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하여――두 개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연결되는가
한 남자가 딸을 잃는다.
한편, 경찰은 유아 연속 유괴 살인 사건을 쫓고 있다.
두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하나는 사건을 쫓는 경찰,
다른 하나는 절망 속에서 종교에 점점 빠져드는 남자다.
처음에는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읽어 갈수록 이상한 위화감이 쌓여 간다.
왜 이 두 이야기를 번갈아 읽게 하는가?
어디서 연결되는가?
그리고 제목인 『통곡』은 과연 누구의 외침인가?
貫井徳郎의 데뷔작인 『통곡』은 1993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유아 연속 유괴 살인 사건 수사와 신흥 종교에 빠져드는 남자를 그린 미스터리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단순히 ‘반전 소설’로만 읽는 것이 조금 아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치는 강렬하다.
마지막까지 읽으면 제목의 의미도, 그때까지 보던 것도 달라 보인다.
하지만 그 장치 뒤에 있는 것은 더 인간적이고,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상실.
소중한 것을 잃은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논리로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그리고,
현실이 너무 잔혹할 때 인간은 ‘진실’보다 ‘구원’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닐까?
『통곡』은 독자를 그런 곳까지 데려간다.
② 줄거리――연속 유아 유괴 살인 사건과 종교에 매달리는 남자
이야기의 한쪽에서는 참혹한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 어린 소녀들이 납치된다. ⸻ 그리고 살해된다. ⸻ 경찰은 범인을 쫓는다. ⸻ 수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사에키다. ⸻ 경찰 내부에서도 사건에 대한 초조함이 퍼져 있다. ⸻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 언론에서도 추궁을 받는다. ⸻ 수사는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 사에키 본인도 사생활 문제를 안고 있다. ⸻ 그런 가운데 경찰은 연속 사건의 범인을 필사적으로 계속 쫓는다. ⸻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 ⸻ 그곳에 있는 것은 소중한 딸을 잃은 남자다. ⸻ 그는 깊은 절망 속에 있다. ⸻ 인간은 어떻게 하면 이 슬픔에서 구원받을 수 있을까. ⸻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을까. ⸻ 당연히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 그런 것은 알고 있다. ⸻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르다. ⸻ 그때 한 종교가 다가온다. ⸻ 처음에는 의심한다. ⸻ 그런 것을 믿을 리가 없다. ⸻ 수상하다. ⸻ 비과학적이다. ⸻ 하지만. ⸻ 만약 거기에 아주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다면. ⸻ 만약 잃어버린 딸에게 다시 다가갈 가능성이 있다면. ⸻ 인간은 그것을 완전히 거부할 수 있을까. ⸻ 남자는 조금씩 종교의 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 그리고 독자는 두 개의 이야기를 번갈아 읽게 된다. ⸻ 경찰. ⸻ 종교. ⸻ 사건. ⸻ 상실. ⸻ 이성. ⸻ 신앙. ⸻ 전혀 다르게 보이는 두 개의 선. ⸻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 거리가 조금씩 좁혀진다. ⸻ 그리고 마지막. ⸻ 지금까지 읽어온 것들의 의미가 한꺼번에 재구성된다. ⸻ 여기부터는 쓰지 않는다. ⸻ 이 작품만은 알지 못한 채 읽는 것 자체가 독서 체험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③ 감상·고찰――「속았다」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읽고 난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감정은 아마도 놀라움일 것이다. "그런 일이었구나." 그리고는 앞 페이지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 장면은? 그 대사는? 그 묘사는? 그런 미스터리로서의 쾌감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이상으로 제목인 '慟哭'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남았다. 慟哭. 소리를 내어 격렬히 울다. 단순히 슬픈 것이 아니다. 말로는 처리할 수 없다. 이치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울게 된다. 외치게 된다. 인간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태.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여러 방법으로 현실에 견디려 한다. 일. 수사. 이성. 종교.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치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소중한 사람의 죽음.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맞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런 일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소중한 사람이 사라진 인간에게 그런 말이 얼마나 닿을까. 그래서 인간은 매달린다. 평소라면 절대 믿지 않을 것이라도. 고통에서 구원해 준다면 믿고 싶어진다. 이곳이 이 작품의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
