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디거’에 대한 짧은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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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admin
> 작성일: 2026-10-12T15:39:18.601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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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10월 9일에 공개된 후, 바로 찾아가 봤던 작품이었다. 가능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눈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싶다.

단, 아직 공개된 지 얼마 안 되어 일단 이야기의 세부 사항을 쓰지 않고 내가 느낀 점만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은 오락 영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마 이 영화에 재미를 기대하고 보러 간다면, 의미 없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느낌을 받을 것일 겁니다. 하지만 오락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만이 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고 있다는 점 때문에 ‘탑건’이나 ‘미션 임파서블’ 같은 작품을 기대하게 될 수도 있지만, 다르다. 하지만 진지하게 만들어진 정말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톰 크루즈의 연기도 훌륭하다).

또한, 현재를 반영하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꼭 극장에서 직접 관람해 보기를 추천한다. 게다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에 불편함, 버거움, 공허함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작품이 지닌 독특한 감각이 더욱 와닿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아마도 중단될 듯 하지만, 무엇이든 괜찮다. 다만, 획일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최종 결론을 얻으려고 하거나, 명확한 스토리라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여기서부터 쓴 것은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을 굳이 하나의 문장으로 묶지 않고, 조각처럼, 개요와 같은 형태로 써 내려가고 싶다.

## 이 세계에 대한 불심의 표현. 혹은 자본주의 비판.

- 중단, 중좌. 덧없이 막을 내린 결론 없는 자리.
- 마음 편히 스토리에 빠져들면서 영화를 끝까지 마음 놓고 보는 경험은 아니다.
- 결국,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남는다.
- 누구나 이 비극적인 희극에 참여하게 된다 (희극적인 비극일까?).
- 감독 자신과 같고, 배우의 모습과 같으며, 관객의 모습과도 같다.
- 디거를 보면서, 모든 사람이 무관하지 않다는 듯이 다가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떠오르는 이미지: 이 썩은 듯한 불편함,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적인가? 일부는 이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고, 또 다른 일부는 그 시스템을 이용한 욕망 충만을 비판한다. 그들의 대립을 보면서도 ‘어차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며, 이 문제와 무관한 사람은 없다.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결국 둘 다 같은 시스템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펼치려 한다. 출판, SNS 게시물, 영화 역시 상업적인 시스템을 통해 배급된다.

## 즉시 응답 거부, 보류

- 극 중 장면에서 여러 번, 디거 로컬우즈를 흉내 내는 톰 크루즈가 “잠깐만 기다려”라고 말한다.
- 그리고 요청에 대한 응답이 지연된다. “10분 휴식!”
- 루이 알튀세르의 미완성 저서 『재생에 대하여』에서 그는 유도와 응답에 관한 논의를 다루었다.
- 그것은 이데올로기 장치의 작동 방식 중 하나로, 그 관계를 묘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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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은 우리에게 촉구하며 ‘적시’라고 부르짖고, 경찰이 (경찰이 아니더라도) 매일 하는 것처럼 “너, 그대, 바로 너에게!”라는 극도로 흔한 방식에 따라 생각할 수 있는 명확한 작동을 통해 개인들의 주체성을 ‘채용’하거나 (이념은 모든 개인을 모두 채용하며), 혹은 개인들을 주체로 ‘변형’하거나 (이념은 그들을 모두 변형한다) 하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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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답을 보류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장치에 대한 응답을 보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요청(위 인용문에서 “징집”이라는 단어가 적절하게 느껴지는 부분)에 대해 약간의 주저함을 느낀다.
- 현재 사회는 부르거나 요청하면 즉시 응답해야만 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다.
- SNS에서 벌어지는 특정 단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과 적인지 우호인지 구별하려는 태도. 특정 커뮤니티 소속을 어필하기 위한 특정 미메(meme).
- 순간에 반응하면서 무언가 거대한 흐름 속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
- 완전히 차단은 불가능하며, 무관한 일은 있을 수 없다.
- 위와 같이, 시스템 안에 갇힌 것처럼.
- 하지만 즉시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는 걸까…?

