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마케팅]표지는 말하고 있고, 북디자이너는 현명하다(마케터는 마법사가 아니다 8번째 이야기)
게시판: 자유게시판 | 작성자: tachikoma43 | 작성일: 2026-09-15T11:57:24.436Z
표지는 말하고 있고, 북디자이너는 현명하다
기획된 책을 잘 편집하고 나면, 좋은 기획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남아있다. 그건 책을 포장하는 일이다. 독자가 좋아하고 공감하는 제목과 카피로 무장을 하고, 독자를 사로잡을 만한 매력적이고 엄청난 표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좋은 책에 좋은 표지를 받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애매한 책에 좋은 표지를 받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출판사를 15년 이상 다니면서, 내가 다니던 출판사에서 만든 표지를 보고 크게 감명 받았던 적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많지 않았다. 혹시나 늘 그 정도로 형편없는 북디자이너들만 만났냐고 누군가 물어 본다면,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때는 너무 어리고 총체적인 사고와 지식이 많이 부족했었다. 그때는 그들의 결과물을 보고 생각 없이 만들어낸 시간 때우기 좋아하는 월급쟁이 추종자들의 만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좋은 표지를 내놓지 못할 거면 차라리 선택의 폭이라도 넓혀줘야 하는데, 그들은 늘 피곤한 표정으로 오랜 시간 동안 쭈물럭 거린, 별 볼일 없는 출력물 한두 장을 내려놓고, 눈을 내리 깔면서 느낌만 보라고 한다. 무슨 미술관 전시회라도 왔나? 느낌만 보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다 화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있는 표지 회의 자리에서 솔직히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때 그 디자이너는 내 말에 크게 상처를 받았을지 모른다. 이 자리를 빌려 저에게 상처를 받은 모든 디자이너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
그러나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마케팅 신입부터 스스로 항상 해오던 일이 있었다. 그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현재 또는 과거에 출간된 책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거래처나 출판사와 관련된 사람들과 대화할 때 유용하게 쓰이기 때문이었다.
엑셀 파일명은 ‘컨셉 리스트’라고 적었다. 엑셀 왼쪽 칸부터,
표지/제목/저자/도서의 스펙/메인 카피/서브 카피/표지 느낌/출간년도/정가/페이지/페이지 당 단가/출판사/개인 평점
책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최대한 난도질을 했다. 더 잔인하게 난도질하고 싶었지만, 장기간의 수술로 갑자기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서, 메스(마우스의 외계어)를 내려놓고 그만 쉬었다.
하루에 10개. 일주일에 50개(주말엔 쉽니다). 한 달에 200개.
일 년에 2,400개. 5년 12,000개를 하고 나니, 경력이 많지 않은 편집부들보다 아는 책들이 많아졌다. 리스트에 들어가는 책들은 그냥 그때그때 하고 싶은 걸로 했다.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에 있는 책을 선택하기도 하고, 제목이나 표지가 좋은 책들을 고르기도 하고, 느낌은 좋은데 망한 책들을 고르기도 하고, 잘 아는 친한 출판사 책들로 채우기도 했다. 그런데 리스트에 책들이 하나 둘 계속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내게 긍정적인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컨셉 리스트’로 인해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장점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정리해보면
첫째로 아는 책이 많아져서 누군가 ‘아~ 그 책 뭐더라?’ 하면 바로 입에서 그 책이 이름이 튀어 나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유식한 사람처럼 보여 지기 시작했다.
둘째로 아는 저자 이름과 그들의 스펙까지 알게 되니, 편집자들과의 대화가 잘되고 관계도 좋아져서 업무 협조가 자연스러워 졌다.
셋째로 제목과 카피들을 구분해서 많이 보니, 제목회의 할 때 좋은 아이디어로 어느 정도 회사 사람들에게 기발하다고 인정받았다.
