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마케팅]얼마나 찍으실 거에요?(마케터는 마법사가 아니다 12번째 이야기)
게시판: 자유게시판 | 작성자: tachikoma43 | 작성일: 2026-09-15T11:57:24.204Z
얼마나 찍으실 거에요?
세 번째 출판사로 이직한지 한 달쯤 지나서, 회사 제작부 팀장이 내가 사인을 할 게 있다고 말하며 내 자리로 성큼 성큼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마케팅부 김팀장님. 이번에 구간 도서 재고들 제작 건이 있는데요, 그냥 거기 마케팅부 결재란에 사인하시면 됩니다. 그나저나 회사 적응은 다 되셨어요?”
“강팀장님.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회의실에서 저랑 말씀 좀 나눠도 될까요?”
“무슨 일이신데요? 아~ 좀 바쁘긴 한데. 뭐 그러시죠?”
“몇 가지 여쭤 볼게요. 구간 도서 제작 할 때, 수량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여 진행하고 있나요?”
“음, 결재란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케팅팀장은 참조만 하시면 되요. 지금까지 그래왔어요. 실제 결재란은 편집장, 이사, 부사장, 사장 순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뭐가 문제라도 있나요?”
“팀장님. 그럼 편집장이 판단해서 진행하고 있는 건가요?”
“네. 보통 그렇습니다. 저랑 상의해서 적당히 하고 있습니다.”
“혹시 적정재고 현황이나 그런 엑셀 양식이 있나요?”
“와~ 적정재고에 대해서 말하는 마케팅 팀장님은 처음 보네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만든 양식이 있긴 있는데,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는 관심도 없고 필요도 없었거든요. 제가 정한다고 해서 그렇게 진행되는 경우가 별로 없더라고요.”
“그럼 이렇게 진행하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된 적이 없었나요?”
“아니 몇 번 있었죠. 그럴 때면 항상 화살은 제작팀으로 날라 오곤 했죠. 저번에 계셨던 부장님도 중요한 책 재고 빵꾸 내서 짤리셨다고 소문이 있더라고요. 제작팀은 완전 모기 목숨이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실례가 안 된다면, 적정재고 양식을 제가 봐도 될까요?”
“네. 메일로 보내 드릴게요.”
제작 수량을 판단하는 건 편집부가 해서는 안 된다. 편집부도 할 수는 있겠지만, 적당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숫자에 대한 숫자의 근거'를 제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도서의 최근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판매량을 조사해 판매 속도를 알아봐야 하고, 그 저자의 최근 현황이나 이슈를 체크해야 하며, 각 거래처에 남아있는 재고의 수량을 직접 알아보거나 유추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알고, 할 수 있는 팀은 과연 어디일까?
적정한 재고를 생산하지 않을 경우 매출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잘 판매되고 있는 도서의 재고가 부족할 경우, 그 도서의 생명 단축으로 매출도 감소하겠지만, 거래처와의 신뢰적인 관계도 무너지고, 고객의 불만도 야기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숫자를 무시하고 과도한 제작을 한다면, 과재고로 인한 창고 비용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한번은 어떤 출판사에서 한 직원이 서점에서 들어온 반품을 모두 재생하는 것을 발견하고, 당장 멈추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 직원은 지금까지 매뉴얼대로 한 것이니, 자신에게 잘못이 없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해 버렸다. 그 중 수십 종의 책들이 1년에 10부 미만으로 판매되는 책들이었다. 어떤 책은 300부 정도를 재생하여서 30년 동안 쓸 수 있었고, 어떤 책은 200년 동안 써도 충분한 책도 있었다. 책의 재쇄나 재생을 진행하기 전에 그 책의 최근 판매량을 꼼꼼히 살펴봐야 원치 않는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신간 도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판매가 잘 되고 있을 때에는 추가적인 99개의 마케팅도 신경 써야 하지만, 현 재고를 판단하고 유추해서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팀장님. 온라인 서점 몰라딘에서 추가로 2천부를 달라고 합니다.”
“팀장님. 온라인 서점 아웃파크에서도 내일 2천부를 보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팀장님. 노24서점은 5천부 정도 출고 해 달라고 방금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사실 서점 내 재고가 아직 2천부 정도 남았는데, 주문을 또 하다니, 이 책 정말 대박 난 것 같아요. 어제 5천부 입고 되서, 현재 재고가 1만부 정도 있으니까, 주문 온 거래처에 내일 모두 출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박과장. 지금 바로 출고 팀에 전화하셔서, 지금 이 시점으로부터 이 책은 바로 출고 정지하라고 하세요. 거래처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 내일부터 매일 이 책의 배본표를 작성해서, 10시에 출고팀에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마케팅부 재가 없이 출고는 없어야 합니다.”
“조대리. 제작팀 강팀장님. 지금 회의에 참석하라고 하세요.”
“오대리는 도매하고 오프라인 대형서점 출고 현황과 재 주문 시점 예측해서 보고하도록 하세요.”
1만부가 있었지만, 거래처의 재고와 판매 속도를 파악해서 필요한 수량만을 배급했다. 제작팀에 추가 제작을 급하게 요청했지만, 4일 동안 남은 수량으로 버티지 못하면, 책이 없어 판매가 단절되는 서점이 생길 것이고, 도서의 전체 판매 사이즈에도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팀장님, 거래처에서 주문했던 수량을 다 주지 않았다고, 불평들이 많습니다. 뭐라고 말을 해야 될까요?”
“자. 여러분. 책이 회사 창고로 입고되는 속도보다 판매되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담당자들에게 잘 말씀 드려주세요. 하지만 재고가 없어서 판매를 못하는 사태는 만들지 않도록 하겠다고도 말씀드리세요. 그리고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주말에도 나와서 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 물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합니다. 마케팅팀은 이런 순간부터 재평가 됩니다. 이 상황이 끝나고 나면, 회사에서 여러분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협조 부탁드리고요. 주말에 일 한 부분은 대체휴가를 쓸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서 오프라인 대형 서점에 한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 책의 재고가 떨어지지 않게 해서 지점에서 우수사원 상을 타게 되었는데, 연신 ‘고맙다’고 하면서 내게 점심을 사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케팅팀은 모든 직원이 주말마다 자신의 담당 서점들의 재고를 체크하고, 필요하면 서점으로 직접 배송을 했었다. 그때 당시 마케팅부 모든 직원의 차 트렁크에는 각자 수백 권의 책들이 채워져 있었다. 내 회사를 위해 했던 일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생겨, 내게는 자주 떠올리는 좋은 추억 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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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cafe.naver.com/ca-fe/cafes/12093390/articles/86783
작성자: 새로운바람 · 2019-11-07 07:5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