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같은 두 사람, 다정함이라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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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admin
> 작성일: 2026-09-12T16:31:33.83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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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4의 『드라마 같은 두 사람(The Drama)』을 보고 왔다. 결혼식을 며칠 앞둔 커플의 관계가 하나의 고백을 계기로 무너져 가는 이야기다. 그 고백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일절 언급하지 않겠다. 아내 엠마는 젠데이아, 남편 찰리는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다.

## “인생 최악의 비밀”을 고백하는 게임

그런 게임 하지 마!

엠마와 찰리가 결혼식에서 낼 요리를 정한다는 명목으로 친구 부부와 식사하는 장면에서, 술김에 “인생에서 자신이 저지른 최악의 일”을 고백하는 게임을 시작한다. 모두가 꺼리면서도 꽤 충격적인 과거의 악행을 하나씩 털어놓는데, 마지막 차례를 맡은 엠마의 고백은 예상 이상으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고, 특히 친구 부부의 아내이자 동료이며 결혼식 증인을 맡기로 되어 있는 레이첼은 이성을 잃을 정도로 격분한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그 행위의 내용에는 언급하지 않고 말하자면 엠마는 그것을 실제로 실행한 것은 아니다. 다만 어린 시절 꽤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획해서 실행 직전까지 갔다가 결국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찰리는 그것을 알고 난 뒤부터 노골적으로 엠마를 피하고, 속으로는 경멸하며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 찰리는 상냥할지도 모르지만 정보로 상대를 너무 판단하고 있다.

찰리는 언행이나 외모가 꽤 멋지지 못한 느낌으로 그려지지만, 상냥하고 성실하며 친구나 아내와 잘 대화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성적인 인물로도 보인다. 그래서인지 다음 날 아침부터 찰리는 에마가 고백한 비밀에 대해 당시 상황과 과거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고 요구한다.

### 중대한 행위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는 전제 설정

그런 중대한 일을 계획하다니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찰리는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라든가, 그래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억눌렸던 충동이 폭주해 버린 것이라든가, 그렇지 않다면 사이코패스일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은 일로도 고민하다가 궁지에 몰리기도 하는 법이다.

### 인간을 상대로 이야기를 지나치게 만들어내다

찰리가 에마에게 과거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것은 에마의 마음에 공감하며 받아들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안심하고 그녀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알기 쉬운 "이런 이유가 있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 그러니까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 안 하고 있지? 그럼 나는 에마와 함께 있어도 안심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에마가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기억하기로는 10살쯤 때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는 것을 목격해서 그게 깊은 트라우마가 되었던 거지. 게다가 적절한 심리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훗날 폭발해 버린 거야" 따위로 혼자만의 독단적인 해석을 만들어내는데, 실제로는 그런 것과는 관계없고 사고 건도 그렇게 극적인 것이 아니었다고 에마는 주장하고 있다.

### 상대를 정보로 보기 시작하면 점점 인간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이 시점에서 찰리는 엠마를 인간이라기보다 자신이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 덩어리처럼 바라보고 있다. 게다가 그렇게 만들어낸 단순한 이야기는 상대에게 부정되면서, 점점 더 "알 수 없는 채로 상대를 바라본다"는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진다. 고백을 듣기 전에는 평범하게 사귀며 사랑하고 있었을 텐데 "이 녀석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다정함은 복합적인 능력

### 선의를 가지고 있는 것과 친절할 수 있는 것은 별개이다

찰리는 선량한 사람이기는 하다. 그는 폭력을 싫어하고, 엠마의 편에 있고 싶다고 표명하고 있다. 잔혹한 사건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고, 대화를 통해 상대의 불안을 풀어 주고 싶다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이 다정함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폭력을 싫어한 나머지 과거에 폭력적인 충동을 품었던 사람까지 혐오하고, 엠마의 편에 있고 싶다는 것은 말뿐이며, 정작 몸은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거나 그녀를 피해 행동하게 된다.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해도 그것은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설명을 바랄 뿐, 자신의 겁이나 공포 같은 감정은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태도에서 훤히 드러나는데도). 즉 선의나 폭력을 피하고 대화를 중시한다는 규범 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 친절함은 아미노산 스코어 같은 것

아미노산 스코어란 식품에 함유된 필수 아미노산의 균형을 평가하는 지표로, 필수 아미노산이란 체내에서 충분한 양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식사를 통해 섭취해야 하는 9종류의 아미노산을 말한다. 9종류 중 8종류가 필요량을 100 충족하고 있더라도, 1종류가 60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 식품의 아미노산 스코어는 60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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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이라는 능력도 필수 아미노산처럼 수많은 요소가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 타인이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기, 상대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기, 사정을 이해하려고 하기, 이야기를 듣기,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기, 상대와의 경계를 존중하기,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받아들이기 등은 아미노산 스코어와 마찬가지여서, 이 중 하나의 요소라도 크게 결여되어 있으면 다른 요소가 충분하더라도 ‘다정함’ 전체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심리학에서는 '친절함'에 가까운 개념으로 '배려'━컴패션(compassion)━이 연구되고 있으며, Strauss 등은 선행 연구를 정리하여 ① 고통을 알아차리는 것 ② 고통이 인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 ③ 고통받는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④ 그로 인해 자신에게 생기는 불쾌한 감정을 견디는 것 ⑤ 고통을 완화하려는 동기나 행동이라는 5가지 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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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게 생긴 불쾌감을 견딜 수 있는가

