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파이어세일 (Firesale) 101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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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세일 (Firesale)
국가기반시설에 대해 사이버 테러리스트의 3단계에 걸친 체계적인 공격
프롤로그: 검은 화면
2027년 4월 1일, 만우절의 자정이 막 지났을 때였다. 세상은 고요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는 밀린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다른 누군가는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모든 것이 동시에 멈췄다.
"어? 왜 이래?"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해외 축구 하이라이트를 보던 대학생 김민준은 갑자기 까맣게 변해버린 모니터를 주먹으로 툭 쳤다. 와이파이 공유기는 평소처럼 파란 불빛을 성실하게 깜빡이고 있었지만, 스마트폰 화면 상단에는 '연결 없음'이라는 절망적인 문구가 떠 있었다.
단순한 통신 장애가 아니었다. 전 세계의 모든 유선, 무선 인터넷이 동시에 증발했다. 디지털로 연결되어 있던 현대 문명의 혈관이 한순간에 막혀버린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세상은 혼란 그 자체였다. 금융 시스템이 마비되고, 교통망이 뒤엉켰으며, 뉴스는 낡은 라디오 전파를 통해서나 간신히 흘러나왔다. 인류는 하루아침에 20세기 초로 후퇴한 듯했다.
그리고 바로 그 혼란의 한가운데, '그것'들이 나타났다.
제1장: 101개의 탑
인터넷이 끊긴 지 72시간째 되던 날, 하늘에서 무언가 '내려왔다'.
서울의 심장부인 광화문 광장, 뉴욕의 타임스퀘어, 파리의 에펠탑 옆, 아마존의 밀림 한복판, 사하라 사막의 모래 언덕 위. 전 세계 101개의 주요 지점에 거대한 탑이 땅을 뚫고 솟아난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에서부터 지상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듯 생겨났다. 클래스101 이라 이름 붙은 탑은 어떤 알려진 금속이나 암석으로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표면은 빛을 전혀 반사하지 않아 마치 공간을 오려낸 검은 구멍처럼 보였다. 높이는 어림잡아 1킬로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고, 그 꼭대기는 자욱한 구름 속에 가려져 있었다.
각국 정부는 정찰기와 드론을 보냈지만, 탑에 접근한 모든 기계는 의문의 동력 장애를 일으키며 추락했다. 탑은 그 어떤 물리적, 전파적 접근도 허용하지 않은 채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 기이하고 불길한 건축물을 그저 '탑'이라고 불렀다.
민준은 창밖으로 보이는 여의도의 국회의사당 옆에 솟아난 탑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저것은 인류를 향한 경고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의 징조일까. 세상의 종말을 논하는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신의 등장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탑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제2장: 재앙의 문
탑이 나타난 지 다시 24시간 후, 모든 탑의 허리 부분에서 거대한 문양이 빛나기 시작했다.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문양이 소용돌이치더니, 이내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게이트에서 '그들'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나온 것은 고블린이라 불릴 법한 작고 녹색 피부의 괴물들이었다.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가진 그것들은 낄낄거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고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공격했다. 경찰과 군대가 투입되었지만, 그들의 총알은 괴물들의 질긴 가죽을 뚫지 못했다.
곧이어 더 끔찍한 것들이 나타났다. 딱딱한 갑피를 두른 거대한 벌레, 네 개의 팔을 가진 오크, 하늘을 뒤덮는 익룡 떼까지. 마치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 튀어나온 듯한 괴물들이 탑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도시는 순식간에 사냥터로 변했다.
민준은 아파트 복도에서 이웃을 물어뜯는 괴물을 보고 공포에 질려 숨을 죽였다. 문명의 이기는 무력했고, 법과 질서는 힘을 잃었다. 오직 생존 본능만이 지배하는 원시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누군가 이 사태를 '파이어세일(Firesale)'이라고 불렀다. 모든 것이 헐값에 팔려나가는 распродажа처럼, 인류의 문명과 목숨이 속수무책으로 헐값에 넘어간다는 의미였다.
인터넷이 끊긴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01개의 탑은 인류에게 절망을 선물하기 위해 내려온 재앙의 판도라 상자였다. 그리고 이제, 상자는 활짝 열렸다. 인류는 과연 이 절망적인 '파이어세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