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A24의 로맨스 영화💍
- 보스턴 카페에서 만난 찰리와 엠마
- 사회에 대한 풍자와 인간의 추한 면을 꼬집는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
- 이하 스포일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 헤로인을 흡입하는 DJ
- 두 번째 첫인상
A24의 로맨스 영화💍
……라는 시점에서 그냥 평범한 연애 영화는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
감독은 『드림 시나리오』의 크리스토퍼 보르글리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갑자기 전 세계 사람들의 꿈에 등장하게 되는 기묘한 현상에서 짓궂은 악몽을 그려낸 감독이다.
그런 감독이 이번에는 젠데이아와 로버트 패틴슨을 주연으로 맞이해 결혼 직전의 커플을 그린다. 불길한 예감밖에 들지 않는다. (;´∀`)
보스턴 카페에서 만난 찰리와 엠마
찰리는 엠마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가 가지고 있던 책을 자신도 읽었다는 이야기를 계기로 말을 건넨다.
그런데 이 남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애써 말을 거는 데는 성공했지만, 첫 데이트에서 “그 책, 사실 읽지 않았어”라고 자백해 버린다. 바보처럼 솔직한 찰리와 처음으로 사귄 연인에게 관대한 엠마.
두 사람은 사귀기 시작해 2년 뒤 결혼하게 된다. 결혼식까지 앞으로 7일 남았다.
드레스, 요리, DJ, 댄스, 연설.
고르는 동안은 괴롭지만 즐겁기도 한 한편, 평생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번거로운 수많은 결혼식 준비를 하나씩 진행해 나가는 두 사람.
그런데 절친 부부와의 식사 자리에서 '인생에서 가장 나쁜 짓을 한 경험'을 고백하는 게임이 시작되면서, 행복으로 가득했던 결혼식 준비는 갑자기 지옥의 롤러코스터로 빠져든다 ヽ(´Д`ヽ)(/´Д`)/이야아~
아아, 즐거웠다.
사회에 대한 풍자와 인간의 추한 면을 콕콕 찌르는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영화(´▽`)
게다가 상당히 논리적으로 구성된 영화인데도 마지막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감정까지 휘몰아친다. 눈에 띄는 소재가 워낙 커서 본질이 가려질 듯하지만, 이 작품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누구에게나 와닿는 내용이라고 생각해. 제목의 의도적인 촌스러움에 지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작품이야.
그나저나... 젠데이아의 '어휴' 하는 표정과 로버트 패틴슨의 열심히 할수록 헛도는 특유의 느낌이 친정집 같은 안심감을 준다. ( ´∀` )
이하 스포일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MJ가 배트맨과...,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와 실제로 부부가 된 것까지 포함하면 이번 작품의 캐스팅에 (*´˘`*)우후훗♡ 하게 된다
헤로인을 흡입하는 DJ
결혼식 시식회로 향하는 도중, 찰리는 피로연을 맡길 예정인 DJ가 길거리에서 무언가를 피우는 모습을 목격한다.
헤로인을 흡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엠마는 착각한 거 아니냐고 말한다. 찰리는 절대 그랬다고 말한다.
호기심에 일부러 둘이서 되돌아가 확인해 보니, 확실히 DJ 본인이 맞았고 무언가를 흡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헤로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 뒤 시식회에서 절친 부부에게 이야기할 때쯤에는 "결혼식 DJ가 헤로인을 하고 있었다"는 기정사실이 되어 있다.
그런 사람에게 결혼식을 맡길 수 없어. 길거리 한복판에서 대놓고 헤로인을 하다니 이상해. 취소하는 게 좋겠어.
친구 부부와의 대화를 통해 찰리의 머릿속에서 점점 '헤로인을 흡입하는 DJ'라는 인물상이 완성되어 갔다.
엠마만은 정말 그랬는지 알 수도 없고 자신들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있는 것도 아니니, 지금 와서 변경하는 것도 번거롭다며 반대한다.
그러자 화제는 “그렇다면 어디까지 나쁜 짓을 한 사람이라면 캔슬해야 하는가?”라는 쪽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 작은 이야기가 나중에 생각해 보니 영화 전체의 축소판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에 대한 하나의 정보를 얻으면, 그로부터 멋대로 나머지 이야기를 지어내곤 한다.
헤로인을 하는 사람. 문제 있는 사람. 믿을 수 없는 사람. 결혼식에 부를 수 없는 사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거의 알지 못한 채, 하나의 행동만으로 그 사람 전체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한번 그 이야기가 완성되고 나면, 오히려 당사자에게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 편이 더 곤란하다.
인생에서 가장 나빴던 일
술도 들어가자 네 사람은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가장 나쁜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는 예전에 들개에게 습격당했을 때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를 방패로 삼아 혼자 도망친 이야기.
레이첼이 어린 시절 이웃 아이를 가구 안에 가두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는 이야기. 어른이나 경찰이 물어도 함구했다.
찰리는 14살 때 사이버 괴롭힘으로 한 가족을 이사까지 가게 만든 이야기.
왠지 도중부터 악행을 자랑하는 무용담 대회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자신의 과거라면 "아이였으니까", "무서웠으니까", "젊었으니까"라며 사정을 붙일 수 있다.
