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바이오하자드’ 감상: 어른이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남자의 결말은 무엇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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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admin
> 작성일: 2026-10-16T11:39:19.498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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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폰즈’의 감독이 ‘바이오 해저드’를 제작한다

자크 크레거 감독의 신작 ‘바이오 해저드’를 IMAX로 관람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번 감상 준비를 위해 2002년에 개봉한 폴·W·S·앤더슨 감독의 『바이오 해저드』와 크레거 감독의 전작 『웨폰즈』를 미리 시청했다.

2002년판 『바이오 해저드』는 게임적인 템포의 빠르기와 액션이 특징적인 작품이었다.

한편, 『웨폰즈』는 독특한 카메라 워크와 음향, 다중 시점 구성이 인상적인 호러 영화였다.

결국, 크레거 감독은 ‘바이오해제드’라는 거대한 게임 IP를 어떻게 해석할까.

그렇게 기대를 품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크레거 감독 특유의 공포와 유머의 조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감상 후에 이야기를 되돌아보면 단순한 호러 코미디가 아닌 점을 깨달았다.

이 영화는 어느 면에서 보면 “성인으로 되는 것에서 벗어나기만 했던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 아래에는 이야기의 결말을 포함한 내용이 있습니다. 내용 주의.

## 조심성을 지닌 자기중심적인 주인공이라는 신선함

이번 영화에서 가장 신선했던 점은 바로 주인공의 캐릭터다.

2002년판 주인공 알리스는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위기 상황에서도 비교적 침착하게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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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의 주인공은 전혀 다릅니다.

![画像](https://assets.st-note.com/img/1792070778-jAZJb0dGwVIgPxe6ls4FUy7p.png?width=1200)

그는 정말 어리석고, 자기 중심적이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었다.

위험에 직면할 때마다 “젠장!”, “미친!” 등 욕설을 연발하며, 당황한 채로 뛰어다녔다.

어쩌다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야!”라며 짜증이 날 뻔한 순간도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판단에 공감할 수 있는 순간도 있다.

예를 들어,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무리하게 싸우거나 밀고 가지 않고, 재빨리 도망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画像](https://assets.st-note.com/img/1792070862-FRqrAQKH5x14kDCo2yV9iJNl.png?width=1200)

이것은 오히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인간이 좀비와 마주치게 되면 용감하게 싸우는 것보다 도망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즉, 주인공은 단순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닙니다.

겁슬럽고 자기중심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어딘가 인간적인 매력도 있다. 그 묘하게 잘 짜여진 캐릭터 설정이 공포와 유머를 동시에 자아낸다.

##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미션 임파서블을 완수하는 남자

주인공은 의료품을 배달하는 배달원입니다.

이야기의 초반부에서, 그는 병원에서의 배송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새로운 긴급 배송 요청이 들어온다.

그녀는 녹색 케이스에 담긴 중요한 짐을 라쿤 병원으로 배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인공은 처음 그 제안을 거절하려 한다.

그러나, 정상적인 두 배의 보수를 지급한다고 하면 쿨하게 수락해 버린다.

그는 정말 이해하기 쉬운 남자였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짐 안의 내용물이나 일의 사회적 의미가 아닌, 자신이 얼마를 벌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눈 덮인 어두운 길을 달리는 배달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정 중에 다양한 위험에 직면하며 주인공은 좀비화된 소녀에게 팔을 물려 버린다.

그러다가 내가 운반하고 있던 물건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해독제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중화제였다.

여기에서 주인공에게 배달의 의미가 크게 변화한다.

처음에는 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감염되었으므로, 해독제를 완성해야만 목숨이 위험하다.

더 이상 보수 문제와 관련이 없는 일이다.

생존하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짐을 전달해야만 한다.

여기부터 주인공은 죽을 힘을 다해 락운 병원을 향해 나아간다.

수없이 공포에 직면하고, 험악한 말을 늘어놓으며, 도망치고 피하는 행동을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어딘가 밉살스러운 이스탄 하ント와 같았다.

![画像](https://assets.st-note.com/img/1792071050-1lzyZkNc86xgGrEV9nS4iDLO.png?width=1200)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결국에는 정말로 짐을 배송해 줄 것이다.

