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히가시노 게이고 씨가 별세한 것을 계기로 다시 한번 히가시노 씨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폐쇄된 눈의 산장에서』 정도밖에 히가시노 씨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고, 『마스커레이드 호텔』이나 『갈릴레오』,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영상화된 작품을 조금 알고 있는 정도였다. 특히 『용의자 X의 헌신』 영화는 다시 볼 정도로 좋아하고, 쓰쓰미 신이치의 연기가 매우 인상에 남아 있다.
※ 역주: 원문에는 히가시노 게이고 씨가 별세했다고 서술되어 있으나, 2026년 8월 현재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생존해 있습니다.
이번에 『붉은 손가락』을 선택한 이유는 영어 선생님이 수업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씨의 부고를 화제로 다루며 선생님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으로 『붉은 손가락』을 꼽았기 때문이다.
『붉은 손가락』은 처음부터 범인이 드러나 있는 유형의 미스터리였다. 범인인 아들을 감싸기 위해 부모가 아들이 살해한 여자아이의 시신을 숨기거나 경찰의 눈을 속이기 위한 이야기를 꾸며내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읽는 도중에는 "빨리 자백하는 편이 분명 아들을 위해서도 좋고, 자신들도 더 이상 손을 더럽히지 않고 끝낼 수 있을 텐데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냉정하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가 시신을 숨기기 위해 공원 화장실에 가서 시신에 묻어 있던 아들이 범인으로 의심받을 만한 증거를 변기에 흘려보내려 하지만 잘 되지 않아 손으로 물을 열심히 퍼 나르는 장면은 읽으면서 정말 괴로웠다.
"대체 뭐 하는 거지"라는 허무감을 "이 방법밖에 없어"라고 정당화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적지 않게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학교 태블릿 설정을 할 때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 초조한 마음에 아무 버튼이나 눌러 본다거나, 시험 전날이 되어 손도 대지 않았던 문제집에 그저 정답을 그대로 베껴 쓴다거나 하며, "잘못된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걸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하지만 그럴 때는 대개 실패로 끝나는 것이 결말이다.
물론 작품 속 사건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일들뿐이지만, 인간이 초조해졌을 때 판단하는 방식에서 겹치는 부분을 느꼈다.
부모는 아들을 지키려는 마음이 지나친 나머지 잘못된 방향으로 애쓰고 있다. 일종의 성실함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아들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자체는 진심인데도, 그 마음을 향하는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상에 남은 것은 부모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범인으로 꾸미려 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할머니는 치매가 아니었고, 치매에 걸린 척 연기를 하면서 "그런 짓은 그만두고 죄를 인정해라"라고 처음부터 경고하고 있었다는 결말이 충격적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지키려 하고, 그 아들인 아버지 또한 자신의 아들을 지키려 하고 있다.
할머니로부터 아들에게, 그리고 아들로부터 손자에게. 자신의 자식을 지키고 싶다는 일방적인 바람이 잔혹해서 견딜 수 없었다.
게다가 범인인 아들은 끝까지 완전히 반성하지 않고 "자신은 잘못이 없다"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부모가 그토록 지키려고 했는데도 정작 본인은 죄를 온전히 짊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 점이 이 가족의 노력을 더욱 헛되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주된 줄거리에서 살짝 벗어나 그려지는 돌봄 이야기도 인상에 남았다. 요양시설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치매가 있더라도 혼자서 식사를 할 수 있거나 갑자기 난폭해지는 증상이 있으면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읽고 '그렇구나' 하며 놀랐다.
자식이 부모를 돌본다는 것은 입장이 역전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 주던 부모를 이제는 자신이 돌보는 것이다. 은혜 갚기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고 윤리에 어긋나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왠지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노인으로 태어나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젊어진다는 이야기다. 치매로 인해 노인의 정신 상태가 어린아이에 가까워진다면 인생의 시작과 끝에는 닮은 구석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노인과 아이를 동일시하는 것은 폭론이다. 그럼에도 인생의 한가운데에 있는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기'를 사이에 두고 시작과 끝에 모두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인생을 거꾸로 살아가는 벤자민과 보통 사람의 인생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붉은 손가락』을 통해 인간이 궁지에 몰렸을 때 보이는 행동과 돌봄의 현실, 나아가 사람의 일생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東野さんの作品은 범인 측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고 느껴진다. 깊은 동기에 문득 놀라게 되고, “범인도 당연히 한 명의 인간이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가 용서할 리 없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법은 어디까지나 평등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다. 그 어려움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13청크
원문 보기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