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아나이스·니노
영화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 머릿속의 “가치 판단 기준”이었다.
너무 심심해서 잠들었어요.
이런 경험도 있는가. 처음에는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정말 재미있잖아!! 같은 영화. 같은 스크린. 같은 톰 크루즈. 스토리와 결말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깜짝 놀랄 만한 것도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첫 번째 영화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영화를 수백 편 넘게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평가가 180도 뒤바뀐 경험은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공개 첫 날, 긴자의 그랜드 시네마 샌샤인에서 상영되었다. 물론 풀 IMAX로 관람했다. 톰 크루즈의 최신작, ‘디거(DIGGER)’였다. 객석은 8할 정도가 찼고, 첫 날이라는 뜨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예고편에서도 ‘미션 임파서블’ 같은 화려한 액션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감독은 ‘벌(Babel)’, ‘버드맨 혹은 (무지가 가져다주는 예기치 않은 기적)’, ‘레베나ント: 蘇えりし者’의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였다. 상당히 독특한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감안하고 있었다. 그래도 망했다. 조용한 장면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톰의 표정이나 목소리 톤도, 내가 알고 있던 히어로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애도되고, 지루하다고 말하기는 뭣했다. 그저 혼란스러웠다. “어? 이렇게 영화가 흘러가는 건가?” 귀가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커플로 와서 본 젊은 남성이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지루해서 잠들었어.” “그래, 당연하지.” 묘하게 납득하게 되었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나도,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하지만 상영이 끝난 직후, 객석에서 10명 정도가 박수를 쳤다. 토크쇼가 함께 진행된 것도 아닌, 일반 상영 중에도 박수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박수를 친 사람들의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작품 자체에 대한 박수뿐만 아니라, 영화관과 영화 산업을 지탱하며 최근 일본 방문 프로모션에서도 철저한 팬 서비스로 존경받는 톰 크루즈에 대한 존경심도 느껴졌다. 그 마음은 나에게도 잘 이해가 갔다. 하지만 영화 그 자체에 대한 감상으로는 솔직히 “음…”였다.
톰 크루즈가 방해를 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혼란스러웠을까. 두 번째를 보면서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보지 않았다. “톰 크루즈”를 보았던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너무나 강렬한 “톰 크루즈”의 모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션 임파서블’의 이스탄 하트, ‘탑건: 매버릭’의 마커스 래익.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존재. 몸을 던지는 모습, 달리는 모습, 비행하는 모습. 그리고 결국 관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존재. 그런 압도적인 스타의 모습이었다. 머리로는 “이번에는 다른 역할이다”라고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감각이 따라가지 않았다. 눈앞의 연기를 보면서 내 뇌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톰 크루즈와 비교해 버렸다. “톰이 이렇게 할까?,” “톰이 이런 사람을 연기할까?” 그 차이를 해소하는 데 뇌의 용량을 빼앗겨, 작품 자체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했던 것이다. 즉, 나는 ‘다이거’를 보면서 영화 그 자체보다는 “톰 크루즈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라는 내 머릿속에 있는 예측 모델과의 오차를 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품에 어색함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 자신의 내면의 “톰 크루즈”와 작품이 달랐던 것일까. 첫 번째 나에게는 그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없었다.
돌려받을 대답은 없다.
두 번째. 톰 크루즈가 사라졌다.
그리고 평일 오후였다. 다시 한번, 같은 그랜드 시네마 산샤인 IMAX로. 이번에는 톰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랜드 클래스 좌석을 확보하고 도전했다. 영화가 시작되자 놀랐다. …あれ? 재미있다. 아니, 잠깐만 기다려. 엄청 재미있잖아!! 첫 번째에 느꼈던 어색함이 거짓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두 번째, 스크린에서 톰 크루즈가 사라졌다. 물론, 정말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라진 것은, 내 머릿속에 있던 ‘톰 크루즈’의 것이었다. 이제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톰이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지 또한 알고 있었다. ‘톰 크루즈’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처음부터, 눈앞의 등장인물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조건이 완전히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는 처음이었고, 객석은 80% 정도였다. 일반 좌석이었다. 두 번째는 평일 오후였고, 그랜드 클래스 좌석. 게다가 스토리가 이미 머릿속에 있어서, 줄거리를 따라가기 위한 주의력도 덜 필요했다. 그러한 요인들이 완전히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의 평가가 뒤바뀐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기대의 틀’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톰 크루즈가 무엇을 할까’를 보고 있었다. 두 번째는 ‘이 인물이 무엇을 할까’를 보고 있었다. 이 차이는, 엄청나게 컸다.
