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디거/Digger”의 내용 주의. [줄거리] 석유 채굴 회사 CEO, 막대한 부와 오만함을 자랑하는 권력자 디거. 그의 이익만을 쫓는 탐욕스러운 행동이 계기가 되어, 지구 멸망 대재앙에 빠지게 된다!! 디거는 대통령에게 그를 위해 일을 시켜 세계를 구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지만, 세계를 구하기 위해 일어서는데…. 과연 그는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そもそもこの男、信用していいのか⁉ 자연의 소리가 인상적인 영화다. 도입부부터 벌이나 개구리의 울음소리로 시작된다. 석유 채굴 회사의 오만함을 자랑하는 디거 록웰(톰 크루즈)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채굴을 계속하며 지구 규모의 위기를 초래한다. 특히 이 디거가 화려한 침대에서 일어날 때 벌이나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사람, 논 속에 살고 있는 거냐? 미국에서 왜 개구리가 있는 건가? 하고 덤덤하게 생각했다. 개구리의 소리만이 아니었다. 방 안의 가구들 모두,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는 것 같아서 이상하다.
뼈로 장식된 거울, 거대한 샹들리에, 무대처럼 위로 올라가는 커튼. 묘한 인테리어. 회화 속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프리드리히의 그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합성피혁 같은 고양이도 키우고 있었고, 어색함이 엄청났다. 디거는 자신의 석유 채굴 현장이 메탄 누출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빙하에 균열이 생겨 통제 불가능한 거대한 재난과 쓰나미의 위협이 다가왔다. 미국 대통령에게 상황 해결을 지시받은 디거는 과학자들과 함께 워싱턴으로 날아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중간에 설명이 있는데, 디거가 있는 세계는 현실이 아니다. 사실 무대였던 것을, 우리는 등장인물들과 디거의 대사를 통해 알게 된다. 그래, 디거로서 행동하는 그는 카티스라는 배우였던 것이다.
유치원 시절 읽었던 책 중 잊을 수 없는 것이 ‘안디의 지마마 이야기’라는 피터 래빗 시리즈의 그림책이다. 저자는 비아트릭스 포터.
주인공 오리 지마이는 알을 낳는 것이 본성적으로 잘 못한다. 자신이 낳은 알을 농장주에게 곧바로 빼앗긴다. 농장으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알을 낳으려고 몰래 집을 뛰쳐나온다. 숲에서 신사복을 입은 여우를 만난다. 여우는 지마이에게 자신의 집, “새 깃털이 가득한 굴”에서 알을 낳는다고 권유한다. 여우의 진짜 목적은 “오리의 달걀 오믈렛”이나 “오리 구이”를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지마이 근처에 있던 경비견 켐프는 여우의 꾀를 눈치채고, 동료 늑대 개들과 함께 여우의 집으로 곧바로 달려간다. 켐프들과 함께 여우를 쫓아내고, 지마이는 목숨을 건져 농장으로 데려戻어진다. 여우의 집에서 발견된 알은 개들이 먹어치우고, 지마이는 병아리를 피우는 것을 성공하지 못했지만, 무사히 귀환한다. 다음에는 직접 알을 품어주게 하지만, 역시 모든 것이 잘 풀리지 않는다. 슬픈 이야기다.
정말 바보 같구나, 지마마…라고 당시에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낳지도 못하는데 애쓰는 그녀를 멈출 수 없어서, 여러 번, 여러 번이나 읽었다. 아이는, 싫은 동화일수록 반복해서 읽고 외워지는 걸지도 모를까. 나 역시 켐프는 무서워서 싫었고, 따뜻하게 보이기만 한 쾌속사신이 좋았다. 지마마는 끝까지, 쾌속사신을 비난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모든 일이 진행되고, 알을 잃어버린다. 너무 무서운…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생각한다. 디거의 압권적인 연설 장면에서 떠올린 건 바로 이 지마마였다.
디거는 의원들을 앞에 두고 연설한다. 확실히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자신은 석유 채굴을 중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은 요청받아 채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석유를 사용하여 살지 않느냐?라고 설득한다. 편리한 삶을 추구하고 석유를 계속 사용하는 우리 인류의 위선함을 디거는 묻는다. 최근 AI를 어떻게 사용하지 않아야 할지 고민이었기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웠다.
경영자들만의 책임이 아니야.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것은, 전기를 사용하고 석유를 사용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있기 때문이야. 환경을 좋게 하려고 하는데, 실제로 행동을 취하지 못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전기를 사용함으로써 연료는 줄어들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사실을 보지 않고, 스스로 대체할 수 없다고 깨닫고도 알낳기만 반복했던 지마마와, 뭐가 다른 걸까. 디거에게도 그 징후는 있어. 그는 노령의 고양이 마ギー의 생명을 유전자 조작으로 연장하려 해. 고양이는 몸이 한계에 다다르고, 참치도 잘 먹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죽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모습을 안고 쓰다듬고, 남은 생일을 알리는 수의사는 추방당해. 그 모습은 여우의 따뜻한 말뿐만 듣고 알을 챙겨 가진 지마마에 덧붙여져.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지마마에게 덧붙여지는 거지.
