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들켰습니까?
맞아요. 사실 지구에 있을 때 서울 변두리에서 원생 예고여섯 명 앉혀놓고 연명하던 보습학원 원장 겸 강사였습니다. 왕년에 잘 나갈 땐 대치동에서 1타 소리도 잠깐 들었는데, 참 인생 모르는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학원 강사 짬밥이 어디 가겠습니까? 이 세계에 떨어져서 마법이라는 걸 처음 딱 본 순간, 전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야, 이거 완전 사기 교육 시장이구나! 개념 원리는 하나도 안 가르치고 맨날 기출문제 암기만 시키고 있네!’
이 세계 마법사들이 신성시하는 그 복잡하고 거대한 ‘마법진(Magic Circle)’ 있죠? 영창보다 한 단계 더 고차원 마법을 쓴답시고 바닥에 피 흘려가며 그리는 거요. 그거 내가 보니까 그냥 ‘기하학적 연립 방정식의 시각화’일 뿐입니다.
좌표평면 위에 함수 그래프 여러 개 겹쳐놓고 교점 구하는 과정을, 이 무식한 인간들은 컴퍼스랑 자 들고 노가다로 그리고 있었던 거예요!
에피소드: 왕립 학술원의 ‘천재’를 털어버린 칠판 강의
하루는 이 나라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왕립 마법학원의 수석 졸업생 녀석이 제 간이 학원에 찾아왔습니다. 내가 무영창으로 마법을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사기꾼 취급을 하러 온 거죠.
그 녀석이 거드름을 피우며 양피지를 쫙 펼치더군요. 7서클 마법 ‘블리자드’의 마법진이라면서, 3년을 연구해서 마법진의 오차를 2%나 줄였대요. 아주 자부심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내가 슬쩍 보니까, 그냥 쓰레기 수식이었어요. 불필요한 상수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계산 과정이 뱅뱅 꼬여서 마나 소모량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꼴이었죠.
전 아무 말 없이 학원 칠판 대용으로 쓰는 석판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분필을 잡았죠. 1타 강사의 본능이 깨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이, 수석 졸업생 분. 여기 이 기하학적 문양 보여? 이거 마나의 벡터 성분을 x, y, z축으로 분해하면 그냥 3차원 선형 회귀 모형이야. 너 왜 여기서 굳이 불필요한 루프를 돌리고 있냐? 이 곡선은 그냥 통째로 날려도 돼. 왜냐고? 적분하면 0으로 수렴하거든!"
분필 가루를 팍팍 날리면서, 그 복잡한 마법진을 단 세 줄의 ‘행렬(Matrix) 계산식’으로 압축해 버렸습니다.
$$\begin{pmatrix} x' \\ y' \\ z' \end{pmatrix} = \begin{pmatrix} \cos\theta & -\sin\theta & 0 \\ \sin\theta & \cos\theta & 0 \\ 0 & 0 & 1 \end{pmatrix} \begin{pmatrix} x \\ y \\ z \end{pmatrix}$$
선형대수학의 회전 변환 행렬입니다. 좌표를 이리저리 비틀어서 마나의 흐름을 제어하는 마법진의 본질이죠.
그 천재라는 녀석의 눈동자가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더군요. 3년 동안 밤새워 그린 마법진이, 지구의 고등학교~대학교 초년생 수준의 행렬식 세 줄로 정리되니까 뇌 정지가 온 겁니다.
"자, 이게 칠판 레이아웃의 중요성이다. 마법진 그릴 시간에 이 행렬식을 머릿속에서 ‘초고속 암산’으로 처리해 봐. 그럼 바닥에 낙서 안 해도 손끝에서 바로 냉기가 나가지. 그게 니들이 말하는 무영창, 무진(無陣) 마법의 정체야. 오케이? 자, 필기해라."
그날 이후로 그 녀석, 왕립 학원 때려치우고 제 학원 조교로 들어왔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분필 지우개 털고 있어요.