그 거대한 연설이 첫 번째와는 완전히 달랐다.
두 번째 시도였는데, 가장 마음을 흔든 건 톰이 연기한 디거가 재판소에서 펼치는 거대한 연설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마치 완전히 다른 영화를 떠올렸다. ‘이즈미 유키오 vs 토오 다이세이 공통 투쟁 - 50주년의 진실’이다. 1969년, 이즈미 유키오는 토오 다이세이 공통 투쟁의 학생들을 상대로 한 전설적인 토론이었다. 내가 그 영상을 보면서 강하게 느낀 건 “그 자리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적”이라는 공간에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의 위엄이었다. 상대는 분명히 호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처음부터 반발하고 있다. 그 분위기를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억지로 외치는 것조차 사람을 움직이지 않는다. 상대의 반응을 살펴, 말을 신중하게 고르고, 잠시 멈추기도 하고, 때로는 유머까지 사용한다. 그리고 조금씩, 적대감으로 가득 찬 공간 자체를 바꿔나간다. 나는 ‘이즈미 유키오 vs 토오 다이세이 공통 투쟁’을 보면서 그 현실감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디거’의 재판소에서 비슷한 감각을 느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와 배우가 연기하는 극영화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나에게 디거는 단순히 ‘웅변을 뽐내는 인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신에게 반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공간을, 말 한마디로 조금씩 움직여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장면의 톰 크루즈의 열연에 압도당했다. 이상하게도, 첫 번째에는 그렇게까지 느끼지 못했다. 같은 연극인데, 같은 대사인데. 두 번째는 톰 크루즈의 스타 이미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톰 크루즈가 연설하고 있다”는 것보다 “디거가 눈앞의 적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톰 크루즈라는 사람은, 달리지 않아도, 비행기에 매달리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방금 몸을 사리지던 배우였나 싶었는데, 말로 몸을 던지는 톰 크루즈를 보게 됐다. 액션이 아닌, 말로 몸을 사리지던 그가 2회차에야 그 모습이 보였다. 1회차에는 ‘너무 차분하다’는 느낌이었던 시간들이, 2회차에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였다. 지루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아니었다. 인물의 감정이 조금씩 움직이고, 우리가 그 변화를 읽어내기 위한 시간이었다. 영화의 템포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받아들이는 속도가 영화의 속도에 맞춰진 것이다.
재감상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물론, 두 번째, 세 번째 시청은 이전에도 수많은 재미있는 영화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게리 올드먼 주연의 ‘배반의 서커스’가 있다. 극도로 복잡한 스파이 영화로, 첫 번째 시청에서는 스토리 전체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세 번째, 네 번째 시청을 하고 다섯 번째쯤에야 전체적인 맥락이 와닿았다. 하지만, 그 영화는 첫 번째 시청 때부터 ‘좋아했다’. 배우들의 표정, 침묵, 간격, 공기. 처음부터 매료되었었다. 이해가 뒤늦게 따라붙은 영화였다. 반면 ‘다이거’는 달랐다. 첫 번째 시청은 ‘당혹스러움’이었다. 두 번째 시청은 ‘좋아했다’. 단순히 이해가 깊어진 것만이 아니었다. 평가의 틀 자체가 바뀌었다. 이 두 영화를 비교해 보면, 재감상에는 최소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하나는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재감상이다. ‘배반의 서커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작품을 관람하는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재감상이다. ‘다이거’는 작품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것 외에도, 처음 본 자신이 무엇을 기대했는지, 무엇에 걸렸는지, 왜 작품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그것이 보였다. 첫 번째 시청 때 ‘다이거’를 보았다. 두 번째 시청은 ‘처음 본 나’를 보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경’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렌즈에 붙은 안경처럼,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각자 다르다는 거죠. 이러한 ‘경’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는 ‘나는 꼼꼼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경’이 붙어 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나는 자유롭고 즉흥적인 사람’이라는 ‘경’이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죠.
