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크 클레거 『웨폰즈』

> https://bookfactory.kr/board/news/22045
> 게시판: 뉴스
> 작성자: admin
> 작성일: 2026-10-16T11:06:59.877Z

---

할아버지는 목재업으로 재산을 축적했지만, 이후 두 번 도산했습니다. 그 원인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1970년대 목재 수입 자유화에 따른 국내 목재 산업의 구조적 변화라는 경제 환경의 격변이었고, 둘째는 할아버지의 부주의 등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손재주가 뛰어난 아버지께서는 파산 후 폐허가 된 목재 공장에서 남아있던 거대한 원형의 날을 깎아내어 윤기가 흐르는 손도검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이웃 동네 아이들에게 “엄마에게는 비밀로 해 줘”라고 나눠주며, 어른들에게 발각되어 꾸중을 듣곤 했습니다. 완성된 작품을 본 삼촌은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 손도검을 들고 충분히 거리를 두고 던지기를 했습니다. 손도검을 짊어지고 덤벼 다니며, 힘차게 전복 자세를 취하며 왼쪽 방향의 대나무에 첫 번째를 던지자, 그대로 옆으로 두 바퀴 회전했습니다. 땅에 한 손을 대고 일어나는 순간 지나가던 노인에게 인사를 건네며, 뒤돌아서며 두 번째를 던졌고, 두 물체 모두 5미터 밖의 대나무에 정확히 맞았다고 합니다. 삼촌은 어릴 때부터 몸이 날렵했고, 예의 바른 사람도 있었습니다.

영화는 두 해 전 이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을 소녀의 증언으로 시작한다. 새벽 2시 17분. 가로등에 비춰진 미국 郊외 주택가에서 아이들이 한꺼번에 뛰쳐나온다. 정돈된 잔디밭, 고요한 도로, 집집마다 새어 나오는 불빛. 조지 해밀턴의 “Beware of Darkness”가 흘러가는 가운데 아이들은 양팔을 벌려 밤의 어둠 속으로 달려간다. 집단 실종이라는 불안한 사건의 시작이지만, 그 광경은 아름답다. 마치 아이들이 집을 나서가는 장면처럼 보인다.

“어둠에 주의하라”는 곡은 인간을 현혹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것들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귀에 맴도는 것은 오히려 애절한 멜로디의 측면이다. 반복되는 경고가 부드러운 멜로디에 감싸여 결국에는 멀리 들려오게 된다.

『WEAPONS／ウェポンズ』는 호러 영화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공포스럽지는 않다. 갑작스러운 환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수도 있지만, 폭력 묘사는 공포라기보다는 과도한 묘사가 더 부각된다. 교장이 파트너에게 수차례 머리를 부술 듯 거세게 가격하는 장면은, 그 끈질긴 모습 때문에 오히려 해학적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이러한 장면에서 공포를 자극하는 음악이나 효과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입에서 검은 흙 같은 것을 뱉어내고, 기괴한 자세로 도망가는 모습 또한 괴물이라기보다는 만화의 등장인물과 같다.

문제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전부가 아니다. 담임인 저스틴은 교장 선생님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의 집을 방문하여 창문을 통해 안뜰을 들여다본다. 걱정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동시에 술을 끊은 전 여자친구와 관계를 맺고, 학생의 집 앞에서 술을 마시며 감시를 계속하는 것이다.

아들이 실종된 아처는 저스틴의 과거를 조사하고, 그의 집까지 뒤쫓아 차에 “WITCH”라고 낙서하며, 경찰 서장에게 FBI 수사를 요청한다.

경관 폴은 금주를 지키지 못했고, 전 여자친구의 유혹에 응하여 용의자를 충동적으로 때렸다. 약물 중독에 시달리는 제임스 포함, 등장인물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자제력을 잃어갔다.

그때 나타나는 것은 그래디스다. 화려한 색상의 옷, 큰 사각형 안경, 기괴한 화장. 1970년대 사이키델릭 패션을 연상시킨다. 이미 과도한 인간들만 등장하는 영화에 더욱 튀는 인물이 더해진 것이다.

