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피시 출판사의 『한국사 이상현상 연구원』 베스트셀러 1위 사례 인터뷰)는 전형적인 ‘사후 확증 편향’에 기댄 언론식 해설에 가깝습니다.
결과가 터지고 나니 “철저한 기획”, “데이터 기반 마케팅”, “K팝식 팬덤 비즈니스”라며 모든 과정이 치밀하게 계산된 공식이었던 것처럼 포장하지만, 출판이나 콘텐츠 현장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씁쓸한 기시감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1. "지나고 나서 분석하면 뭐하나?" — 사후 합리화의 함정
기사에서 말하는 성공 방정식(포스타입 팬덤 발굴, 교보 북펀딩 올인, 굿즈 패키징, 나폴리탄 괴담 차용 등)은 사실 지금 수많은 창작자와 소형 출판사들이 매일같이 시도하고 있는 기본 문법입니다.
텀블벅이나 교보 펀딩에 미공개 외전과 굿즈를 걸고 펀딩하는 프로젝트는 매달 수백 개씩 쏟아집니다.
그중 99%는 목표액 300~500만 원도 겨우 채우거나 묻히고, 단 1개가 우연한 알고리즘과 입소문을 타서 터집니다.
그런데 기사는 그 우연과 시점의 타이밍(도파민 터지는 커뮤니티 바이럴)을 마치 ‘처음부터 정밀하게 설계된 흥행 알고리즘’인 양 거창하게 조명합니다. 안 된 99개의 프로젝트를 분석할 땐 "기획 실패"라고 하고, 우연히 된 1개는 "시대의 혁신"이라 부르는 전형적인 결과론입니다.
2. "팬심을 사고 파는 시대, 진짜 세상이 그렇게 굴러가나?"
기사 인터뷰이의 말처럼 책을 '덕질하는 굿즈'로 보고 팬덤을 상품화하는 시장이 실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출판이나 콘텐츠의 영구적인 미래인가?"라고 묻는다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수명과 피로도의 한계: 아이돌 앨범식 굿즈 마케팅(포토카드, 요원증, 한정판 패키지)은 단기적으로 초판 1~2만 부를 소화하고 베스트셀러 1위를 찍게 만드는 데는 매우 효과적인 '치트키'입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재구매율이 극히 낮고, 팬덤의 피로도가 매우 빠르게 쌓입니다. 한 번 소장용으로 책장을 채운 독자가 다음 책, 다다음 책에서도 굿즈 때문에 2만 몇천 원씩 계속 결제할 것인가? 이미 서브컬처와 게임, 웹소설 판에서 수없이 겪고 있는 ‘팬덤 착취형 BM’의 한계가 그대로 반복될 뿐입니다.
텍스트 자체의 생명력 결여: 기사에서도 은연중에 드러나듯, 100만 부 팔렸다는 소설도 "작가가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팬심과 굿즈로 밀어올린 순위는 순위표에서 내려오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집니다. '팬심을 사고파는 기획'은 출판을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휘발성 굿즈 팝업스토어로 전락시키는 양날의 검입니다.
진짜 대중인가, 폐쇄적 고립인가: 과거의 베스트셀러는 사회 전체의 시대정신이나 보편적 정서를 관통하며 담론을 만들었습니다. 반면 지금처럼 1020 특정 커뮤니티의 마이크로 팬덤을 모아 펀딩 화력으로 1위를 만드는 구조는, 종합 순위표 1위에 올라도 90%의 일반 대중은 그게 뭔지 전혀 모르는 단절과 파편화를 낳습니다. 기사 첫머리에서 기자조차 "대체 무슨 책이길래?"라며 당혹해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기사가 떠드는 "기획과 팬덤의 승리"는 새로운 시대의 혜안이라기보다, 책이라는 매체가 보편성을 잃고 초세분화된 서브컬처 굿즈 시장으로 쪼그라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에 불과합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기획하고 제작하는 이들의 눈에는, 결과가 나온 뒤에야 온갖 멋진 경영학 용어를 갖다 붙이며 "이게 미래다"라고 떠드는 언론의 호들갑이 공허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