디거는 고양이처럼 비행기 안에서 참치회를 먹는 모습도 끔찍했다. 같은 음식을 좋아해서 몇 번이고 먹는 사람을 보면 무서웠다. 왜냐하면 한 번에 본 방송에서 핫츠히즈 카즈오 씨가 “재료에서 원망받지 않도록, 매일 다른 재료를 먹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매일 닭고기를 먹으면, 그 닭고기에게 원망받고 결국 병에 걸릴 것이다. 그런 이야긴 줄 알았다. 마ギー는 죽고, 그 원인은 계속해서 먹은 참치회에서 비롯된 수은이라는 가네슈 박사의 말처럼. 참고로, 그 핫츠히즈 카즈오 씨가 그린 만화 중 ‘14세’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자연적으로 버려진 인간들이 그려진다. “바다, 구해줘!! 하늘, 구해줘!! 땅, 구해줘!!”라고 초록색 머리의 아기(미국)가 외치는 것을 떠올린다. ‘14세’의 세계에서는 전 세계 식물이 한꺼번에 시들시들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들어진 식물을 인간들이 텔레비전에 정신 팔려 있을 때, 정부가 순식간에 인공 식물로 바꿔치기하는 놀라운 장면이 있다. 현재 가장 읽어주고 싶은 만화, ‘14세’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는 여러 겹의 구조가 존재하며, 배우들의 특성이라는 문제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국민적인 스타 톰 크루즈 씨가 디거 역을 맡아 카티스를 연기하는 것이 가장 먼저 언급될 부분이다. 노인 메이크업을 하고 贅肉 슈트를 입었음에도 근육과 긴 다리 덕분에 멋있게 보인다는 점이다. 정말로 贅肉이 있었다면 허리는 더 구부정해졌을 것이고, 어색한 걸음걸이가 되었을 것이다. 추함이어야 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묘하게 멋있어 보인다. 즉, 관객들 사이에서 “항상 봐왔던 멋쟁이 톰”과 “화면에서 보고 있는 미스터리한 모습의 톰”이 서로 경쟁하면서, 살아있지만 이 세상에 없는 사람 같은 인상을 준다. 나는 톰의 열렬한 팬은 아니었지만, 화면 속에서 총을 バン!バン!バン! 쏘는 톰을 ぼんやり하게 지켜볼 때 “이게… 받아들여도 되는 톰? 안 되는 톰? 대체 내가 톰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는 건데!? 설명해 줘!”라는 생각에 맹렬하게 달려들게 되었다.
同じことはガネシュ博士役のリズ・アーメッドさんにも言える。実はこの映画を観に行く前にガネシュ博士の役には、別の俳優さんも候補に上がっていたという記事を、私は先に読んでしまっていた。ガネシュ博士の風貌などから、彼を予告で見るたびに、どうしても私の中でその方が頭に浮かんでしまう。どうしたらいいんだ…そう思いながら劇場に来たが、初めて見たリズさんの演技はあまりにも圧巻で、素晴らしかった。彼で本当に良かったとも思うのだが、「役者に別の役者の面影を見てしまうこと」ははたして大丈夫なのか?失礼なんじゃないだろうかと思い、やはり延々考えてしまう。「観客が役者のイメージを払拭できないこと」「観客が役者に別の役者のイメージを重ねること」これは私が犯した罪なのか?だけど例えば「アニー」とかではいろんな子役が「アニー」を演じてきたじゃないか。そこに前の子役の面影はあるのか???そもそも私が感じる「トムさんらしさ」「リズさんらしさ」とはなんなのか?私はどうやって自分の中にある俳優のイメージと向き合っていけばいいのか?モヤモヤしたまま、パンフレットのリズさんのインタビューページを家に帰ってから読んでみた。彼はこう言っていた。
시대와 상관없이 벼랑 끝에 몰리면서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들은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역할이 있습니다. 이것이 까다로운 점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에 사회 전체의 모습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리즈… 넌, 네 영혼이, 히메가와 아미가 아닌데!!