## 이야기 구성 거부

- 이 영화는 중간 장면 전환이 일반적인 영화의 장면 전환과는 달리, 강하게 끊어진 듯한 느낌을 주도록 연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의도조차 없는 걸까?
- 이야기(과 자막으로 표시되며, 영어 음성에서는 ‘narrative’라고 했다)라는 용어가 극중에서 등장하지만, 영화 자체는 筋があるようでない(근본이 없는 듯한) 흐름을 갖지 않는다 (むしろ, 극중에서는 특정 인사의 이익을 위해 이야기들이 이용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이것을 읽고 나서 떠오른 것은, 이야기로서 엉성한 점이 전혀 없는 끔찍한 작품,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영화 ‘식스 센스’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이는 원작자인 앤서니 버제스의 작품의 마지막과는 다르다. 원작에서는 사회에 복귀할 조짐이 보이는 듯하지만, 큐브릭의 영화에서는 씁쓸하고 후미애스러운 결말이 펼쳐진다. 이것은 확실히 고전 중의 고전이기 때문에, 줄거리를 짚어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폭력적인 소년 주인공, 알렉스는 어느 날, 결국 경찰에 붙잡혀 수감당하게 된다. 하지만 모범 수감자로서 행동하고 루도비코 치료를 받으며 형기 단축을 제안받은 그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루도비코 치료는 폭력과 성행위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다. 알렉스는 “치료”를 받으면서 폭력, 성행위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받고 극심한 구토를 일으킨다. 동시에 우연히 사용되고 있었던 곡물——역설적으로 그가 가장 좋아했던 곡인——베토벤의 ‘운명’에도 구토감을 느꼈던 것이다. 치료 효과를 보여주는 데모스트레이션 중에 고관들이 기뻐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선택의 여지를 잃어버린 “식스 센스”를 말한다. 출소한 알렉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자신이 교도소에 들어가는 전에 폭력을 행사했던 자들로부터의 보복이었다. 폭력에 혐오감을 느끼게 된 그는 완전히 무력해지고, 이전에는 압도했던 사람들로부터 일방적인 폭력을 당한다. 결국 자살을 생각하고 창문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다. 한시름 붙잡힌 알렉스는 루도비코 치료를 실행하게 된다.

권력 지지율을 잃은 내각 장관으로부터, 거래 제안을 받는다. 루도비코 치료로 인해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행위에 대한 혐오감이 사라진 알렉스는, 언론이 쏘아붙이는 카메라와 타는 듯한 플래시 속에서 장관과 악수를 나눈다. 그리고 그가 떠올리는 이미지는 성 장면이었다. 다만, 여기에 적힌 줄거리만으로는 이것이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신기한 점은, 영상 작품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보면, 설명하기 어렵고 기묘한 감정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결코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주인공이 쉽게 죽거나, 보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도 어딘가 불편함이 있다. 남는 것은 의문뿐이다. 알렉스는 루도비코 치료를 받은 후,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힘을 잃었다. 하지만,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폭력 청년이 되는 것이 좋은 일일까? 나는 이것을 보면서,
- 혹은 영화에서 받은 불편함이 있다면, 그 불편함 자체가 영화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다.
- 말의 이미지 – 부정적 역량 정신 분석 심리 치료에서 비롯된 이 표현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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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적 역량은 어떤 일을 맴돌면서 짊어지는 능력이나 태도를 의미합니다. 즉, 미스터리나 이해할 수 없는 일, 문제에 직면했을 때, 눈앞에 있는 ‘이유’나 ‘사실’에 의존하여 섣부른 해결이나 만족에 빠지지 않고 있는 능력입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사물에 직면했을 때, 즉시 결론을 내지 않고 모르는 채로 두면서 그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지 않고 고민을 계속하는 능력, 혹은 단순히 마음속에 찜찜함을 품어두는 태도를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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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대화 중에는 이데올로기 장치에 대한 응답과 관련하여 작성한 내용이다.
- 이야기는 종종 특정 사회 공동체로의 귀환을 포함한다.
- 조제프 캔벨의 저서 『천 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스타워즈』의 시나리오에 영향을 주어 유명하며, 세계 각지의 신화와 영웅 이야기가 원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 출발부터 귀환까지의 기간 동안 어려움을 극복하고 귀환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여 사회 공동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 이야기는 공동체를 참여시키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 이야기 치료 등도 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에게 큰 역할을 하고 인격의 통합에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그러나 특정 이야기를 활용함으로써 사람들을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 영화 자체를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을 피하는 것은, 그 비판적인 정신과 감독의 양심 때문이 아닐까.

## 부록

- 죽은 자의 목소리로 들리는 동물들의 목소리
- 극중에서는 동물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 디거가 키우는 고양이뿐입니다.
- 영화의 마지막, 엔드롤 음악은 동물 울음소리를 활용한 것이었다.
- 영화의 공식 최종 예고편을 보더라도 오오츠바리로 인한 대규모 재난으로 지구 환경이 크게 파괴된 것을 알 수 있다.
- 상당수의 생물도 죽었을 것이다.
- 아마 멸종한 종들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 동물은 극 중에서는 위급한 상황이거나 이미 소실된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 왜 엔딩 크롤의 음악에 이렇게 많은 동물 소리가 사용될까요?
-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상징적 표현일지도 모른가. 사람을 포함하여……
- (고인의 목소리를 들어라…)

## 후기

이 모든 내용을 다 읽어주실 분들이 계실 거라고 약간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여드리고 싶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위에 언급된 『시계태엽사』도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며 즐겨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출처:** [note 원문](https://note.com/aki_0079/n/n4fb96a6a0d78)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39청크*

[원문 보기](https://note.com/aki_0079/n/n4fb96a6a0d78)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