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의 흐름은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모든 종이 자료가 일일이 전자화되고, 어떤 기기에서든 열람하는 것이 당연해져 왔습니다.
장르는 다소 변경되었지만, 복권 머신도 공을 박스에 쌓는 대신 획득한 공의 개수를 내부적으로 계산하는 방식의 기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물량을 줄이려는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저는 그 흐름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입니다. 물건보다는 데이터로 보관하는 것이 비용적으로 훨씬 저렴하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라지는 것들도 매우 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결국, 눈에 보이는 결과가 정의라는 것입니다.
가성비가 좋으면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시각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된 내용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파칭코 이야기를 하든, 종이책(페이퍼북) 이야기를 하든, 이번에는 “책과 전자책”이라는 주제로 진행하겠습니다.
최근 저는 콘도 타카타로 씨의 저서 『백冊으로 밭을 쟁반 자유롭게, 되기 위한』을 읽었는데, 그 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전자책에서는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책의 두께”가 없다. 전체 분량 중 현재 어디를 읽고 있는지, 페이지 표시되는 것은 숫자로만 존재할 뿐이다. 어느 부분에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 손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 인간은 숫자를 외우는 것 외에 훨씬 더 많은 육체적인 활동을 통해 책을 읽는다. 독서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육체적인 행위이다.
이 텍스트를 보게 되었을 때, 저는 진심으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짊어지고 있던 답답함이 그대로 언어로 표현된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전자책은 쓸쓸한 느낌이 들어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애착을 형성할 수 없고, 시작과 끝을 느낄 수 없어서 단순히 정보 수집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즐길 수 있다. 뜻밖의 책방에 들러, 왠지 모르게 와닿는 책을 사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읽어보았다. 이런 우연한 만남에서, 애틋하게 좋아하게 되는 작가의 작품을 발견하기도 한다.
책을 펼 때의 설렘, 끝이 다가올수록 밀려오는 쓸쓸함. 표지에 희미하게 보이는 고독. 이러한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들은 실제 책으로만 느낄 수 있다. 손으로 만져야만 그 감정을 온전히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책이 책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매일 살아가는 활력이 샘솟는다. 쓸쓸한 밤이, 애틋하면서도 소중한 시간으로 변한다. 그래서 나는, 책은 최대한 전자 대신 실물로 구매하도록 한다.
효율화의 흐름에 저항하면서도, 제 자신 안에서 진정한 감정을 음미하고 싶습니다. 이것을 포기한다면, 저는 ‘나’라는 존재로서 태어난 의미를 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이야기는 책의 실제 형태가 있어야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책은 친구들끼리나 연인들끼리 빌려주고 읽는 경우가 있죠. 때로는 빌려온 책이 더러워지거나, 분실되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것 또한 좋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구로 여겨진다면, 불쾌한 일이라도 그것 속에서 소중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책은 얼룩을 지울 수 없고, 전자책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매우 편리하게 느껴지지만, 저는 그저 쓸쓸할 뿐입니다. 완벽한 상태가 보장된다는 이유로 이렇게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걸요.
지금은 하고 싶은 일들이 넘쳐나니, 어떤 상황에서는 효율화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효율화를 극대화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불필요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으로서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효율성만을 추구한다면 삶의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당신으로서의 필요를 없앨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10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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