정말 굉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정의감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 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임무로 변한 것뿐이다.

즉, 자기 중심적인 성격은 처음부터 일관성을 유지한다.

두려움 때문에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간 것이었다.

이 역전된 구조가 이야기의 주요 추진력이었다.

## 공포를 증폭시키고 이야기를 가속화하는 탁월한 연출

이번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템포도 매우 좋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장면과 이야기를 전개하는 장면의 활용 방식이었다.

호러 영화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끔찍한 존재의 순간 역시 매우 무섭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는 것이다.

크레거 감독은 그런 시간 활용 방식이 아주 훌륭하다.

공포감을 느끼게 하려는 장면에서는, 이야기를 지연시키고 관객에게 긴장감을 유발한다.

한편,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면에서는 연이어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템포감 있게 전개한다.

더욱이 긴장감이 고조되는 즈음, 주인공의 어설픈 행동과 험악한 말투가 삽입되었다.

그러자 공포로 인해 긴장되어 있던 공기가 한순간에 웃음소리로 변했다.

이러한 공포와 유머의 균형이 정말 신선했다.

웨폰즈에서도 느꼈지만, 크레거 감독은 관객의 감정을 뒤흔드는 데 매우 능숙하다.

그저 공포를 유발하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고, 방심할 틈이 있을 때 다시 공포를 가한다.

그의 속도 변화 덕분에 끝까지 지루함 없이 즐길 수 있었다.

## 삶을 짊어진 남자가 생명의 책임에서 벗어나 계속해서 도망친다.

이제부터 이야기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다.

이번에 가장 흥미롭게 느낀 점은 주인공과 “생명”의 관계였다.

영화는 주인공이 연인과 통화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러다 연인에게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의 반응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연인의 신체에 대한 염려를 드러내는 듯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낙태를 권유하는 쪽으로 대화를 유도하려 한다.

물론, 임신이나 출산에 대한 결정은 당사자들이 충분히 상의하여 내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단지, 이 장면의 주인공에게는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보다 아버지라는 역할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이고 그 책임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직업이 의료품 배달원이라는 것이다.

혈액이나 장기 등으로 보이는 물건 등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물품을 운반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우는 생각보다 가볍다.

마치 Uber Eats 배달원이 피자를 배달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에게 있어서 의약품은 단순한 보상 수단이다.

이 직업 설정은 도입부의 임신 에피소드와 대조를 이루어 매우 흥미롭다.

주인공은 생명과 관련된 것을 운반하는 능력이 있지만, 새로운 생명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그 성격은 교통사고 현장에서도 묘사된다.

어두운 눈밭길을 운전하던 주인공은 갑자기 나타난 여성을 차로 들이받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냥 도망갈 수 없었다.

여성 한 명을 찾아 조수석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가려 한다.

현재 시점에서는 최소한의 양심과 책임감마저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경찰관에게 막히면, 그 태도가 조금 달라진다.

여성을 차단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갑자기 도로에 나타나 자살을 하려던 것은 아닌가”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보이도록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경찰관에게 그녀를 순찰차에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경찰관이 이러한 인물에 대한 대응에 익숙할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내세워 복잡한 일을 강요하려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앞서의 임신 장면과의 공통점이 드러나는 듯하다.

주인공은 자신의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상대방을 위하는 말이나 합리적인 설명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려 한다.

그는 완전히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책임을 지게 될 때에는 가능한 한 자신의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

이러한 행동의 반복을 통해 주인공의 인물상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 두 번의 아동 살해 사건이 보여주는 인간성의 변화

또한, 이 영화에는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두 가지 있다.

주인공이 아이를 살해하는 장면이다.

처음 한 번은 트럭 안에서 좀비화가 진행되고 있는 소녀를 만나는 상황이었다.

소녀의 발은 이미 비정상적인 상태였고, 돕고자 했으나, 소녀의 발이 달려들어 그녀를 즉시 사살해 버렸다.

그 직후, 주인공은 크게 흔들렸다.

마치 “나, 실수를 저질렀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녀가 감염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간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감각이 남아 있는 걸까.

한계를 넘어서는 행위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진다.

한편, 두 번째 사건은 락운 병원에서 일어났다.

