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ねじまき鳥クロニクル』 시리즈가 있었다. 발견한 것은 한자의 '鳥'를 읽을 수 있게 된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을까. 책을 펼쳐 몇 페이지를 읽어보았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고 덮어버린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약 20년 정도가 지나, 苦手意識 탓에 꺼려하던 무라카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여성이 주인공인 첫 작품이라는 말을 접했기 때문이다. 나의 독서遍歴을 돌아보면 여성 주인공인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자, 서두에서 왜 옛날 이야기를 했는가. 이 이야기를 통해 과거의 뉘앙스를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사건'을 떠올린 것이 아니다. '뉘앙스'다.
꿈인지 현실인지, 허상인지 실체인지, 모호한지 명료한지. 이야기를 통해 그 사이를 오가는 감각이 든다. 日向理恵子의 『雨降る本屋』 시리즈에 푹 빠져 있던 적이 있다. 읽어본 적 없는 분은 꼭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당시 『雨降る本屋』를 읽고 있을 때의 느낌이다. 등장인물이나 설정은 실제로는 있을 리 없는 존재인데도 매우 현실적이어서, 어느새 작품의 세계에 스며들어 몰입하게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다니.
내가 어렸을 때는 책을 읽지 않아도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발상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을 더욱 생생하게 느꼈던 것 같다. かめはめ波가 나간다고 믿고 두 손을 꽉 모은 채 기를 모으거나, エイリア学園이 된 것처럼 두 팔을 뒤로 쭉 뻗은 채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달리기도 했다. 그때는 확실히 かめはめ波도 나갔고, 평소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夏帆은 그러한 체험을 하며 꿈과 현실의 구분,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점차 모호해져 간다. 그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런 어른이 된 夏帆이 바라보는 세계가 나의 어린 시절 '뉘앙스'에 닿았다.
夏帆에게는 이야기는 위태로운 체험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해서 미안하지만 夏帆이 빠져 있던 세계가 부럽다고 생각한다. 아니, 夏帆이 빠져 있던 세계가 아니었을까. 『夏帆』을 통해 이어진, 그 시절 내가 보고 있던 세계와 시간이 부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이 된 지금도 재현 가능하다는 것을 『夏帆』이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만 하면 된다. 오늘은 어떤 날로 만들고 싶을까. 만약 갑자기 옆집 사람이 들이닥치면 어쩌지. 돈이 더 많다면 무엇을 살까. 그때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엇이든 괜찮다. 긍정적인 것이어도, 부정적인 것이어도 괜찮다. 상상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시절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하는 것'조차 지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평소 끊임없이 기기에 손을 대고 눈앞의 업무에 성실히 임하느라 여유 있게 쉴 시간을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부터 끊임없이 콘텐츠를 제공받는 것도 재미있고 나쁘지 않지만, 조금 여백을 만들고 상상해보면 나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즐길 수도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 증인이다.
작품의 마지막에 세계는 원래대로 돌아가고 나츠호는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다른 세계에서 돌아온 기쁨도, 그 세계와 헤어지는 외로움도 함께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츠호라면 언제든지 그 세계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여백을 만들고, 이 인생을 두 배 이상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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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9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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