특히, 우리는 자신이 믿는 가치관이나 신념에 기반한 ‘경’을 쓴다는 점에서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경’이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을 인지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더욱 넓고 깊은 시각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선입관’이라는 ‘경’을 벗어나, 더욱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심리학에서는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 기대 등을 활용하여 눈앞의 정보를 해석하는 작용을 “탑다운 처리”라고 한다. 물론 탑다운 처리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과거의 경험을 이용하여 세상을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용이다. 문제는 “과거의 모델”이 너무 강할 때이다. 눈앞에 있는 새로운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된다. 제 경우에는 “톰 크루즈”라는 거대한 과거 데이터가 눈앞의 디거를 가려버렸다. 경영이나 투자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저 경영자는 뛰어나다”라는 평가가 굳혀 있으면, 이상한 말을 해도 “きっと深い意味があるのだろう”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반대로 “이전에 큰 손해를 봤던 종목”, “불운한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면, 기업 자체가 변화해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인간은 사실을 보고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판단”을 통해 사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제게 있어서 그 “과거의 판단”의 대상이 톰 크루즈였다.
귀가 아파.
신뢰하지 말고, 확인하기로 하자.
물론,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첫인상이 좋았는데, 계속 지켜보면서 평가가 하락하는 경우도 있다. 38년 간 증권 영업을 하면서도, 그런 경험은 여러 번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이 경영자는 굉장하다”라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명확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듯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의 말에도 힘이 있었다. 그런데 반 년, 1년 동안 계속 지켜보면서, 말과 행동 사이에는 조금씩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라고 생각하며, 더 자세히 보았다. 역시, 뭔가 이상했다. 반대로, 첫인상에서는 평범하게 보였던 사람이, 관계를 맺을수록 믿음직한 인물로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두 번째, 세 번째 만날 때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화와는 다르게, 기업 경영에는 엔드 크롤(결말 자막)이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평가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첫 직감을 지나치게 믿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첫 번째의 의심만으로 포기해서도 안 된다. 직감은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최종 판결은 아니다. 이 시리즈에서 여러 번 써왔듯이, “Trust, but verify. 믿되, 확인하라.” 타인만이 아니라, 자신의 첫인상도 확인해야 한다.
투자 직감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나 자신”의 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소통 학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마치 톰 크루즈를 관람하는 것처럼, ‘자신 안에 있는 톰 크루즈’를 바라보았습니다. 인간 관계에서도 똑같은 것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을까요? “저 사람은 고집이 세다”, “저 부하는 믿을 만하지 않다”, “저 상사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저 사람은こういう 사람이다”처럼 한 번 만들어진 인상에 갇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번에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상대방의 새로운 말을 듣는 척하면서 “역시 이 사람은こういう 사람이다”라는 증거만 찾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생각을 바꾸고 있을 수도 있고, 성장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은 변하고 있는데, 우리 안의 “그 사람”은 업데이트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상당히 무섭습니다. “경청 잘하는” 기술은 단순히 상대방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기술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 안의 상대방의 과거 데이터를 가끔 의심해 보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어제까지의 인상에 갇히지 않고, “어제까지의 이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도 “경청 기술” 중 하나일 것입니다.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그 사람” 인상을 한 번 지워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관은 자신의 “오해”를 발견할 수 있는 장소이다.
영화관의 매력은 단순히 집중할 수 있는 것, 디지털 디톡스만이 아니야. 자신만의 관점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같은 작품을 다시 보는 것은, 영화 자체는 변하지 않아. 변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했지?”, “왜 그 장면이 지루하게 느껴졌지?”, “왜 그 인물을 싫어했지?”와 같은 질문들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두 번째 볼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처음에는 걸렸던 불쾌한 감정이, 두 번째 볼 때에는 소중한 것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반대로, 처음에는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두 번째 볼 때 얕은 감탄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재감상은 작품을 다시 평가하는 것뿐만 아니라, 처음 평가했던 ‘나 자신’을 다시 평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것 역시 영화관에서 얻을 수 있는 흥미로운 지적인 경험 중 하나일 것이다.