그런데 엠마가 "학교에서 총기 난사를 계획한 적이 있다"고 고백한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게다가 그저 상상만 한 것이 아니다.
사격 훈련을 하고 학교에 라이플을 반입하려던 단계까지 나아가 있었다.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때 고막을 다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선천적인 장애라고 생각했던 찰리는 그 한쪽 귀의 난청마저 그녀의 개성이나 섹시함이라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이 산산이 부서진다.
갑자기 그녀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된다
괴물에게는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엠마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던 일을 찰리에게 털어놓는다. 총을 난사하려 했던 것 역시 궁지에 몰린 그녀의 마음이 드러난 것이었는데, 찰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과거에 해온 일과도 연결되어 보인다.
레이첼은 이웃의 특성이 있어 보이는 아이를 가두고 그 비명을 무시한 채 돌아갔다. 찰리는 사이버 괴롭힘으로 한 가족을 이사 가게 내몰았다.
가해자에게는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꺼낼 수 있는 옛 악행일 뿐이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몇 년이 지나도 토할 정도로 상처받은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괴롭힌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 누군가가 어른이 된 모습이 엠마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그러한 알기 쉬운 인과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인간 쪽을 그리고 있다.
찰리는 에마가 10살 때 친하게 지내던 12살 소녀와 그 가족을 교통사고로 잃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러자 그 사건과 총기 난사 계획을 연관 지으려 한다. 엠마는 관계없다고 부정한다.
하지만 찰리에게는 관계가 있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 편이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인 채로는 무섭다.
인간은 "왜 이 사람은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드라마를 만든다
범죄가 일어나면 성장 과정, 가정 환경, 학교 생활, 졸업 문집, 주변 사람들의 증언까지 샅샅이 파헤쳐 뒤늦게 그의 인생에서 복선을 찾는다.
분명 뭔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 '뭔가'만 찾으면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안심할 수 있다. 와이드쇼에서 수없이 봐 온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은 과연 그렇게 아름다운 각본대로 짜여 있는 것일까?
우리는 자신이라는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
보면서 떠올랐던 것은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일상생활에서의 자아 연출』에서 제창한 '드라마투르기'였다. 이번 작품의 원제는 『The Drama』이다. 제목이 직접적으로 고프먼을 가리킨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은 타인 앞에서 자신이라는 역할을 연기한다"는 드라마투르기의 사고방식과 너무나도 정확하게 겹쳐 보인다.
고프먼은 말한다. 사람의 행동은 마치 무대 위의 배우처럼 시간, 장소 및 관객에 의존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이렇게 보이고 싶은 나'를 연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결혼식은 궁극의 무대이다.
의상을 고르고, 춤을 연습하고, 연설문을 쓰고, 두 사람의 만남을 피로연용 이야기로 다듬는다.
영화 속에서도 엠마가 결혼식 춤의 안무를 "연기 같다"고 하자, 안무가로부터 "애초에 결혼식이란 그런 거야"라는 취지의 말이 돌아온다.
하지만 연출된 것이라고 해서 사랑이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연인에게 보여주는 자신. 직장에서 보여주는 자신. 가족에게 보여주는 자신. 혼자 있을 때의 자신.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인지 묻는다 해도, 아마 전부 다 자신일 것이다.
엠마 자신도 젊은 시절에는 총격범이라는 캐릭터를 동경하며 연기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기하는 사이에 어느새 그 인물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간은 진짜 자신 위에 가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면서 그 역할에 의해 자기 자신마저 변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래서 남들이 멋대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두렵다. "헤로인을 하는 사람" "전 스쿨슈터 계획자"
하나의 역할에 고정되면,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사람인지는 관계없어져 버린다.
사소한 친절이나 작은 계기로 세상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단정이 횡행한다.
자신에게는 사정이 있고 남에게는 판결을 내린다. 총기 난사 소식을 들은 레이첼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다. 가까운 사람이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엠마의 과거를 알고 격분한다. 다소 다혈질적인 면은 있지만, 그 감정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어렸을 때였다고는 해도 아이 한 명을 가구 안에 가둔 채 하룻밤 동안 방치했다. 게다가 경찰이 물었을 때도 침묵했다.
자신의 과거라면 "어린애였다"거나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며 맥락을 덧붙일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의 과거에는 판결을 내리고 싶어 한다.
SNS에서 누군가의 과거 발언이 파헤쳐져 현재의 그 사람까지 통째로 심판받고 매장되는 광경과도 닮아 있다.
물론 과거는 사라지지 않으며, 피해를 입은 사람이 "이미 옛일이니까"라며 용서해야 할 의무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까지 과거의 자신인 걸까.
14살의 찰리. 어린 레이첼. 15살의 엠마.
현재의 그들과 어디까지 같은 사람인가.
그 판결을 전혀 관계없는 제3자가 내릴 권리는 어디까지 있는가.
의문을 견디는 힘
찰리는 거리에서 우연히 레이첼의 친척이자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라는 여성을 마주친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견딜 수 없게 된다.
