 덧대는 것은, 그것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보다, 가끔씩 쓰다듬고 닦아내고 발로 차 버리는 정도가 딱 맞다. 그러나 닦아내어 나타나는 빛은 때로는 현재까지 태우고 버릴 정도로 눈부시게 빛난다.

**출처:** [note 원문](https://note.com/cheeky_pika6693/n/ncf245f610708)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3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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