알고 보면 닫히는 영화, 알면 알수록 열리는 영화.
이번에는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칼럼에서 ‘오페라의 유령’의 후속작 ‘러브 네버 다이’에 대해 “볼 필요가 없었어”라고 썼었죠. 당시에는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원작에 남아있었던 ‘상상의 여백’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디거’를 한 번 보면서 작품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톰이라면 이렇게 했을 텐”이라는 기대라는 이름의 잡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에는 처음으로 작품이 열렸습니다. 아는 것이 닫히는 영화가 있고, 아는 것이 열리는 영화도 있습니다. ‘러브 네버 다이’에서는 아는 것이 제 안의 여백을 닫았고, ‘디거’에서는 아는 것이 제 안의 선입관을 깨뜨렸습니다. 같은 ‘알기’이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여백을 채우는 지식은 때때로 작품을 닫고, 선입관을 벗어나는 지식은 작품을 엽니다.
결론 – “알았다고 생각하는 척”과 “놓쳤다고 생각하는 척” 모두 낭비일 뿐입니다.
『DIGGER』. 첫 번째를 보고 나서 누구에게 추천할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째를 보고 나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다. 톰 크루즈의 팬이라면 특히 더 봐야 한다. 다만, 머릿속에서 ‘미션 임파서블’이나 ‘탑건’을 잠시 잊고 보는 것이 좋다. 톰 크루즈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연기하는 한 사람의 인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보일 수도 있다. 첫 번째의 직감을 버릴 필요는 없다. 어색함은 중요한 정보다. 다만, 그 어색함이 바로 지금 보고 있는 작품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가져온 선입관에서 비롯된 것인지. 한 번 본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 ‘DIGGER’의 첫 번째에서는 톰 크루즈를 보았다. 두 번째에서는 드디어 ‘디거’를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첫 번째의 자신을 보았다.
맞아요. 만약 제 첫 번째 모습에게 두 번째 모습이 말을 걸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거예요. “그 불편함은 버리지 마. 다만, 그것이 지금 보고 있는 영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가져온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봐.” 그래서 결국 영화관 순회는 끊을 수 없네요. 첫 번째는 영화를 보는 거예요. 두 번째는 ‘첫 번째 자신’을 관찰하는 거예요.
📊 【🎥 영화관학 観測データ】
* 방문객 수 회복은 완만하게 진행되며, 이전 수준에는 아직 멀고 회복 속도는 완만합니다.
* 작품별 인기가 방문객 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지역별 차이가 나타나며, 도시와 지방의 영화관 동향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영화관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방문하는 세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데이터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영화관 경영자와 투자자가 향후 전략을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 영화관의 미래를 개척하는 귀중한 데이터와 고찰이 담긴 보고서입니다.
2026년 9월 30일 현재
- 총 감상 도서 수는 892권 (2023년 이후)입니다.
- 2026년 연간 감상 수: 238권
- 다회차 재시청: 80편 (33.6%)
- 기존 작품 감상: 33편
🎬 참고 작품, 개념, 주제
人物・俳優トム・クルーズ/ゲイリー・オールドマン/三島由紀夫映画『DIGGER』(2026年)『裏切りのサーカス』(2011年)『三島由紀夫vs東大全共闘〜50年目の真実〜』『ラブ・ネバー・ダイ』『ミッション:インポッシブル』シリーズ『トップガン マーヴェリック』(2022年)概念・テーマトップダウン処理/認知バイアス/期待と現実のずれ/評価の枠組み/第一印象/再評価/リピート鑑賞/説得/聞く技術/「自分の中のその人」の更新━━━━━━━━━━━━━━━━━━━📚 マガジンはこちら『"映画館"は最強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塾 説!』noteマガジン『"映画館"は最強の投資塾 説!』noteマガジン #映画館学 #映画館は最強のコミュニケーション塾_説 #トムクルーズ #DIGGER #三島由紀夫vs東大全共闘 #トップダウン処理 #認知バイアス #第一印象 #リピート鑑賞 #グランドシネマサンシャイン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24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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