찰리에게는 에마를 돕고 싶고 편이 되어주고 싶다는 선의가 있다. 하지만 그녀의 과거를 알고 나서 자신 안에 생겨난 공포와 혐오, 불안을 그대로 끌어안고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이유를 찾고 설명을 요구하며, 교통사고의 트라우마나 치료 부족 같은 알기 쉬운 인과관계로 꿰맞추려 한다. 그렇게 해서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겠어. 그러니까 이제는 괜찮아”라는 이해 가능한 상태로 가져가려 한다. 찰리는 에마의 고통을 처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에마의 과거를 듣고 자신 안에 생겨난 고통을 처리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런 설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인조차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만들어 낸 설명이 진짜 원인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상대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필요한 것은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얻는 것’뿐만이 아니라, 모르는 부분이 남은 상태를 견디는 것이 아닐까.

### 모르는 것을 견디기(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란 불확실함이나 의심, 이해할 수 없음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도 성급하게 답이나 이유를 구하지 않고 그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판단 정지(에포케)라는 개념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찰리는 이러한 의심 속에서 판단을 서두르지 않고 견디는 능력이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찰리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엠마 몰래 독자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비유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너라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는 식의 탐문을 거듭한다. 그러나 알지 못한 채 불확실한 정보만을 모아 가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불안을 강화하는 결론에만 반응하게 된다.

이렇게 보면 찰리의 ‘친절의 통’은 모든 판자가 낮은 것은 아니다. 선의와 비폭력을 중시하는 규범 의식, 상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의지는 오히려 강하다. 반면, 자신에게 생긴 불쾌감을 끌어안고 견디는 것, 판단을 보류하는 것,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받아들이는 힘은 약하다. 아미노산 스코어의 비유로 말하자면, 이 낮은 판자가 전체의 친절함을 제한하고 있다. 그래서 찰리는 선량하게 행동하려 애쓰는데도 강한 부담이 가해지면, 그 선의가 상대에 대한 배려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

##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누구인가?

애초에 엠마에게 고백의 내용은 이미 끝난 일로, 술자리에서 무심코 말해 버렸을 뿐 지금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젊은 시절의 객기 같은 것이어서, 이제 와서 해결을 바라고 있지도 않다. 문제나 마음의 상처라며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그 말을 들은 주변 사람들뿐이다. 다만 고백의 내용 자체를 가볍게 여길 생각은 없으며, 미국 사회의 중대한 문제와도 관련된 것이기에 주변의 다소 과잉으로 보이는 반응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이 스스로 떠안게 된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엠마의 과거를 파헤치며 “진짜 원인”이나 “지금의 인격”을 설명하게 하려 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이미 끝난 일로 여기는 과거에 대해, 들은 쪽이 멋대로 “미해결 문제”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인간관계에서는 때로 “본질적인 해결”보다 먼저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고 마음에 담아 두는 “경청의 태도”가 필요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요즘 세상은 대화의 주고받기나 반응의 빠름만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업무 연락이라면 모를까 모든 것이 다 이렇다면 어느새 주고받기가 피구 던지기로 변해 버린 것도 깨닫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 “고백”을 중시하는 규범의식과 고백을 받는 측에 요구되는 “경청”

지금의 인간관계에서는 ‘무엇이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숨기는 것이 없는 것’, ‘진짜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상당히 강력한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특히 이 작품의 무대인 미국에서는). 연인이나 부부라면 더욱 그러해서, 무언가를 혼자 끌어안고 있을 바에는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고, 터놓고 이야기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다만, 그 규범은 고백하는 측에게만 지나치게 무겁게 부과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엠마는 술자리이긴 해도 자신의 과거에 대한 꽤 무거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찰리는 받아들이기보다 먼저 이유를 따져 묻는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뭔가 트라우마가 있었던 게 아니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며 설명을 요구한다.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고백을 환영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이쪽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까지 설명해 달라”는 또 다른 요구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면, 원래 듣는 측에도 그에 걸맞은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들은 내용에 놀라더라도 곧바로 상대의 인격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 것. 이유를 알 수 없더라도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 상대가 그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하면 더 파고들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 안에 생겨난 두려움이나 혐오를 상대에게 떠넘겨 처리하게 하지 않는 것.

즉, “고백의 윤리”와 함께 “받아들이는 측의 윤리” 역시 그만큼 필요하지 않을까.

경청이라는 것도 그저 자세히 캐내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솔직히 어떻게 생각했어?’ ‘왜 그렇게 된 거야?’라며 질문을 거듭하는 것이 반드시 상대방의 마음에 다가가는 일이 되지는 않는다. 본인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도 있다. 그럴 때에는 ‘모르겠어’라는 대답을 모르는 그대로 두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경청’은 ‘취조’가 되어 버릴 것이다.

“무엇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좋은 관계라면,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관계” 역시 그만큼 중요할 것이다.

인생에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과거와, 자신조차 왜 그랬는지 모르는 후회가 남을 때가 있다. 그것을 모두 설명해서 본질적인 원인까지 밝혀내고 깔끔하게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필요한 '다정함'이란 해결이 아니라, 우선 '그랬구나'라고 들어주고 그 말을 잠시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출처:** [note 원문](https://note.com/cheeky_arnica930/n/na89802d1df4c)

*번역: Gemma 3(.44) 초벌 + 교정 28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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