姫川亜弓는 만화 『글라즈의 가면』에 등장하는 주인공, 북도 마야의 영원한 라이벌이다. 그녀의 대사 중에는 “스크립트는 같아도 연기 방식에 따라 악인도 비극적인 인물로 변모할 수 있다는…”라는 내용이 있다. 亜弓는 북도 마야를 함정에 빠뜨려 역할을 빼앗은 비열한 신인 배우, 엣부의 리에에게 “운명의 남자”의 악역 셰익스피어 샤이록을 예로 들며, 자신도 새로운 흡혈귀 역할을, 자신의 손으로 찾아주겠다?”라는 의지를 담아 이 대사를 내뱉는다. 참고로 샤이록에 대해서는 이 영화에서도, 후에 연극의 출자자, 케니가 언급하고 있다. 亜弓는 겉모습은 귀족적인 여성이지만, 폭주족의 헤드도 맞지 않을 만큼 거칠고 엉뚱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좋아한다. 즉, 亜弓의 이론에 따르면 배우는 스크립트를 스스로 파헤쳐야 한다. 관객이 극장에 배우를 파헤치러 온다면, 우리는 스크립트를 파헤쳐 마실 것이다? 그 깊은 구덩이에 빠질 각오가 있느냐?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 “파헤치는 힘”이 끝내 주지 않는 배우를 특별히 선택하고 있다. 관객은 영화나 배우의 밑배열을 해보고 극장에 오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예를 들어, 등장하는 배우가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켜서 보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고, 배우의 이전 작품이 좋아서 온다는 사람도 있다. 정보 없이 오는 사람의 수는 현대에는 줄어든다. 나쁜 평판은 머릿속에 남아なかなか 떠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정보에 현혹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을 가지고 극장까지 찾아온다. 배우들은 그렇게 “파헤친” 관객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더욱 먼 곳을 파헤쳐야 한다.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톰의 능력이다. “보여주는” 라고 말해준다. 리즈 씨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颯爽하고 액션하는 톰이 아닌 듯한, 그런 선례가 있어서 온 사람들이, 너무 어찌나 엉망인지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의 톰에게 갑자기 바닷속으로 추락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른 극장에서는 추락하는 쪽이 톰이고 카티스였지만, 이곳에서는 정반대다. 바로 우리들이다. (그 외의 사람들도 엄청나게 힘센 분들만 등장하는 것 같다.)
카티스는 연극 도중 “묻어내는 행위”에 참다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리즈 씨가 말하는 “사회 전체의 모습을 창의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정신이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카티스는 세계를 파괴한 “묻어내는 자”의 끔찍함을 희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경계한다. 실제로 이상 기후로 인해 자신의 가족에게 피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극장을 나섰음에도 어리석은 화석 연료를 구걸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세상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어리석게 행동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카티스를 “묻어내는 행위”로 찾아온다. 반면 이야기를 엮는 중요성을, 연출가 한나(소피에 와일드)가 이야기한다. 아무리 끔찍한 상황이 되더라도 웃어넘기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말 모두 옳다고 연극의 출자자이자, “묻어내는 자”의 사촌인 케니(제시 プレモンス)가 말한다. 한나의 “비극을 상처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희극으로 바꾸는 것만이 인간은 나아갈 수 있다”는 창작자로서의 이상을 그는 부정하지 않는다. 연극의 막바치, “묻어내는 자” 카티스는 바다 위에서 어린 케니에게 고양이의 유골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예전에 고양이였던 것조차 모습이 변하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의미의 말을 전한다.
이 장면이 어찌나 기이하고, 매우 신비로웠던지. 처음에는 손주만 알고 있었던 삼촌과의 소중한 시간을 재현하려 했던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케니가 삼촌에게 물려받은 것이 매기(Maggie)의 유해(遺灰)가 아니라, 로크웰(Rockwell) 가문의 후손, 즉 ‘파각자(掘る者)’로서의 메시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죽어간 기억조차 잿더미로 이용하라. 그래야 너는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것은 너무 사악한 걸까. 하지만 堰を切은 듯이 말을 시작하는 케니를 보면서, 벽에 삽을 걸어두고 할아버지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파각의 모습이 어김없이 떠오르는 것이다. 케니는 삼촌과의 추억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다. 삼촌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법을 케니에게 남겨주었다. 그것은 말과 ‘사람이 믿게 하는 힘’이었다. 여기서 또 울고 말았고, 극장의 관객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케니는 변화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고양이는 잿빛으로 변하고, 석유는 금으로 변하며, 빙하 산은 재난으로 변한다. 삼촌과의 추억은 감동적인 연극 장면으로 변한다. 케니는 그렇게 카티스에게 딸을 찾는 것으로 은혜를 갚았고, 금의 힘으로 카티스를 의심하는 배우에서 무대에서 죽고 사람들에게 환호와 박수를 받는 희극 배우로 변화시켰다. 케니는 삽을 “정보”로 바꾸었다. 케니 또한 姫川亜弓(후미카와 아미)이었다. “대본이 같더라도 연출 방식에 따라 악당도 비극적인 인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것…”!
하나가 “날카로운 풍자”를 만들수록, 사촌의 처참한 대재앙의 기억은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어, 결과적으로 로크웰 가문의 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묻히게 된다. 예술을 금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인물로도, 케니는 그려지고 있다.
개구리 합창에서는 음을 엇갈리게 하여 노래하는 輪唱을 배웠다. 실제로 야외에서는 여러 마리의 개구리가 번갈아 가며 울음소리를 교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개구리의 수컷은 교미를 위해 울지만, 소리가 겹치면 암컷이 개체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엇갈리게 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엔드롤에서는 점점 엇나가던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겹쳐 한 덩어리로 뭉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등골이 오싹했다. (의회 장면에서도 개구리 합창과 같은 장면이 있었다.) 그것은 자연을 인간이 “인위적인 것”으로 취급하게 될 날의 끔찍함이자, 거대한 압력, 혹은 우리가 다양한 소리의 개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끔찍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손으로 파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한 번 파낸 것의 무게는 그 물건을 파낸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조금씩 계속 파고들어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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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13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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