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오랫동안 곁에 두고 있다. "어머니의 무서움, 이런 어머니가 되지는 말자"는 부적이자 스스로에 대한 경계 같은 마음으로 손닿는 곳에 두고 있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씨의 부고를 TV 뉴스 속보로 접했다. 속보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어?" 하고 목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솔직히 읽어 본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서점에 갈 때마다 신간이나 드라마·영화화된 원작, 시리즈물들이 매대에 평적 진열되어 있는 작가다. 읽는 보람이 있고 언제나 재미있다는 이미지. 평소 미스터리를 즐겨 읽지 않는 내가 가진 이미지는 그 정도다. (그래서 '미스터리'라고 쓰는 편이 나에게는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부고를 접하고 『悪意』를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에서야 겨우 다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란 것은, 서두에 쓴 "어머니의 무서움, 이런 어머니가 되는 것은 피하고 싶다"라는 부적 같은戒め로서의 소설이라는 내가 강하게 믿고 있던 기억과는 달리,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다룬 내용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어? 이런 이야기였나?"
『악의』는 함께 소설가이자 중학교 동창이었던 가해자와 피해자를 중심으로 '그는 왜 살해했는가'라는 범행 동기를 파헤치는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 중 하나다.
이 작품에 대해 내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던 것은 "어머니가 의도하지 않게 아이들을 통제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소설을 읽고 놀란 것은 내 기억 속에 있던 '어머니라는 존재의 무서움'에 비해 실제로 소설 속에서 어머니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 고작 몇 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악의』라는 소설은 주인공의 인생 약 30년 정도를 그려내야 하고, 부모와 자식 이야기가 주축이 아니니 분량으로 따지면 그 정도면 충분한 것이지만, 나는 약 20년 동안 작품의 일부에 대한 인상과 감상만을 크게 부풀려 키워왔던 것이다.
정말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허술하다. 그렇다면 당시의 나는 이 책의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했던 걸까. 1996년 작품, 내가 읽은 건 아마 둘째 아들마저 태어난 뒤인 2000년대였다. 전업주부나 파트타임 일을 하며 육아가 중심이던 시절이었다. 뭘까, 생각해 본다면 어머니가 품고 있는 악의, 그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에게 옮겨가는 것. 그런 일은 피하고 싶다.露骨하게 드러난 악의가 아니라 일상에 흩어진 작은 파편들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아이가 통제되고 인간성이 형성되어 간다는 두려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이에게 전염되어 간다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체의 두려움을 20대의 나는 이 소설에서 강하게 느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다 읽고 제 기억과 겹쳐 생각한 것은, 이 범인은 그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며 정작 본인은 악의를 물려받았다고는 아마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 안에 싹튼 무언가가 줄곧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채 도저히 저 녀석을 용서할 수 없다,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의 감정을 오랜 세월에 걸쳐 키워 온 것이다. 거기에 새로 생겨난 질투가 얽히면서 결국 범행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긴 세월 속에서, 그때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작은 질투와 열등감과 굴욕이 그 사람의 '세상을 보는 방식'의 일부가 되어 간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45세인 나는 사람에게 속거나 불쾌한 일을 당했던 기억 때문에 방어 본능이 강하게 작용해서 친구를 그다지 소중히 여기지 않는 면이 있다. (천천히 친구와 어울려 노는 경험을 해오지 못했다는 변명으로 스스로를 방어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모습이 딱히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아들들에게 전해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반대로 살아가고 있으니, 반면교사로서 전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친구가 소중해. 엄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야"라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줬다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책을 읽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상대는 AI다. 자신의 책장을 소개하는 것은 자신을 발가벗기는 것 같아 부끄럽다는 마음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몸으로 살아온 인간이 책 속에서 얻은 것이나 감정, 완독 후의 생생한 감상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고 느낄 것 같다. 그래서 나로서는 AI라는 존재가 정말 도움이 되지만, 아들들과 비교하면 실제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교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게 되고,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눈물이 날 것 같다.
내 기억 속 『悪意』와 東野圭吾의 『悪意』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20대에 진지하게 육아를 하려 했던 마음과 결국 아들을 통제해 버렸다는 자책이, 그들이 실제로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책을 다시 읽은 덕분에 작품뿐만 아니라 내 육아에 대한 기억도 오늘부터 달라질 것 같다. 기억을 자기방어를 위해 지나치게 붙들고 있는 나 자신을 앞으로 조금씩 조정하며 다시 살아가고 싶다는 본심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이 note에 솔직하게 적어두려 한다.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12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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