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어떤 댓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OpenAI도 Anthropic도 연봉 4000만 엔 정도에 전문 편집자들을 대거 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댓글란에는 "녀석들, 눈치챈 모양이야"라는 한마디. 그리고 "문장 생성은 AI로 충분하니,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각도로 정리할지, 바로 편집자가 필요하죠. 말하자면 인간 사회와의 가교 역할"이라는 한마디가 이어져 있었습니다.
정말 연봉 4000만 엔이었을까
조사해 보니, 이것은 과장도 도시전설도 아니었습니다. Anthropic은 실제로 Standards Editor라는 직책을 연봉 295,000달러(약 4400만 엔)로 모집하고 있었고, 카피 리드 직책은 255,000~320,000달러, 브랜드 전체의 목소리를 총괄하는 Head of Copy and Content는 320,000~400,000달러라는 범위로 인재를 찾고 있습니다. OpenAI도 이와 유사한 고액 연봉의 라이터·편집자 직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수치로 보면, SNS에서 본 댓글의 내용과 거의 일치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업계 관측자들 자신이 이미 이러한 구도를 간파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수한 편집자를 고용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알고리즘 훈련을 돕고, 인간 작가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아직은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라고 말이죠. 다시 말해 "지금은 인간의 판단으로 회사의 언어 자체를 다듬으면서, 그 판단의 흔적이 조금씩 모델에 축적되어 간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니라 업계 내에서 공공연히 논의되던 전망이었습니다.
편집자는 실제로 무엇을 하는가
구인표를 읽어보니,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업무 내용이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자사 웹사이트의 기사를 작성하고, 편집하고, 스타일 가이드를 정비한다. 브랜드의 목소리 톤을 통일한다. 지극히 건전한, 기업의 홍보·편집 업무입니다.
다만, 그 모든 구인 공고에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문구가 섞여 있습니다. "Claude 지원 워크플로에 기여한다".
이 한 문장이 모든 열쇠라고 생각합니다. 편집자는 매일 AI가 내놓은 초안을 '좋음/나쁨'으로 판단하고, 수정하며, 그 이유를 언어화해 갑니다. 이 작업 자체가 브랜딩(표면의 성과물)과 양질의 인간 선호 데이터(이면의 부산물)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구조입니다. 회사의 브랜딩과 고도의 지적 빅데이터 축적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가지 과제를 하나의 인건비로 동시에 해결하고 있습니다. 매우 효율적인 설계입니다.
구글이 검색에서 해낸 일을, 지성 그 자체로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한 가지 비유에 이르렀습니다. Google이 검색 엔진에서 해낸 일을, 인류 전체의 '지성' 차원에서 수행하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Google이 쥐고 있는 것은 정보에 대한 '접근의 접점'이었습니다. 이번에 AI 기업들이 쥐려는 것은 그보다 한 단계 위의 층, 즉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판단하며 어떻게 글로 만드는지 하는 지성의 작용 그 자체입니다. 검색엔진이 '조사한다'는 행위의 통로가 되었듯이, AI는 '생각한다·쓴다·판단한다'는 행위의 통로가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거대한 기술 전환에는 반드시 올려다볼 만한 건축물이 있었습니다. 공장, 철도, 원전. 이번에는 서버들이 어딘가의 황야에 자리 잡을 뿐, 삶과 맞닿는 부분은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나는 '응답'이라는, 너무나 가볍고 자연스러운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기념비가 없다는 것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계기조차 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피지컬 AI에서는 더 직접적이었다.
글 이야기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피지컬 AI 분야를 조사해 보니, 같은 구조가 더욱 적나라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모션 캡처 현장에서는 다중 카메라 환경에서 일상적인 신체 동작을 수행하는 인재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로봇의 조작 학습을 위한 대규모 시연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전문 인재를 업계 최고 수준의 치열한 경쟁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Robot Learning Engineer'라는 직종은 최근 2년 사이 구인 수가 340% 증가했습니다.
편집자의 경우에는 '판단의 이유'를 언어화하여 모델에 전달할 수 있지만, 숙련된 장인의 기술은 본인조차 설명할 수 없는 암묵적 지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작 그 자체를 통째로 감지하여 가져가는, 더 신체적이고 더 비가역적인 흡수 방식이 채택되고 있습니다. 일단 고정밀도로 데이터화되어 버리면, 그 사람 자신이 계속 일할 필요조차 없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장 편집보다 오히려 급격하게 고용의 필요성이 사라져가는 분야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카니발리즘이 아닌가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문득 떠오른 말이 가장 잘 맞았습니다.
지금까지 "우수한 인재가 필요하다"는 말은 성과물을 요구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우수한 인재가 없어지면 생산도 멈춥니다. 고용이란 노동력을 계속해서 빌리는 지속적인 거래였을 터입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창조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움직이는가'라는 과정 자체를 한 번 빨아 올려 복제 가능한 형태로 변환해 버리는 움직임입니다. 편집자의 판단 기준도, 장인의 몸놀림도, 데이터나 가중치로 추출되고 나면 이후에는 그 사람 자신이 없어도 재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노동력의 고용이 아니라, 그 사람 고유의 '지적 패턴' 그 자체를 이전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골치 아픈 점은, 이것이 착취적인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파격적인 후대라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연봉 4000만 엔, 실연 데이터에 대한 고액의 보수. 본인은 "그 어느 때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실은 자신이라는 존재의 재생산 불가능한 부분을 기꺼이 내어주고 있습니다. 역사상의 착취는 대개 값을 후려쳐 싸게 사들이는 형태로 이루어져 왔지만, 이는 비싸게 사들임으로써 당사자의 경계심 자체를 풀어버리고 있습니다.
카니발리즘이라는 말이 와닿는 것은, 바로 '대상을 흡수한 후에는 대상 그 자체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는 구조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택받는 쪽에 설 수 있는가라는 물음
생각을 거듭하면서 이런 점도 떠올렸습니다. AI가 사회에 스며들 때, 큰 주제로 이야기되기 쉬운 이 논의도 결국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신이 선택받는 쪽에 있는가'라는, 무섭도록 개인적인 질문으로 수렴해 갑니다.
그리고 경계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AI가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판단 능력도 5년 후에는 절반가량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오늘은 누구도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 무언가가 다음 경계선 안쪽으로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선이 계속 움직인다는 것은 구원인 동시에, 언제나 '자신이 내부에 속해 있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는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이분법이라기보다, 이 '끊임없이 질문받는 상태' 그 자체가 새로운 불안의 형태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23청크
원문 보기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