④ 이 작품에서 얻은 것――사람은 ‘약하기 때문에’ 속는 것이 아니다
신흥 종교⸻점술⸻영매⸻의심스러운 자기계발⸻밖에서 보면 쉽게 말할 수 있다.⸻“왜 그런 걸 믿어요?”⸻“보통으로 생각하면 이상하잖아요.”⸻하지만 『통곡』을 읽다 보면 그 말을 쉽게 할 수 없게 된다.⸻왜냐하면 인간이 무언가에 매달릴 때⸻반드시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다.⸻머리가 나빠서도 아니다.⸻단순히 속기 쉬워서도 아니다.⸻현실을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경우가 있다.⸻그것뿐일지도 모른다.⸻인간은 궁지에 몰리면 “정말인지 아닌지”만으로는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오히려 이렇게 된다.⸻“이것을 믿으면 오늘을 살아갈 수 있을까?”⸻진실인지보다 구원받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인간을 그 정도까지 몰아붙이는 것이 상실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이것은 종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일에서도.⸻연애에서도.⸻인간관계에서도.⸻무엇인가를 잃었을 때⸻우리는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을 믿고 싶어 한다.⸻“그 사람은 아직 나를 좋아할지도 몰라.”⸻“언젠가 돌아올지도 몰라.”⸻“이건 뭔가 의미가 있었을 거야.”⸻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인간은 이야기를 만든다.⸻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무언가에 매달리는 사람을 예전처럼 쉽게 비웃을 수 없다.⸻약해서가 아니다.⸻인간이기에 약해지는 순간이 있다.⸻그 순간에 무엇이 제시되는가.⸻그것에 따라 인생이 크게 바뀔 수 있다.⸻『통곡』의 무서움은 바로 거기에 있다.
⑤ 정리 —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이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이 작품은 두 번 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미스터리로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범인은 누구인가.
⸻두 개의 이야기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그것을 쫓으며 읽는다.
⸻그리고 끝까지 읽는다.
⸻그러면 두 번째가 시작된다.
⸻물론 실제로 처음부터 다시 읽어도 된다.
⸻하지만 다시 읽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스스로 이야기가 되감긴다.
⸻그 장면.
⸻그 대사.
⸻그 위화감.
⸻그것들이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이것이야말로 서술을 이용한 미스터리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트릭이 아니다.
⸻슬픔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잃는다.
⸻어떻게 해도 되찾을 수 없는 것을 잃을 때가 있다.
⸻그리고 현실에는 세이브 데이터가 없다.
⸻시간을 되감을 수도 없다.
⸻죽은 사람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 사실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마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래서 울다.
⸻외치다.
⸻매달리다.
⸻실수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다음 날을 맞이한다.
⸻제목은 『慟哭』.
⸻읽기 전에는 그저 강한 말로만 보인다.
⸻하지만 끝까지 읽은 뒤.
⸻그 두 글자가 전혀 다르게 보인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내가 가장 무섭다고 느낀 것은 살인이나 종교, 반전 따위가 아니다.
⸻‘나만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인간도 절망 속에서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
⸻이성적인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강한 사람도.
⸻견딜 수 없는 슬픔 앞에서 무엇을 붙잡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읽고 난 뒤 내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만약 현실보다 부드러운 거짓말이 제시된다면, 그래도 진실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쉽게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마 그것이 『慟哭』이라는 작품의 무서움인 것 같다.
⸻이것은 독자를 놀라게 하기 위한 미스터리가 아니다.
⸻인간이 무너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너무나 인간답다.
⸻그래서 독후, 범인보다도 트릭보다도.
⸻한 사람의 어쩔 수 없는 슬픔이 계속 남는다.
⸻놀란 뒤에 슬퍼진다.
⸻그 순서가 이 소설이 단순한 ‘반전’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인 것 같다.
⸻『慟哭』.
⸻첫 번째는 장치에 놀란다.
⸻두 번째는 인간의 슬픔을 깨닫는다.
⸻그리고 제목의 두 글자만이 마지막까지 가슴 깊은 곳에 남는다.
그럼 또 다른 이야기의 여백에서 만나요.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1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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