"그 다리는 정말 총기 난사 사건 때문이야?" 만약 아니라면 레이첼의 분노의 근거가 무너진다. 그러면 엠마와의 결혼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찰리는 자신에게 유리한 드라마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묻지 않고 삼켜낸다. 간신히 찰리가 사회성으로 꾹 참아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장면이다. 현대는 자꾸 공백이나 여백을 견디는 힘이 사라지고 있다고 나 스스로도 생각한다. 찾아보면 인터넷이든 AI든 답(같은 것)을 알려주니까. 그건 편리하지만 상상력을 죽이는 행위이기도 하잖아.
찰리는 지식에 탐욕스러운 학예원이기 때문에 지닌 성실함과 모르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함이 끊임없이 그려진다.
몰라도 되는 것들이 있다
이건 요즘 시대에 생각보다 어렵다. 검색하면 과거의 발언이 나오고, SNS를 거슬러 올라가면 옛 연인까지 찾을 수 있다.
누군가의 과거를 알려고 마음먹으면, 이전보다 훨씬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도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먹고, 어디로 갔으며, 무엇에 화가 났는지를 매일 공유하고 있다. 무엇이든 알 수 있고,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백을 여백 그대로 두는 데 인내가 필요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있는 그대로 전부 사랑하고 싶다.
언뜻 보면 무척 로맨틱한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하고 이번 작품은 묻는다.
과거의 연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실패. 순간 머릿속을 스친 끔찍한 생각. 질투. 후회. 욕망.
인간이란 그리 깨끗한 존재가 아니다. 모든 것을 드러내고도 그래도 사랑받고 싶다. 내장을 쏟아낸 채 "그래도 사랑해 줄래?"라고 묻는 것은 어쩌면 오만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덤까지 가져가는 것조차 사랑 때문이다. 거짓을暴로하고 싶은 욕구와 사랑은 어딘가에서 서로 상충하는지도 모른다.
마술의 모든 트릭을 알게 되면 마법은 사라진다. 무대 뒤를 전부 보게 되면 스타성은 사라진다. 백조는 수면 아래에서 필사적으로 발을 움직이면서도 수면 위에서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상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신을 연출한다.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말하지 않는다. 기쁘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조금 부풀린다. 그런 노력마저 '거짓말'이라 부르며 까발려 버린다면 로맨틱 따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두 번째 첫인상
서두의 찰리는 엠마에게 다가가기 위해 책을 읽는 척을 했다. 하지만 그 작은 거짓말조차 안고 있지 못하고 곧 엠마에게 털어놓고 만다.
그와 대비되는 영화의 결말.
결혼식은 지옥이 되었다. 비밀을 숨기지 못하는 찰리 때문에 누구에게나 비밀이 새어 나가, 다른 부부마저 파탄 직전에 이른다.
이미 웃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인데, 거기서 영화는 갑자기 엄청나게 로맨틱해진다.
결혼식이 끝난 후, 가기로 약속했던 다이너에서 찰리와 엠마는 다시 한 번 처음 만난 것처럼 연기한다.
근처에 살아?
그리고 얼굴을 맞은 이유를 질문받은 찰리는 여성을 구하기 위해 싸웠다는 멋진 이야기를 지어낸다. 그토록 거짓을 안고는 살지 못하던 남자가 마지막에는 마치 드라마를 연출하듯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두 사람을 위한 거짓말. 그리고 엠마도 그것을 폭로하지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선택한다. 모든 진실을 파헤치는 것을 그만두었기에 다시 사랑할 수 있었다.
상대를 생각해 돋보이게 하려는 노력이나, 선의의 거짓말을 받아들이는 관용은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필요한 것이구나.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의 마지막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썼다.
물론 본래 연애에 관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언어화하고, 설명하고, 드러내고, 고백시키려 하는 시대이기에 더욱 이 말이 떠오른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함께 있기를 선택하는 것. 그것 역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The Drama』라는 원제가 정말 좋아진다. 마지막에 두 사람이 연기하는 '첫 만남'은 완벽한 연극인데도, 이 영화 안에서 가장 진짜 사랑처럼 보였다.
엔드롤의 마지막에는 흘러나오던 레코드가 멈춘다
어두운 영화관에 남는 것은 레코드 골을 바늘이 스치는 듯한 화이트 노이즈뿐이다.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노이즈의 여백이다. 사회에도 좀 더 여백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이야~ (*‘∀‘)
A24 작품이니까 평범한 로맨스 영화로 끝나진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사회학이니 철학이니 하는 얘기를 끌어대며 펼쳐지는 지옥을 비웃으며 보고 있던 나를 맨 마지막에 이성이 아닌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태워 울릴 줄은 몰랐다.
지옥 같은 결혼식에서 이렇게 따뜻한 곳에 안착하다니. 아리아스타가 관여하고 있는 만큼 '현대의 정보 범람에 대하여'라는 테마는 일관되어 있다는 인상도 있네.
잘하네요. 좋아해요💓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최고는 알라나 하임의 프레네미. 연설이 최고(*`ω´)b✨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백을 메우려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자기모순에 으윽... 하게 되네요(;´∀`)
출처: note 원문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70청크
원문 보기 | 출처: no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