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카와 미와 감독의 최신작 ‘나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을 관람했습니다.
극장 밖을 나간 후에도 잠시 다리가 무겁게 느껴지며, 저녁 노을이 지는 도시를 걸으며 가슴 깊숙이 타올랐던 고요한 고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원으로서 일상 업무를 처리하고 집에 돌아오면 집안일에 시달리는 하루하루. 일과 삶의 왕복으로 정신없이 바쁜 나에게 있어, 종전 직후의 도쿄나 전쟁 고아들의 삶은 마치 “교과서 속의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크린 안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12세 소녀 기토의 강렬한 눈빛과 마주했을 때, 그 생각은 엉뚱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성별을 숨기고 목소리를 숨겨 살아가는 것
극중, 카즈코는 가족과 집을 모두 잃은 후,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폭력과 위험에 직결되는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이름을 바꾸어 남자아이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이나 “목소리”를 억누르려야 할 끔찍한 고통. 그것은 단순한 “전후의 고생담”이 아니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권리 자체를 빼앗긴 절규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서로 기대어 안고, 때로는 험한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재치 있고, 때로는 애절하기까지 오늘이라는 날을 붙잡고 살아갔다.
불쌍한 역사의 희생자”라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그들의 생명력에 압도당하는 동시에,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의 알지 못하는 아이들――제목 속 ‘나’는 누구인가
영화가 끝나고 가장 와닿은 것은 이 제목의 의미였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묘사되는 전 교사나 어른들의 모습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역사의 그림자에 가려져 아이들의 고통을 알지 못한 채 살아온 현대인”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정말 힘든 시대였던 거야. “옛날에는 고생했었지”라고 남에게 덧대어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는 우리는 또다시 변형된 부조리를 외면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강렬한 메시지를 받았다 느껴진다.
현대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아이들에게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것은 결코 70년이 넘는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 밤거리를 헤매거나 SNS에서 위안을 찾는 젊은이들
-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이, 빈곤과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
- 어른들의 사정이나 사회의 무관심 때문에 절박한 존재
자세와 환경이 변해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알려고 하지 않은) 아이들”은 바로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힘차게 살아간다고 해서, 자신이나 가족의 눈에 보이는 범위 안에서만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하지만 사회를 만들어가는 성인으로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게 상상력을 계속 펼쳐나가는 것이 바로 지금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부터 할 수 있는 일 (성인으로서)
영화 속에서, 주인공 소하시즈메 아오미 씨가 보여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작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사회를 완전히 뒤바꿀 만한 큰 힘이 없더라도,
- 가장 먼저 “사회의 역사와 구조를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 아이들이 SOS를 쉽게 외칠 수 있는 따뜻한 분위기를 일상생활에서 만들어내는 것
- 어른은 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받도록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처럼 사소한 관심과 눈길의 정체가 다음 세대를 지키는 안전망이 되기를 믿고 싶습니다.
단순히 영화 감상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과 사회와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해주는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모든 어른 분들께, 꼭 극장에서 직접 경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17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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