그라디스가 사용하는 마법은 하이티의 부두에 유래한 고전적인 좀비의 작용과 유사하다. 현대 좀비 영화에서 익숙한 물어뜯김을 통한 감염이 아닌, 마법사가 인간의 의지를 빼앗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한다. 웨스 앤더슨의 『좀비 전설』에서도 다루어진, 인간을 지배하기 위한 좀비이다.

그라디스는 상대에게 물을 준비하게 하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자신의 피를 흘리며, 나무 조각에 다양한 것을 문질렀다. 의식의 절차는 어색함 없이, 반복해서 해왔던 작업처럼 능숙하게 진행되었다.

속임수당한 사람들도 단순히 덤벼드는 것과는 다르다. 제 차량 안에서 잠을 자는 제이슨의 뒤에 숨어, 조용히 머리를 자른 채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지배 대상자를 늘려가는 한편, 지정된 상대방을 죽이는 일도 있다. 식사를 제공받고, 저주가 풀린다면 회복할 여지도 있다. 죽은 자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의 의지가 빼앗기는 것이다.

그라디스는 외부에서 들이닥치는 괴물이 아니라, 친척으로서 알렉스의 집에 침투한다. 부모의 의지를 빼앗고, 원래 부모에게 보호받아야 할 알렉스에게 부모의 보살핌을 받게 한다.

자크 크레거 감독은 어린 시절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 때문에 돌보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알렉스와 그의 부모의 관계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부모 자녀 관계뿐만 아니라, ‘나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시각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때로는 아이보다 더 취약한 어른들의 모습은 영화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이 관계에서 연상되는 것은 ்퇳츠 카즈오의 만화입니다. 『漂流教室』에서는 황폐해진 미래에 떨어진 초등학생들이 공포에 질려 이성을 잃은 어른들을 외면하고 살아남기 위한 질서를 만들려고 합니다. 『14歳』에서는 인류가 쌓아 올린 문명이 그 자체가 위기에 처하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문제에 직면합니다.

또한 хбет츠의 만화에서는 공포와 개그의 경계가 모호하다. ‘마코토찬’과 같은 개그 만화로 심지어 다음 순간에 공포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WEAPONS’에도 공포와 해학이 같은 장면에서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

알렉스는 그래디스의 저주를 역용한다. 그로부터 시작된 마지막 추적극은 거의 희극이다. 밝은 낮의 주택가에서 그래디스가 필사적으로 도망 다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맹렬한 속도로 그녀를 쫓아간다. 집 안을 뛰어다니며, 정원으로 뛰어들고, 옆집으로 도망쳐 들어간다. 미국 교외의 주택이 이어지는 환경을 활용하여, 쫓는 쪽과 쫓기는 쪽이 쉴 새 없이 쫓아다닌다.

그라디스는 결국 붙잡히고, 아이들에게 몸이 찢겨진다. 마치 오래된 전설 속의 악녀가 처단된 듯, 어처구니없는 침묵이 흐른다. 그렇게 격렬했던 추적의 끝에, 태풍이 지나가고 남은 듯 고요함만이 남아 있다.

그래디스가 죽어도 앨릭스의 부모님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시설에 들어갑니다. 앨릭스는 고모에게 입양되어 실종된 아이들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앨릭스에게 돌아가야 할 원래의 가정은 없습니다. 추적극의 해학적인 모습 뒤에, 감추려 하던 어둠이 남은 채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집에서 했던 맹목은 쇠판에 구이용으로도 활용되었다. 집과 목재 공장 사이에 넓게 펼쳐져 있던 빈 땅 한가운데, 주변에 톱날이 촘촘히 박힌 거대한 원판을 가족들이 둘러앉아 고기를 구웠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자리였기에, 나는 친구들에게 들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버님은 그저 만족스러워하셨다.

**출처:** [note 원문](https://note.com/rich_bear819/n/nf06cbcc48345)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8청크*

[원문 보기](https://note.com/rich_bear819/n/nf06cbcc48345)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