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에 처음으로 전자책을 출판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와서 전자책과의 궁합이 좋지 않다고 느끼는 일이 잦아졌다. 썼고 덧붙인 말들은 분명히 남아있지만, 한 권의 책으로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슴 한 조각이 쓸쓸함을 느낀다.
디지털을 본업으로 하는 저자가 이러한 발언을 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편리함과 만족은 반드시 같은 것과는 다릅니다.
전자책의 휴대성은 훌륭합니다. 기기의 저장 용량만 허용된다면, 수십 권, 심지어 수백 권의 책도 휴대할 수 있습니다. 책이 늘어나도 가방은 무겁지 않죠. 태블릿 하나만 있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원하는 때에 열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편리함은 종이책으로는 결코 따라올 수 없다.
하지만, 책을 교본으로 활용하고 꼼꼼히 공부하려 하면 저자의 시각이 달라진다.
전자책에도 글쓰기나 메모 기능은 있지만, 종이의 여백에 펜으로 직접 필기하거나, 궁금한 페이지에 풀을 붙이고, 관련 자료를 挟는 행위와는 뉘앙스가 다르다.
이전 페이지로 돌아가 다른 부분과 비교해 본다. 읽어 내려간 페이지의 두께를 왼손으로 느껴보고, 남은 두께는 오른손으로 확인한다. 저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동작 또한 배우는 시간이다.
손에 들고 책상 위에 올려놓고 페이지를 넘긴다. 그럴 때 비로소 말이 머릿속에 들어오고 자신 안에 남는다는 느낌이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낡은 감각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만, 매일 디지털에 접하는 필자 자신조차도 종이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 있기 때문에, 사람과 도구의 조화는 세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책을 사람에게 줄 때에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전자책은 대응하는 서비스를 이용すれば,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에게도 즉시 전달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다운로드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읽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는 훌륭한 시스템입니다.
그럼에도 작가는 상대방을 생각하며 한 권의 책을 골라 건네는 행동에 마음이 끌린다.
표지에 손을 대고 무게를 느껴 페이지를 펼친다. 그 책은 상대방의 책상이나 책장에 놓여 있고, 어쩌다 한 번 눈에 들어온다. 읽을 시간 외에도 선물한 한 권은 그곳에 있다.
전자책이든 마음은 전달될 것이다. 하지만 종이책에는 말과 함께 “물로서 남는” 기쁨이 있다. 작가가 느끼는 따스함은 종이의 촉감만이 아니어서일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것이 아날로그가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결제의 전자화는 유익합니다. 이전에는 먼 곳으로의 출장에서 택시에 타고 1만 엔짜리 지폐를 내릴 때마다 1천 엔짜리 지폐와 동전이 계속해서 돌려왔습니다. 지갑이 부풀어 오르고 동전들이 덜컹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더러운 동전이나 녹슨 10엔 동전이 섞여 있다면 기분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걸 생각해보면, 순조롭게 지불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정말 편안하다.
결제할 때는 손안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을 기뻐하고, 책은 손에 책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운다. 스스로 말해도 헛된 생각인데, 똑같은 ‘편리함’이라도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손으로 쓴 것들 또한 비슷한 점을 고려해 본다.
저자는 하루에 수천 번도 키보드를 두드리며, 문장을 쓰고, 수정하고, 저장한다. 그 속도와 편리함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아왔다.
그런데, 오랫동안 만년필이나 펜을 손에 들고 쓰려고 하니, 한자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면에 표시되면 바로 알 수 있는 글자인데, 제 손으로 직접 쓰려니 안 됩니다.
글을 쓰는 데 자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잠시 사용하지 않았던 붓은 생각만큼 부드럽게 흘러가지 않았다. 머릿속에 있는 글자의 모습과, 종이에 나타나는 선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입력은 빨라졌지만, 그와 동시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손의 기능은 둔해지고 있었다.
도구의 진화로 인해 가능한 일이 늘어난다고 해도, 자신의 역량이 모두 충분히 발달하는 것은 아니다. 편리함에 의존하는 만큼, 출세에 필요한 기회를 잃는다는 느낌과 기술도 생긴다. 이러한 점을 필치가 알려준다.
요리를 넋두리처럼 바라보며도 작가는 완성될 때까지의 수작업에 마음을 빼앗긴다.
철판요리의 장인이 불 조절을 하고, 철판의 위치마다 온도 차이를 감지하며 고기와 채소를 굽고 나간다. 재료의 상태를 읽어내고, 놓는 위치를 바꾸고, 뒤집는 타이밍을 결정하는 그 일련의 동작에 감탄사를 지을 수밖에 없다.
음식의 맛은 열원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저자는 불을 다루는 모습까지 포함하여 그 요리를 음미하고 있다.
프렌베를 할 때,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순간을 보면 마음이 조금 식어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맛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먹기 전의 기대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혀만으로 음식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교토와 게오칸에서 료칸을 운영하는 지인은 지금도 여러 개의 화덕으로 쌀을 씻어 밥을 짓고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저자는 화덕이나 토론기(土鍋)로 지은 밥에 깊은 맛을 느낀다.
고가의 전기 밥솥에도 마음은 흔들리지만, 도쿄 신가스에서 먹은 다이메시는 뚝배기가 20만 엔이라고 들었다. 뚝배기 제작 도자기 공방의 제자가 만들면 5만 엔 정도라는 모양이다.
가격이 나열되어도 어느 것이 더 좋았는지는 답을 얻을 수 없다. 쌀, 물, 끓이는 방법 모두 다르다. 먹는 사람의 취향이나 그 순간의 분위기도 다르다.
단지 뚜껑이 열리고 김이 서리며 향이 퍼지는 순간에는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필자가 끌리는 것은 밥의 맛과 함께 그 맛을 만끽하는 시간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종이책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가 조금씩 드러온다.
단순히 글을 읽는 것만으로는 전자책으로 충분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읽기 전에 손에 들고, 읽는 동안 메모를 하고, 읽기를 마치고 나서도 책장에 꽂아두고 싶다. 필요한 때에는 그 자리에서 다시 꺼내고 싶어서이다.
따라서 전자책 출판을 대부분 중단하고, 현재는 종이책인 페이퍼북 출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책이 배송되고, 포장을 뜯는다. 표지를 확인하고 손에 들고, 첫 페이지를 넘긴다. 화면에서 여러 번 다시 보았던 문구가 한 권의 책으로 눈 앞에 나타난다.
제가 쓴 말에 다시 한번 마주하는 순간입니다.
올해 3월부터 지금까지 총 40권의 종이책을 출판했다.
물론, 완성도가 높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읽어보면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나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내용도 발견된다. 그래도 꽂혀 있는 책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계속 써왔던 시간까지 마치 그곳에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전자책에서는 의식하기 어려웠던 일들의 정체성이, 종이의 두께가 되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그 존재감에 저자는 매료되고 있다.
편리해진 결과, 자신이 무엇에 기쁨을 느끼는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경우, 그것은 한 권의 책을 손에 들 것이었습니다.
골목길에서는 이것을 자기 만족이라고 한다.
가장 많이 쓴 글들이 책으로 모여 있는 것이니까, 잠시 동안이라도 훑어보고 싶다. (씁쓸하게 웃으며)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31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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