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오래된 레시피 책 한 권이 주방에 놓여 있다. 얼룩과 구김, 손글씨 메모까지,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삶을 증명하는 증거이다. 이 책 또한 언젠가 그런 날이 되기를 바란다.
저는 세 남매 중에서는른 자녀였습니다. 형, 오빠 모두에게 필요한 역할을 해야 해서, 자연스럽게 부모님께 여쭤보지는 않았습니다.
방림주의라기보다는 ‘진정한 중간 지점’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까. 생각해보니 항상 내가 먼저 결정하고 나서 보고하는 유형이 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내일부터 배낭여행을 떠나서 해외를 다녀올 거야. 3개월 후에 돌아갈 거야.”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그런 보고만 계속 드려서 부모님께서는 “왜 이렇게 빨리 말 안 해!”라며 여러 번 화를 셨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았다. 사람의 본성은 꽤 굳건하다.
그래서 이번 전자책도 발매된 후 연락했습니다.
그러자 돌아온 말은 “책, 읽어보자”라는 한마디였다.
“아마존 킨들에서 읽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킨들 대체 뭐야? 70대 부모님께서는 전자책의 장벽이 생각보다 높게 느껴지셨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앱을 설치하는 방법을 설명하려 했지만 “됐어”라는 말 한마디가 들렸다. 손을 뻗으면 바로 손에 닿을 거리인데, 도달할 수 없는 듯했다. 포기한 건 아니지만 그 한마디가 계속해서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었다.
그 후, 독자분들로부터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종이책을 읽고 싶어요. 어머니께 선물하고 싶습니다. 주방에 두고 사용하고 싶습니다.
하나하나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자신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고도 보면 저도 레시피 책만은 지금도 종이로 구매하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다른 장르의 전자책은 전자책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레시피서는 종이판을 손으로 잡는 것을 선호한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답이 바로 떠올랐어.
요리는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삶 속에서 계속 자라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도 책장에 학생 시절에 샀던 레시피 책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표지는 햇볕에 그을려 색이 바랬다. 등표지 부분에 약간 찢어졌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자——그때 제가 썼던 손으로 쓴 메모가 나왔다.
2인분 분량이나 15cm 타입일 경우와 같은 조언, 검은 설탕이 더 맛있습니다와 같은 팁 등이 있었다. 내가 읽고 있던 당시의 나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
수없이 만들어본 레시피 페이지는 이제 손으로 열 필요도 없이 여기서 멈춘다. 마치 책이 스스로 기억하는 것처럼.
전자책으로는 얻을 수 없는 이 감각. ‘손에 닿는 듯한’이라는 말로는 부족해, 서서히 퍼져나가는 느낌.
레시피 책은 읽고 끝난 뒤에도 끝이 아니다. 그 사람의 삶의 횟수만큼,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다.
흠과 긁힌 자국, 글자 지우개 자국 모두 그 증거다.
그래서 이번에는 특이하게, 발매 전에 부모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종이책을 만들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 줘.” 라고 하였습니다.
잘했어, 집 규칙이 될 거야.
집에 대한 사상. 지나치게 과장되어 잠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웃으면서도 서서히 마음이 열렸다. 누군가의 집에 오랫동안 남아 있도록 하는 것. 부모에서 자녀로 손이 이어져 가고, 닳고 시드러진 책이 얼룩이졌지만,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것.
그것이 제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종이책은 인쇄비가 발생하는 만큼 전자책보다 가격이 더 높습니다.
그래도 — 당신의 주방에 놓여, 사용되면서, 얼룩 하나나 둘이 묻어, 당신의 삶이 되어버린다면.
시작은 제 책 한 권처럼.
그렇게 만들어져서 책이 되어간다면, 그것 이상의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음과 몸의 회복 수프, 페이퍼북판이 완성되었습니다!! 부엌 구석에 두고, 함께 키워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종이책은 여기 있습니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19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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