그 결과, 좀비화된 신생아와 같은 존재들이 태어났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 아기를 망설임 없이 살해한다.

이 두 장면을 비교해 보면 주인공의 반응이 뚜렷하게 다르다.

처음에는 동요하고 있었지만, 두 번째에는 거의 망설임이 없었다.

상대방의 감염 상태나 위험성이 다르므로 단순히 도덕관념을 잃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 상에서 아이를 두 번이나 죽이는 장면이 준비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서 처음 임신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처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 후, 이야기 속에서 두 번이나 아이의 목숨을 앗아간다.

이는 아버지 되기를 두려워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더욱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반응의 차이에서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저항감이 조금씩 희미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주인공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면서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성을 잃어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마지막 전개가 더욱 씁쓸한 비극으로 흘러갈 것이다.

##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가 인간 이하의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막바지에 주인공은 드디어 라쿤 병원에 도착한다.

연구자들에게 중화제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국에는 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명을 완수했다.

배달인으로서, 그는 완벽하게 일을 처리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미 감염되었던 주인공의 몸은 점차 변이해갔다.

이번 영화에서는 감염으로 인한 변화가 단순한 좀비화라기보다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의 변화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그 “진화”는 주인공에게 바람직하지 않았다.

몸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지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는 괴상한 생명체로 변모하여 스스로 완성한 해독제를 파괴했다.

정말 아이러니한 결말이었다.

인류를 구원할 가능성이 있는 중화제를 목숨을 건 노력으로 전달했던 남자가 결국 자신의 손으로 그 성과를 파괴한다.

여기, 앞서 언급한 임신 장면과 마지막 변이가 연결된다.

주인공은 아버지 역할을 맡는 것을 두려워했다.

새로운 생명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책임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을 때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자신 스스로가 완전히 새로운 생명체 형태로 변모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형태의 성장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아버지라는 직책이 요구하는 정신적 성찰이다.

또 다른 것은 감염으로 인해 강요되는 육체적 진화이다.

주인공은 전자를 거부하려 했지만, 후자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하며 계속 나아갔던 남자가, 결국 인간마저 되지 못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에 숨겨진 가장 큰 비극일지도 모른다.

물론, 감염이라는 사건을 주인공의 미숙함에 대한 벌로 단순하게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도입부의 임신, 생명과 관련된 배달, 두 번의 아이 살해, 그리고 마지막 변이를 나열해 보면, 삶과 책임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의미에서 이 결말은 단순한 충격적인 전개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 같았다.

## 공포와 웃음의 끝에 남은 검은 인간 드라마

이번 『바이오 해저드』는 호러 영화로서 매우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공포를 깊이 있게 음미하게 하는 연출과 템포 좋게 전개되는 이야기.

무엇보다, 소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주인공이 험악한 표정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감상 후에 이야기를 되돌아보면, 그 기발한 주인공의 행동에는 일관된 특징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타인에 대한 책임에서 최대한 벗어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에 따라 닥쳐오면 놀라울 정도로 강한 행동력을 발휘한다.

절대로 완벽한 악당은 아니며, 훌륭한 히어로이기도 하지.

그처럼 모순적인 인물이었기에 관객은 그에게 공감하고 때로는 경탄하며, 그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행동을 끝까지 쫓아간 결과, 주인공은 결국 자신 스스로조차 통제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자신의 사정에 맞춰 일상을 조절하려 했던 남자가 결국에는 자신의 몸조차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고 타인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만 했던 남자는 결국 자신 스스로조차 통제할 수 없게 되면서 인간성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주인공의 엉뚱한 행동, 두 번의 아이 살해 사건, 그리고 마지막 괴물로의 변신까지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크레거 감독은 관객에게 공포와 유머를 동시에 느끼게 하면서, 그 이면에서 어딘가 부족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IMAX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공포 영화인 동시에, 상영 후에도 곱씹을 여지를 남겨주는 작품이었다.

이번에도 크레거 감독 특유의 블랙 유머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출처:** [note 원문](https://note.com/witty_avocet996/n/n757ecf0f2792)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86청크*

[원문 보기](https://note.com/witty_avocet996/n/n757ecf0f2792)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