넷째로 도서들의 가격과 그 이유, 즉 목적 구매 분야와 가격 저항이 있는 분야에 어떤 정가로 책정 하는 것이 유리할지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잘된 표지와 잘 안된 표지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보면서 표지에 대한 감각도 생겼고, 왜 북디자이너가 이런 표지를 내놓았는지 분석할 수도 있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표지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문대리님부터 왼쪽으로 돌겠습니다. 1지망, 2지망 해주시고, 선택하신 이유까지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 저는 1번 표지가 제일 좋습니다. 이유는 그냥 보기에 표현이 제일 괜찮은 것 같은데요. ㅎㅎ. 그리고 2지망은 그냥 3번으로 하겠습니다.”
“저는 여름이라서 녹색이 좋은 것 같아요. ㅎㅎ”
“자 그럼 마지막으로 마케팅 팀장님도 말씀해 주시죠”
“아. 죄송한데, 제 의견보다는 먼저 스릴러, 장르, 외국 소설 분야의 표지들에 대한 시장 현황부터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전 마케팅 회의 때 말씀드렸던 내용인데, 다시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보통 소설책들은 표지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부분이 궁금중 또는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베스트셀러들의 표지들을 보면, 저희 책처럼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주는 책들보다 옆면이거나, 아니면 뒷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도 아니면 손이나 다른 것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독자들에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하려는 디자이너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정적인 표지보다는 동적인 표지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생동감을 주고 싶어서죠. 그리고 향후에 디자인 담당자분들은 업무가 많이 바쁘시더라도 담당 도서의 마케팅 회의에 참석해주시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컨셉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이 표지는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고 뚫어져라 표지를 파헤치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 책을 표한하기 위한 커다란 이미지 말고도 여기저기에 세세한 부분들에 ‘이 책이 이런 책이다.‘ 라고 표현되어져 있다. 완성도 높은 표지들은 그런 요소들이 많아서 독자들이 다시보고, 다시 봐도 식상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때부터 표지 시안을 보면 ‘좋다’, ‘나쁘다’ 보다 북디자이너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부터 보게 되고, 그럴 때 마다 더 흥미를 느낀다.
다음 이야기 국내 저자와 절친 되는 법
2019.11.0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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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world3
2019.11.0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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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날
최근에 첫책을 내면서 표지 고민을 했었는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리스트까지 만드셨다니 대단하세요
2019.11.1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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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바람
고민하신 만큼 성장하셨을 겁니다. 리스트 만드시면 번거롭고 힘들지만 도움이 많이 됩니다.
2019.11.2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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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르스
2019.11.30.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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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바람
출근하기 전에 책공장에서 새벽 공기를 쐬고 일터로 나가시는 모습이 상상이 되네요. 감동적인 영화의 그럴듯한 마지막 씬 같아요. 출판 대가의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설마 구름을 타고 가시는 건 아니겠죠? 신선처럼. ^^ 책으로 엮을 계획은 없었지만 다시 생각해 봐야 겠네요. 감사합니다.
2020.03.1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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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랑도니랑
전시회에서 빵 터침요. ㅎ 그 장면이 연상이 되서... 표지 어려워요~ 어느 정도의 내용을 어떻게 넣을지... 오늘도 잼있게 읽었슴다~
2020.03.18.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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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바람
좋은 의견을 낼 수 있고, 좋은 말로 표현할 수 있고, 좋은 마음으로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회사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0.03.1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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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바스
컨셉리스트 꼭 작성해보겠습니다. 새로운바람님의 글 열심히 읽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마케팅 무지랭이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항삼 감사합니다~^^
2020.03.2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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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바람
엑셀로 컨셉리스트 만드시면 한번 보내주세요. 방향을 잡아드리고 싶어요. 메일주소는 최근 마지막 게시글에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 어떻게 생각 하세요?
2020.03.2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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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임
저도 꼭 한번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12.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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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바람
Good Luck to you!
2020.12.0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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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씨점
와,, '나는 저렇게 노력하고 있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좋은 영감을 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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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s://cafe.naver.com/ca-fe/cafes/12093390/articles/86090
작성자: 새로운바람 · 2019-10-04 03:4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