마법의 비법? 그건 그냥 '수학적 꼼수'와 '개념 통찰'
이 세계 마법의 대단한 비밀이나 비법서 같은 거, 다 거품입니다. 알고 보면 그냥 선조 마법사들이 계산하기 귀찮아서 만들어 둔 ‘수학적 근삿값’이나 ‘공식의 암기 팁’ 같은 거예요.
지구에서도 수학 못 하는 애들한테 "야, 원리 이해 안 가면 그냥 이 공식 외워!" 하잖아요? 영창과 마법진이 딱 그 수준입니다. 원리를 모르는 바보들을 위한 ‘치트키’였던 거죠.
하지만 치트키만 쓰면 절대로 심화 문제를 못 풉니다. 응용이 안 되니까요.
예를 들어 볼까요? 대마법사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다는 '마나 마찰 계수 최소화 비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비법서를 열어보면 아주 거창하게 "마음을 비우고 자연의 흐름에 영혼을 맡겨라..." 따위의 소리가 적혀 있죠.
국어 수업 합니까? 영혼은 무슨 영혼입니까. 그거 그냥 '미분(Differentiation)' 치면 끝나는 문제입니다. 마나의 변화율이 0이 되는 극점(Local Extremium)을 찾으면 마찰이 최소화되는 최적의 경로가 바로 나오거든요.
[마법사들의 방식] -> 영혼을 비우고 10년 동안 명상하기 (확률 낮음)
[1타 강사의 방식] -> 수식에 미분 때려서 기울기 0인 지점 찾기 (10초 컷)
이걸 가르치니까, 우리 학원 원생 다섯 명이 어떻게 됐겠습니까? 남들 20년 걸려서 도달하는 ‘4서클’ 경지를 딱 3달 만에 찍었습니다. 왜냐? 난 개념부터 조지거든요. 선행학습과 반복 성적 관리가 이래서 무서운 겁니다.
1타 강사의 인생론: 공식은 배신하지 않는다
학원 강사 생활 하면서 참 별의별 꼴을 다 봤습니다. 돈 많은 집 자식들이 고액 과외 받고 앞서갈 때, 우리 학원 조그만 강의실에서 밤늦게까지 코 묻은 돈 내고 공부하던 성실한 아이들도 봤고요.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게 있습니다.
세상에 빽이 있고 돈이 있어도, 수학 점수만큼은 정직하다는 겁니다. 자기가 고민하고, 연필 굴리고, 공식 대입해서 풀어낸 만큼만 정답을 주죠. 사기를 칠 수가 없어요.
이 세계도 똑같더군요. 귀족 마법사 놈들이 마나 밀도가 높은 명당을 독점하고, 비싼 마법 지팡이로 도배를 해도, 수학적 계산 능력이 떨어지면 결국 내 무영창 마법 한 방에 가루가 됩니다.
공식은 신분도, 가문도 따지지 않습니다. 법칙을 이해한 자에게 공평하게 힘을 주죠. 그래서 난 이 세계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지구에서보다 내 강의의 가치를 훨씬 더 화끈하게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어라, 귀족가 영애인 로즈 양, 왜 문제를 풀다 말고 연필을 멈춥니까?
아, ‘공간 도약 마법’의 기하학적 확률 밀도 함수가 이해가 안 가요? 이거 저번에 3월 모의고사 변형 문제로 내가 짚어줬던 거잖아!
잘 보세요. 공간을 접을 때는 네 영혼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접히는 축의 ‘리만 곡률 텐서’ 수치가 중요하다고 몇 번을 말합니까!
자, 다들 주목! 오늘 이 공식 안 외우면 집에 안 보냅니다. 이번 달 ‘던전 실전 모의고사’에서 1등급 맞고 싶으면 정신 바짝 차리세요. 대마법사 칭호가 코앞인데 삼수할 겁니까? 자, 다음 페이지 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